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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서릿발 같은 청춘은 늘 아팠다”
이진이(방송작가)...
"10년 전에 떠난 김광석, 사연만큼 잊혀지지 않는 노래들.."
2006년 02월 04일 (토) 11:12:57 평화뉴스 pnnews@pn.or.kr
   

1월초에 시내 한 클럽에서 자그마한 이야기 콘서트가 열렸다.
10년전 고인이 된 김광석을 추모하는 콘서트, 누가 오래전부터 마음 먹고 기획한 것도 아니고, 그냥 어쩌다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가 작은 행사로 이어진 것이다. <문화신문 안>팀이 명목상 기획을 하고, 장소를 빌렸다. 마음 좋은 클럽 주인이 기꺼이 행사를 위해 장소를 빌려줬고, 그렇게 해서 김광석의 노래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소박한 콘서트를 연 것이다.

콘서트라고 했지만, 정식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 노래 손님들이 단촐했다. 그래도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 공연은 크게 두분으로 나눠졌다. 첫 무대는 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그룹들의 공연이었고, 2부 무대는 관객으로 온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있는 무대였다.

첫무대를 장식해준 이들은 아프리카와 제임스.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록그룹 아프리카가 흔쾌히 무대에 올랐고, 최근 2집을 낸 역시 대구 지역 젊은이들이 만든 그룹 제임스의 공연도 이어졌다.

이들이 변변한 수고료로 없이 클럽에서 공연했던 것도 김광석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그의 노래에 대한 저마다의 절절한 사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이어지는 무대는 김광석 노래를 좋아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대구 지역 통기타 동호회 회원들이 통기타 반주를 해주면, 객석에 앉아있던 손님들이 한명씩 나와 김광석의 노래에 얽힌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고는 그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멋쩍어서 어떻게 할까 싶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모두 가슴 절절한 청년의 한때를 추억하며 김광석의 노래를 불렀다. 지금껏 많은 공연도 보고, 무대도 봤지만, 이렇게 진솔하면서도 쓸쓸하고 아름다운 무대가 또 있을까?

클럽에서의 공연이 끝난 후에 김광석이 대구에 오면 (김광석은 고향이 대구다) 꼭 들렀다는 허름한 실내 포장마차를 찾아갔다. 제법 너른 공간을 잡았지만, 어깨를 맞대고 앉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뒷풀이에 참석했다. 김광석과 함께 하는 이 추억의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소주를 시키고 안주를 주문하는 동안, 누군가가 한마디를 외친다. ‘광석이 형한테도 술 한잔 줘야지. 살아 생전 소주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담배에도 불 붙여줘라. 그 인간, 하루에 담배를 두갑이나 피웠단다’ 이런저런 떠벌림이 이어지더니, 김광석의 CD를 세워놓고는 그 앞에 소주 한잔이 놓였고, 담뱃불 하나가 희뿌연 연기를 피워올랐다.

“그래, 거기는 살만 하냐?” 누군가가 말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내가 속으로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그마한 제사상을 만들어놓고는 다시 기타를 튕기며 다같이 김광석의 노래를 불렀다.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쓰더니, 사랑 때문에 나를 버리고 너무 쉽게 변해가는 내 모습을 읊조리다가 입영열차를 타기도 하고, 어느 60대 부부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그러더니 그루터기, 광야에서가 이어지고, 급기야 김광석이 즐겨불렀던 민중가요까지 나오니, 시간은 어느새 거슬러올라가 우리는 80년대, 그 어디론가에 서있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느낀 것이, 김광석의 노래엔 사연이 참 많구나 싶었다.. 서릿발 같았던 청춘은 늘상 아팠고, 사랑은 언제나 실패로 끝나고, 그리운 날들은 결코 오지않음을 조금씩 알아가던 시절들을 김광석의 노래와 함께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리워해도 돌아오지 않을 젊은날처럼, 김광석의 노래를 아무리 목놓아 불러도 지난 시절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김광석의 노래에는 그런 힘이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 지난 1월초 대구의 한 클럽에서 열린 '김광석 이야기 콘서트'...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참 달이 밝았다. 겨울 바람이 참 차가웠지만, 마음은 훈훈했다. 아직도 이런 느낌들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와 동지가 많다는 생각에 든든해졌다. 그리고 서울에 사는 누군가에게 이런 메모를 받았다.

“김광석의 노래와 함께 이야기 콘서트룰 하셨다구요? 어허 참, 서울엔 그런 행사 눈 씻고 봐도 없던데, 이런, 서울 사는 사람이 지방에 대해 문화적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있네요.”

꽁꽁 얼어붙은 겨울 밤하늘의 뜬 별 몇 개가 반짝이는 것 같았다. 김광석이 날 보고 싱긋 웃는 것 같았다.

[주말 에세이 9]
이진이(대구MBC 방송작가)

(이 글은, 2006년 1월 27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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