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 '디지털 성범죄'가 전국에서 잇따르고 있다.
대전, 광주, 제주에 이어 최근 두달새 경북 구미지역 고등학교 2곳에서 남학생에 의한 휴대폰 불법촬영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모두 해당 고등학교 여성 교사들이다.
학내 불법촬영 범죄에도 경북도교육청은 예방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성범죄 예방 예산은 삭감했고, 불법촬영 상시점검시스템 학교는 10곳 중 3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불법촬영이 적발된 가해 학생을 '퇴학'에서 '전학'으로 징계 수위를 낮춰 논란이 일고 있다.
의회와 교원단체들은 "경북교육청이 성범죄 대응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경북교육청(교육감 임종식)은 '경북도교육청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피해 학생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관련 예산을 마련하고 해마다 대책을 세우고 있다. 경북도 내 지역교육청들은 학교 내 현장에서 불법촬영 집중점검을 실시하기도 한다.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 예방' 올해 예산에 대해 29일 경북교육청에 확인한 결과, 최근 1년새 관련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했다. 1년 전인 지난 2023년 관련 예산은 3억2,000만원을 책정했다. 2024년 올해 예산은 5,760만원으로 2억6,240만원을 깎았다. 삭감률 82%로, 전년 대비 18%에 그쳤다.
'불법촬영 상시 점검 시스템'이 구축된 학교도 경북 전체 960개교 중 280여개교에 불과하다. 설치율은 30%대다. 나머지 70% 초·중·고등학교에는 불법촬영 상시 점검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 예산을 지원받은 학교들은 학내 화장실 등에 불법촬영 장비가 설치됐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장비를 구매할 수 있다. 이 장비가 없으면 학교가 자체적으로 불법촬영 여부를 구별하기 어려워 피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매년 성범죄 예방 예산 근거를 세우기 위해 학교들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실시한다"며 "지난해 수요 조사를 신청한 학교가 적어서 올해 예산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예산은 상반기에 학교를 선정해 이미 지원한 상태고, 내년 본예산 때 다시 수요 조사를 해서 지원 학교를 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디지털 성범죄 예방을 위해 경북교육청은 여러 정책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북도의회는 29일 보도자료를 내고 "경북교육청은 학교 내 불법촬영 범죄 예방에 대한 대책을 가지고 있냐"며 "안일한 사고와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지역 내 고등학교에서 불법촬영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주식(경산시 제1선거구.무소속) 경북도의원은 "앞서 3월 6일과 4월 16일 경북 2곳에서 학생에 의한 휴대폰 불법촬영 사건이 발생했다"며 "디지털 성범죄는 한번 발생하면 가해자를 처벌해도 동영상 유포 등 피해 회복이 쉽지 않은 심각한 사안으로 예방이 최선의 조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북교육청은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면서 "과연 불법촬영 예방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범죄는 예방이 최우선으로, 적절한 예산을 책정하고 확실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북지부(지부장 지승엽)은 지난 28일 성명서를 내고 "성폭력과 교육권 보호에 대한 안이한 대응으로 피해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경북교육청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손미현 전교조경북지부 사무처장은 "학교 내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학생에 의한 불법촬영 범죄가 경북에서만 두달새 2건 발생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 회복 쉽지 않은 사건으로 예방이 중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불법촬영 상시점검 시스템이 부실하고,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대폭 삭감한 것은 성범죄와 교권보호에 대한 경북교육청의 안일한 인식"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지난 3월 6일 경북 구미 한 남자고등학교에서 발생한 불법촬영 사건에 대해 경북교육청이 가해 학생 징계 수위를 퇴학에서 전학으로 바꾼 것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안이하고 미숙한 인식"이라며 "해당 학교 여성 교사들의 불안과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징계를 내려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휴대폰 카메라 등을 이유한 불법촬영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중죄다. 불법 촬영물(복제물)을 소지하거나 구입, 저장, 시청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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