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9일. 고문과 조작으로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31년.
사형된 8명 가운데 4명의 고향인 대구에서 [인혁당 31주기 4.9통일열사 추모제]가 열렸다.
[대구경북통일연대]를 비롯한 대구경북 5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오늘(4.9) 오후 대구 도심에 있는 2.28공원에서 추모제를 거행했다. 특히, 지난 해 12월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과 올 1월 인혁당 관련자 23명 가운데 16명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뒤 처음으로 열리는 추모제로, 유가족과 인혁당 관련자, 시민사회단체와 정치인 등 400여명이 참가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추모제 연단에는 대구 민예총 최수환(45.화가)씨가 그린 희생자들의 새 영정이 놓였고, 유가족들은 고인의 영정을 끌어앉고 슬픔에 잠겼다.
고 이재문씨의 누나인 이소정(76)씨는 “동생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가보니 이제 저 세상 사람이 돼 있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1934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고 이재문(당시 47세)씨는 경북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대구매일신문 기자로 활동하다 ’64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됐으며, ’74년 인혁당 재건 사건으로 수배를 받다 ’79년에 구속, 이듬 해 ’80년에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81년 11월 옥사했다.
추모제 준비위원장 함종호씨는, “법원의 재심으로 인혁당에 대한 무죄판결이 내려지기를 바란다”면서,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난만큼, 이제는 가해자들의 ‘진상 고백’과 함께 ‘진심어린 반성과 화해’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함 위원장은 특히, “‘사법살인’을 저지른 대법원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대통령의 사과와 당시 사건조작을 지시한 청와대의 관련 자료를 공개하는 한편, 현재 칠곡현대공원에 있는 희생자들의 묘를 옮겨 대구시내에 추모묘역과 추모공원을 조성해 희생자들의 뜻을 기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도 각각 추모사를 통해 “함종호 위원장의 요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늘 추모제에는, 인혁당 희생자 유가족인 서동훈(고 서도원씨 장남)씨를 비롯해 신동숙(고 도예종씨 부인), 김진생(고 송상진씨 부인), 이영교(고 하재완씨 부인), 여상화(고 여정남씨 조카), 이소정(고 이재문씨 부인), 김광자(고 이재형씨 부인), 추국향(고 정만진씨 부인)씨가 참가했으며, 인혁당 사건 관련자로는 강창덕(통일연대 고문), 나경일(민족자주평화통일 대구경북회의 상임위원), 전창일(통일연대 상임고문), 림구호(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 이창복씨가 참가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림구호 이사장은, “박정희 유신권력의 살인 만행과 반공 광기로 우리 유가족과 관련자들은 처참하게 학대당했고, 박정희와 그 패거리들의 잔혹성, 야만성은 우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실재하는 고통 그 자체였다”면서 “수구냉정세력들의 기반을 청산하고 박정희 신드룸을 극복 청산하는데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오늘 추모제는 또, 여.야 정치인과 5.31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도 대거 참석했다. 김덕규 국회부의장을 비롯해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이재용 대구시장 후보,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와 김기수 최고위원, 이연재 대구시장 후보가 왔다. 한나라당 지도부와 출마예정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행사 도중에 미리 헌화하고 자리를 떠 주최측의 거센 반발을 샀다.
정동영 의장은 추모공연이 거행되던 4시 50분쯤, 공연을 보고 있던 유가족들에게 인사하고 희생자 영정 앞에 헌화한 뒤 자리를 떠났다. 이 과정에서 취재진들이 정동영 의장 움직임에 한꺼번에 몰리고 열린우리당 관계자들도 대거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행사장이 순간 어수선해졌다. 때문에 추모제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정 의장측에 거세게 항의했다.
추모제 사회를 보던 오규섭(추모제 집행위원장) 목사는 "헌화는 유가족이 먼저 하는 겁니다"라며 정 의장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했다.
또, 대구경북통일연대 오택진 사무처장도, “정치인은 다 이렇게 하느냐”면서 “유가족들 보다 먼저 헌화하고 제 멋대로 가는게 어딨느냐”고 따졌다. 또, “공연 도중에 이렇게 하면 공연은 뭐가 되느냐”고 비난했다. 정 의장 일행은 “시간 때문에”라는 말만 남긴 채 몇몇 인사들과 악수하며 서둘러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정치인의 모습에 또 한번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추모제에서는 올해 창작한 인혁당 추모곡 ‘어딨느냐 꽃같은 이’가 처음으로 선보였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부네굿과 진혼무, 노래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글.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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