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값 못하면 간판 내려라"

평화뉴스
  • 입력 2007.01.1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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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남 칼럼]...
"현학적인 운동 비판가들한테 귀를 빌려주지 말자"

해돋이에서 해맞이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새해의 새 아침에 떠오르는 ‘새’해를 바라보며 새로움이 되고자
고생길을 마다 하지 않는다.

새해에 새로움이고자 하는 사람들을 두고 가진 자이니 못 가진 자이니 구분할 필요가 없다. 이 땅의 우리들 모두는 그 새로움이 주는 상징의 체험에서 한해의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는 그 이름값을 하려고 유난을 떠는 우리의 모습에서, 한국인이야말로 이름에 목을 매는 ‘이상주의자’임에 틀림없다고, 그것은 축복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기 위해, 신년의 인사글을 쓰고 있다.

페스탈로찌는 순정한 이상주의자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제각기 이름을 갖고 있다고, 그이름을 불러서 존재를 체험케 하고 다시 존재하는 것에 이름을 새겨넣을 때까지 눈과 귀를 고정케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난하고 지친 아이들의 품격을 높이는 교육의 신작로가 되리라고 꿈꾼 사람이었다.

술이 그나해지면 어김없이 ‘해는 저서 어두운데...' 노래하는 이상주의자 내 친구가 있다.
그가 부르는 ‘동무생각’의 선율은 먹을 것 없었던 어릴 적 시절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풍족한 오늘을 미안해 하는 인생론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 애절한 선율이 지닌 상징은 그의 60년 세상살이의 현실을 수식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골목길 담장 넘으로 흘러나온 ‘로망스’의 멜로디가 음악의 세계를 탐험하는 안내자가 되었고, 그리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육학이 되었다고 말하는 지금은 교사가 된 나의 학생도 있다. 육신의 소멸이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어머니’의 상징과 이별하지 못해서 만들어내는 노래는 또 얼마나 많은가.

거리마다 이름을 달고 있다. 선술집도 이름을 얻었다.
그 이름으로 길이 살아나고 막걸리가 살아난다. ‘국어교육론’이 아닌 ‘배달말 가르치기’라는 이름을 얻자,
그게 놀랍게도 <우리말 대학원>이라는 실체를 탄생시켜버린 그런 희안한 사건도 있다.

르네상스란 이런 류의 사건들이 마구 저질러진 시대에 붙인 이름이 아닐까.
존재의 소리를 그 존재의 이름이 되게 하려고 안달했던 시끌벅적한 세태를 르네상스라고 했음에 틀림 없으리라.
그때부터 삶의 일상에 유머가 스며들지 않았을까.

머지않아 우리의 공원벤치도 이름을 달게 되겠지.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벤치에 새겨 그 사람을 살려내는 상징놀이가 우리들 공원에도 곧 시작되겠지.

빈곤 침략 분단 독재. 냉엄한 객관에 시달리다가 우리는 어느새 상징의 주관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마음속을 밖으로 드러내도 아무탈 없는 그야말로 주관의 해방을 맞이 하고 있다.

현실의 모순을 타령조로 읊조리지 않아도 되는 세월을 살게 되었다.
주관을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그것을 창조의 자원이라고 우긴들 아무도 시비걸지 않게 되었다.
에비타의 죽음을 접한 아르헨티나 민중의 통곡을 블루스 춤으로 그려낸 슬픔의 미학에 취해서 몇 번이나 영화를 보았드랬는데, 이제 우리 영화도 그 이상의 것을 창조하고 있지 않은가.

정신의 주관적 성장을 꿈꾸는, 정신의 성장에서 영원성을 조망하는 이상주의자는 마르크스식 체제의 영원성에 선뜻 따라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 이상주의자는 목적을 세우고 수단을 강구하는 기술공학적 안목으로 사회과학을 혹은 운동론을 내세우는 사람들한테서도 정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름을 짓자. 그 이름값을 지불하려고 고민하자.
'우리세상'이라고 이름하여 우리세상놀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벗'라고 이름하여 책읽는 아이들의 모듬을 지어려는 사람들도 있다.
'희망제작소'라고 이름하여 '진보'를 잉태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평화뉴스'의 평화의 이름은 어떤가.
그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면 간판내리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그 이름이 이미 풍기고 있지 않은가.

관변임을 한번에 알아볼 수 있는 이름을 달고 있거든 거들떠도 보지말자.
운동단체인체 행세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든 외면해버리자. 현학적인 운동비판가들한테 귀를 빌려주지말자.

유별나게 이름에 애착하는 한국인이다.
이상주의자 한국인은 모든 문제를 사람 문제로 돌리게 되어 있다.
사람문제라고 보기에 말끝마다 됨됨이를 따지고, 교육에 열을 내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비과학이라 하고 또 보수라고 비판한들 무슨 뽀죽한 수가 있겠는가.

이름을 새롭게 하고 그 이름을 행위하는 모범이 이상주의자들을 감동시킨다.
새해를 맞이하며 꿈같이 이야기했다.


<김민남 칼럼 8>
김민남(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경북대 교육학과. mnkim@knu.ac.kr )




(이 글은, 2007년 1월 2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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