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9일, 대구시 동구에 있는 아양교 ‘아치형’ 보도교 철거 현장.
철거를 지켜보던 지역 장애인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지난 3년 6개월 동안 싸워 온 성과(?)지만 기쁘지 않다. 결국 이렇게 혈세만 날리는 꼴이란..
아양교 ‘아치형’ 보도교.
대구 동구청은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를 앞둔 지난 2003년 9월, 대구 관문인 아양교의 이미지를 좋게 한다며 2억6천만원 예산으로 ‘아치형’ 보도교를 설치했다.
그러나, ‘아치형’ 보도교는 장애인과 노약자들에게 불편만 줬다.
특히, 휠체어를 타고 이 다리를 건너야 하는 장애인은 이만 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참다 못한 한 장애인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고, 인권위는 ‘시설개선 권고’를 결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4년 10월, “아치형 보도교가 노인과 장애인, 임산부 등의 인권(이동권)을 침해한다”며 “보도교를 철거하거나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성을 고려해 시설을 개선하라“고 동구청에 권고했다.
‘인권침해’라는 불명예를 안은 동구청은 이 때부터 ‘오락가락’ 행보를 하게 된다.
동구청은 장애인단체의 반발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설개선 권고’까지 받자, 2005년 5월, 4천5백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아치형 보도교 옆에 별도의 ‘인도교’를 만들기로 하고 시공업체까지 선정했다. 왕복 7차선인 아양교 도로 폭을 조금 줄여 1.5m 넓이의 보행자 인도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동구청은 그러나, ‘일부 단체와 주민의 반대’를 이유로 착공조차 하지 않고 1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듬 해 2006년 4월, 다시 ‘시설개선사업 추진계획’을 확정한 뒤, “2006년 7월 중순까지 공사를 마치겠다”는 내용의 공문까지 지역 장애인단체(대구DPI)에 보냈다. 당시 동구청이 확정한 ‘시설개선사업’은 한해 전 2005년의 계획처럼 별도의 ‘인도교’를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2006년 7월, 이재만 동구청장이 취임하자 ‘인도교 설치’라는 이전 계획을 다시 백지화했다.
또 똑같은 이유, ‘일부 주민의 반대’를 내세워 다시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동구청은 ‘일부 주민’이 누구인 지 밝히지 않은 채, 이들이 ‘별도의 인도교 설치’보다 ‘아치형 보도교의 철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처럼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지 않고, 다시 계획 세우고 백지화 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2007년 3월, 동구청은 ‘인도교 설치’라는 기존 계획을 바꿔 ‘아치형’ 보도교 철거에 들어갔다.
아양교에 ‘아치형’ 보도교가 들어 선 지 3년 반만의 ‘실행’이다.
지난 3년 반동안 지역 장애인단체는 수십차레나 동구청을 찾아가 ‘시설개선’을 촉구했다.
그 때마다 동구청은 ‘여론 수렴’과 ‘계획 수립’을 말했고, 심지어 ‘공문’까지 보내 약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철거’됐다.
‘인권 침해’와 ‘오락가락’ 행정, 그리고 2억6천만원의 설치비와 수천만원의 철거비..“예산낭비”.
행정기관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인권침해에 혈세까지 낭비하고도 동구청은 사과조차 없다.
불만과 불신을 낳은 아양교 ‘아치형’ 보도교.
설치부터 철거까지 지켜보고 있는 장애인의 마음은 착잡하다.
아양교 바로 옆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대구DPI(장애인연맹) 육성완 사무국장은 “그동안 수없이 동구청을 찾아가 시설개선을 요구했고, 이제는 그 보도교의 철거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아치형 보도교를 부수는게 최선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만들고 부수고, 행정이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며 비난했다. 육 국장은 또, “인권침해에 혈세 낭비까지, 구청이 이렇게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꼴이나, 이 지경까지 왔지만 주민들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 그저 씁쓸할 뿐이다”고 말했다.
글.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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