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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해 불같이 항쟁하던 동지였는데..."
'인혁당' 민촌(民村) 라경일 선생 별세...시민사회, 7월 15일 '민족민주장' 거행
2010년 07월 13일 (화) 13:45:37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이른 바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은 민촌(民村) 라경일 선생이 여든을 일기로 별세했다. 라경일 선생은 7월 12일 밤 11시 대구시 달성군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빈소는 대구시 수성구 욱수동 '모레아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15일 오전 9시 이 병원에서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민족민주장'으로 거행된다. 장지는 '인혁당' 희생자들이 안장된 칠곡 '현대공원'으로 결정됐다. 고인은 그동안 대구시 수성구 시지에서 부인과 아들 내외와 지냈으며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제일모직' 노조 결성...'인혁당' 무기징역

   
▲ 민촌(民村) 라경일 선생의 '팔순연(2009)'
'민주.통일인사'로 불리는 민촌(民村) 라경일 선생은, 1930년 일본 나가사키현에서 태어나 태평양전쟁 총동원령으로 야마구지현에서 철도역무원으로 일하다 1945년 대구시 중구 동인동에 정착했다. 한국전쟁 전후에 병원 조수로 일했던 라 선생은 1957년 제일모직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노동운동과 민주.통일운동에 헌신하며 고초를 겪었다.

1960년 제일모직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을 주도하다 해고된 것을 시작으로, 1961년에는 5.16군사쿠데타 예비검속으로 구금됐으며, 1968년에는 세칭 '남조선해방전략당' 조작사건으로 구속,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971년 '반독재 민주수호국민협의회'에 참여한 라 선생은 1974년 이른 바 '인민혁명당 재건단체' 조작사건으로 구속돼 이듬 해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82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날 때까지 8년8개월을 복역했다.

민자통.범민련...민주.통일운동에 헌신

또, 1988년 '민족자주평화통일대구경북회의' 결성에 참여한 라 선생은, 1996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석방되기도 했다. 

라 선생은 '범민련대경연합' 부의장(1996)을 지낸 것을 비롯해, 최근까지 '민족자주평화통일(민자통) 대구경북회의' 상임위원과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 (사)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와 '6.15공동선언실천 대구경북본부' 고문을 맡아 지역 민주.통일운동에 힘썼다.

라 선생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은 2007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심에서 '무죄'로 판결났으며,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역시 2008년 과거사위원회에서 '조작사건'으로 결론났다. 라 선생은 2009년 11월21일 "새로운 다짐으로 다시, 여든부터 시작입니다"라는 의지로 팔순연을 열기도 했으나 끝내 세월의 병을 이기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유신반대 '3총사', 지하신문, 염소 직매장...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으로 라 선생과 같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창덕(84) 선생은 "온순함 성품이나, 정의를 위해서는 불같이 항쟁하던 동지였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또, "제일모직에 있을 때는 그 이병철 아래서 노조를 만들었다 쫓겨났고, 인혁당으로 고생한 뒤에도 민자통.범민련 같은 일을 하며 끝까지 민주.통일을 위한 자신의 인생을 다바치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강 선생은 "고인과는 4.19이후 50년을 평생 동지로 살아왔다"며 1970년대 '유신 반대운동'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1972년과 73년쯤, 대구에서 유신반대운동을 할 당시 라경일.이재문.강창덕 이렇게 우리 3명은 반유신 행동대원 '3총사'로 불리기도 했다"면서 "고인과 유신반대 지하신문을 발행하려다 경찰에 붙잡혀 미수에 그쳤고, 유신반대운동을 하기 위해 대구 봉덕시장에서 '와룡산 염소목장 직매장'이라는 위장사업을 같이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라경일 선생이 떠나기 하루 전인 7월 12일 오후, 강창덕 선생을 비롯해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을 같이 겪었던 박연자.김한덕.김종대.이창복 선생이 병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그래도 평생 동지라고, 모두들 서울에서 찾아와서 인사하고 그렇게 보냈지...". 고인을 기억하는 강창덕 선생은 '50년 동지'와의 이별에 슬품을  감추지 못했다.

15일 '민족민주장'...옛 제일모직 앞에서 노제

한편, '민자통'을 비롯한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강창덕 선생과 문정현 신부(재단법인 4.9통일평화재단 이사장)를 비롯한 단체 대표들로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15일 오전 9시 모레아장례식장에서 '통일민주인사 민촌 라경일선생 민족민주장'을 거행한다. 특히, 이날 10시 30분에는 고인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해고된 대구시 북구 칠성동 옛 '제일모직'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오후 2시 칠곡 현대공원에서 하관식을 갖는다.


민촌(民村) 라경일 선생

1930 일본 나가사키현 출생
1942 나가사키현 야하다시 고등소학교 입학
1943 태평양 전쟁 총동원령으로 야마구지현에서 철도역무원으로 일함
1945 태평양전쟁 종전 후 귀국(당시 16세) 대구 동인동 정착
1947 대구 신암동 소재 대영의원에 조수로 취업
1950 한국전쟁 중 국군에 징집되어 군복무
1953 대구의과대학병원 병리실험실 보조수 근무
1957 제일모직 공채 1기 입사
1960 제일모직 노동조합 결성 주도 결성준비위원, 감찰위원장 역임. 파업주도 혐의로 해고
1961 5.16 군사쿠데타로 예비검속, 구금 후 석방
1964 부산에서 모직상사 근무
1967 한국나일론(현 코오롱그룹) 근무
1968 세칭 남조선해방전략당 조작사건으로 구속.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선고
1971 반독재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참여
1974 세칭 인민혁명당재건단체 사건으로 구속
1975 비상고등군법회의를 거쳐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1982 형 집행정지로 석방(8년 8개월 복무)
1988 민족자주평화통일대구경북회의 결성에 참여
1991 대구 범어동 광명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
1996 조국통일범민족대구경북연합 부의장 역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건으로 구속, 집행유예로 석방
2007 서울중앙지법에서 인혁당재건단체사건 재심 무죄판결
2009 과거사위원회에서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조작사건으로 진실규명 결정
현재 / 민족자주평화통일 대구경북회의 상임위원 /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
(사)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고문 / 6.15공동선언실천대구경북본부 고문/ 10월항쟁유족회 고문
대구경북진보연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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