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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1호 출판사 '학이사' 70년..."오늘도 지역의 새 독자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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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독립신보에 실린 전신 이상사
전쟁 때 내려와 1954년 지역 1-1 등록  
2005년 학이사로 변경, 400여권 펴내  
코로나·이주민·동네책방·인권동화 기획
북토크 등 독자 발굴, 한 달 동안 전시회
신중현 "인문컨텐츠 지역에 좋은 영향"

"진정한 독자를 양성하자.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새 독자를 찾는다"

대구지역 1호 출판사인 학이사(學而思)의 신중현(62) 대표는 지난 5일 이처럼 말했다. 

달서구 문화회관 11안길 22-1에 있는 학이사 사무실에서 만난 신 대표는 이날 독서아카데미 준비로 바빴다. 10기 독서아카데미 첫 날이라 어떤 독자들을 만날까 준비하는 그의 등에서 즐거움이 느껴졌다.  

'대구에 산다, 대구를 읽다' 학이사 신중현 대표가 독자아카데미를 준비 중이다.(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에 산다, 대구를 읽다' 학이사 신중현 대표가 독자아카데미를 준비 중이다.(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역의 출판업계 터줏대감인 학이사가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출판계 전체가 힘들다지만 지역은 더 어렵다. 70주년을 맞는 올해 또 새 책을 펴내고, 새 독자를 찾는 마음가짐은 다르다.

신 대표는 "70년을 어떻게 왔는지 잘 모르겠다"며 "어렵다고 정부나 지자체 지원만 바라볼 수도 없고, 출판업계만 어려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역에서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을 길을 매일 고민한다"고 말했다. 


학이사의 전신인 출판사 이상사는 서울에서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을 보면 1948년 2월 17일 독립신보에 이상사의 광고가 실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이상사를 포함해 많은 출판사들이 대구로 내려왔다. 피란 후 다시 돌아갔지만 이상사는 지역에 남아 출판업을 이어갔다.  

이상사가 대구에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중구 종로다. 지금 그 자리는 '몬스터크래프트비어'라는 수제맥주 겸 동네책방이 들어섰다. 이상사는 1954년 1월 4일 대구 출판 1-1호로 등록했다. 컴퓨터가 대중화되고, 디지털화가 본격화 되기 이전의 출판 목록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한글·영어사전 등 여러 책을 펴낸 기록은 있다. 

"다시 지역 출판이다"...대구 달서구에 있는 출판사 학이사 전경(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다시 지역 출판이다"...대구 달서구에 있는 출판사 학이사 전경(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48년 2월 17일자 신문에 실린 학이사 전신 이상사의 광고(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48년 2월 17일자 신문에 실린 학이사 전신 이상사의 광고(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학이사로 바뀐 것은 2005년이다. 1987년 이상사에 입사해  평사원이던 신 대표가 2005년 이름을 바꾸면서 제2막이 펼쳐졌다. 역사를 단절시키지 않고 맥을 잇기 위해 지금도 학이사 상호 옆에 이상사를 쓴다. 


그렇게 학이사로 등록하고 지역에서 출판한 책은 400권이 넘는다. 기획 출판한 책들은 인문학, 철학, 사회학 등 여러 갈래로 나눠진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대구시민 51명의 기록을 담은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를 펴냈다.  일본에서도 판권을 사들여 일본어로 출판했다. 

한국학교 선생님 6명 이야기를 엮은 <우리 아빠는 무슬림이에요>, 역세권보다 책세권이라는 <동네책방 분투기>, 학이사의 또 다른 레이블 '뜻밖에'의 인권동화집 <콧수염 엄마>도 있다.  4대강사업을 비판한 정홍규 신부의 <마을로 간 신부>는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위기를 겪었다. 

역시 가장 많이 출판한 주제는 대구를 중심으로 한 책들이다. 지역을 주제로, 지역 작가들이 쓴 책들이 학이사의 주력 상품이다. <대구에 산다, 대구를 읽다>, <다시, 지역출판이다>, <경산 코발트광산 구술 증언집>, <4인 4색 대구의 인문> 등이다. 

, , <콧수염 엄마 등 학이사에서 최근 출간한 책들(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동네책방 분투기>, <조선의 선비 구곡에 노닐다>, <콧수염 엄마 등 학이사에서 최근 출간한 책들(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신중현 학이사 대표가 설립 70주년을 맞은 소감을 밝히고 있다.(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신중현 학이사 대표가 설립 70주년을 맞은 소감을 밝히고 있다.(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신 대표는 "서울 작가도 있고, 다른 나라 얘기도 있지만 대구경북은 우리가 가장 잘 안다"며 "그런 마음으로 다양한 삶, 다양한 주제,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책으로 펴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19 기록 책이다. 의사, 간호사, 소방대원, 세탁소, 어린이집 등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바로 글을 청탁해 책을 만들었다. 

신 대표는 "지역 출판사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하겠냐"며 "지역의 삶은 우리가 제일 잘 안다. 거기에서 기반해 섭외하고 청탁해 책을 만들었다. 때문에 지역 출판사는 지역에서 언론사, 사관, 도서관, 교육기관의 역할도 한다. 그러다 매우 귀하다"고 자부했다. 


대학 학보사 기자 출신인 그는 40년 가까이 '종이밥'만 먹었다. 예전 중구에 회사가 있을 시절에는 민주화투쟁 열기 속에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출퇴근 했다. 이어 지역 여기 저기를 떠돌던 회사는 2013년 지금의 달서구에 뿌리를 내렸다. 

경기 파주출판단지처럼 대구출판지원센터가 생기면서다. 하지만 학이사처럼 기획 상업 출판을 하는 출판사는 대구에 많지 않다. 대부분 관공서, 기업 납품을 위한 출판사거나 개인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자비 출판의 형태다. 독서 판매량이 줄어 시장이 쪼그라든 것도 원인이다.  

코로나19 당시 대구시민 51명의 기록을 담은 학이사의 책이 일본어로도 출간됐다.(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코로나19 당시 대구시민 51명의 기록을 담은 학이사의 책이 일본어로도 출간됐다.(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매년 한국인들의 연간 독서량이 줄어들지만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코로나19였다. 도서관, 서점에 가서 책을 구경하다 한 두권씩 사보던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으니 책 시장은 더 작아졌다. 때문에 큰글씨책, 전자책(e-book), 오디오북 등 다른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콘텐츠 판매를 위해 해외도서전에도 간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도 예전만큼의 판매량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학이사가 택한 방식은 독자 늘리기다. 책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게 새 독자를 찾는 것이라는 게 학이사의 영업 전략이다. 학이사는 '대구에 산다, 대구를 읽다'를 주제로 '학이사 독서아카데미'를 10기까지 운영하고 있다. 매달 금요일 진행하는 '금요북토크', 지역 작가의 '대구의 인문, 담장을 넘다' 강연, 지역사회의 작은 동네책방에서 책을 읽는 '찾아가는 동네책방'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신 대표는 "점점 독자는 없어지고, 책을 내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추세"라며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한명의 독자라도 더 늘리는 것"이라고 했다. 또 "예전에는 버스, 지하철, 기차 안에서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힐끔 힐끔 쳐다보고 쑥스러워하며 책 읽기를 두려워한다"면서 "하루 10분이라도 책을 읽고, 시 한 줄이라도 읽는게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잊어버리는 시대가 아쉽다"고 토로했다. 

학이사 사무실 건물에 걸린 여러 지역 출판 책들(2024.9.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면서 "우리 지역에 70년이나 된 출판사가 있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준 역사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지역사회에서 오래오래 지역의 삶을 이야기로 발굴하고 책을 펴내겠다"면서 "인문학 콘텐츠를 통해 좋은 영향력을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학이사는 창사 70주년을 맞아 9월 1일~30일까지 옛 이상사 창업 터인 몬스터크래프트비어 2~3층에서 '다시 지역 출판이다'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또 9일 오후 7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감사의 날 행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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