모바일보기

성폭력, 그 아픔을 온전히 끌어담기 위해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주연(대구여전) / "말할 수 없었던, 성폭력 생존자의 힘겨운 말떼기"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행사...성폭력과 관련 된 책과 생존자에게 보내는 파이팅 메시지 전시했다(2009.11.21 민들레영토) / 사진. 대구여성의전화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행사...성폭력과 관련 된 책과 생존자에게 보내는 파이팅 메시지 전시했다(2009.11.21 민들레영토) / 사진. 대구여성의전화

"한 번의 용기가 치유를 일으킨다"

"생존자"라는 생소한 단어와 “성폭력”이라는 민감한 주제까지 겹쳐져 사람들은 호기심 반, 질문 반으로 내게 물어온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생존자 A씨는 막상 자리에 앉으니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말하기이기에 치유도 그녀의 것이다. 그것이 단지 그녀에게 작은 구멍이 뚫린 것일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숨 한 번 편하게 쉴 정도는 되었으면, 그것이면 됐다.

"네 잘못이 아니야"

생존자 B씨는 아무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놓았던 고통스러운 얘기를 눈물과 함께 쏟아내었다. 가해자에게는 스치듯 지나간 장난질이 그녀의 삶을 바꿔놓았다. 우울증에 죽을 만큼 힘들어했던 것도, 남자를 피했던 것도 성폭력 때문이었던 것을 발견한 후 그녀는 오열했다.
온갖 핑계와 이유를 대며 인생을 정면으로 나서지 못 하고 회피했었을 B를 생각하니 눈이 시린다.
성폭력 이후에 생존자들은 말할 수 없다는 것,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대한민국에 산다면.  

"이 땅의 모든 부모와 자식을 위한"

교통사고를 당하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듯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성폭력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다.
생존자 C는 성폭력 직후 거리에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는 것을 보고 “자신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이런 자신을 살린 사람이 엄마였다.
그 일로 인해 혹시나 자신을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여전히 너는 사랑스러운 내 딸임을 엄마가 확인시켜 주었다고 했다.
이 땅이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을 위해서 "비난"한다.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이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화"를 낸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성폭력 보다 더한 상처임을 그들은 알지 못 한다.
 
"살고싶은 몸, 날고 싶은 영혼"

슬픔을 넘었다.
거절감을 딛었다,
용기를 낼 수 있게 날개를 달아 준 따뜻한 시선들만 가져간다.
정말 살고 싶다. 
숨고 싶지 않다.
이제 날개를 달고 훨훨 날고 싶다.
 
생존자의 말하기 행사
 
지난 11월 21일, 민들레영토에서 오후 3시부터 늦은 9시까지 대구여성의전화 주최로 '제5회 성폭력 생존자들의 말하기'가 있었다. 생존자 6명, 듣기 70~80명이 참여한 이날 행사에서는 책 전시회, 삽화 전시회, 퍼즐 맞추기, 생존자 치유에 도움이 되는 영상 남기기, 즉석 사진을 찍어 날개 모양에 장식하는 사전행사에 이어, 드디어 오후 5시 성폭력 생존자의 용기 있는 힘겨운 말떼기가 시작되었다.

그날 하루 단 몇 사람, 몇 시간을 위해 수십명의 사람들이 몇 달동안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문제와 끊임없이 부딪히며 삼키고 넘어지고를 반복해 왔다.  듣기 참여자들이 미리 신청을 해야 하고 특별히 남자 신청자들은 면접을 봐야 하며 행사장안에는 핸드폰이나 카메라도 반입할 수 없다. 이유는 단 하나. 그 아픔을 온전히 끌어담기 위해서다.






[기고]
정주연 / 대구여성의전화 사무국장

퍼즐맞추기...생존자들의 말하기 행사와 관련된 퍼즐을 맞추다 / 사진. 대구여성의전화
퍼즐맞추기...생존자들의 말하기 행사와 관련된 퍼즐을 맞추다 / 사진. 대구여성의전화

즉석사진방...듣기 참여자들이 찍은 즉석 사진들로 날고 싶은 영혼의 날개 만들기 / 사진. 대구여성의전화
즉석사진방...듣기 참여자들이 찍은 즉석 사진들로 날고 싶은 영혼의 날개 만들기 / 사진. 대구여성의전화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