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지식인의 자경문(自警文)

평화뉴스
  • 입력 2007.04.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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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진보와 보수, 혼란과 대립..지식인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기대는 단순했다. 민주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였고 민주화 추진에는 신상의 위험도 따랐기 때문에, 일반 국민은 지식인이 나서서 민주화에 기여해주기를 바랐었다. 그러는 가운데, 지식인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형식적이나마 민주화는 많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제 지식인의 역할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식인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부문은 여전히 많다. 형식적 민주화를 넘어 실질적 민주화를 이룩해야 한다. 또 이제는 민주와 반민주, 적과 동지, 옳고 그름이 분명하게 나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지식인의 과제는 더 복잡해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을 분단하는 최대의 장벽은 지역감정이었다. 그래서 민주화와 더불어 지역감정 타파도 중요한 사회적 과제였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부터는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새로운 장벽이 지역감정의 장벽보다 높아지기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더욱 심해졌다.

이념이라는 장벽은 지역감정이라는 장벽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지역감정에 관해서는 모든 국민이 ‘지역감정은 망국병이고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는 원론에 동의하고 있고 또 당사자도 ‘잘못인 줄 알지만 상대가 그렇게 나오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념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각 진영이 모두 자신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이념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와 정서로 뭉친 현실의 이념사단(理念師團)은 그렇지 않다.

진보의 입장에서 보는 현실의 보수는, 이상사회를 향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속물이며 부당한 기득권을 누리면서 추호도 양보하지 않는 이기집단이다. 반면 보수의 입장에서 보는 현실의 진보는, 물정도 모르면서 설치는 하룻강아지이며 ‘사회정의’라는 이상한 깃발을 들고 떼를 쓰는 집단이다. 그러다보면 인간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고 혐오만 남는다. 오늘날의 자칭 ‘지식인’도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이런저런 변명을 하면서 몸을 사리던 사람들이 요즘에는 오히려 더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편을 가르고 있다.

이러한 혼란과 대립의 시대를 맞아 지식인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지식인이란 ① 공정한 태도와 따뜻한 애정으로 사회를 잘 살피고 ②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며 ③ 때로는 그 구현을 위해 현실참여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런 지식인이 되기 위해 필자가 스스로 다짐하는 (그러나 실제로는 잘 못 지키는) 수칙이 있다.

첫째 수칙은 원리 원칙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진보-보수 갈등에서 어느 편이 될 것인가를 먼저 결정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면 누구나 동의할 공통의 원리를 찾고, 그 원리에서 출발하여 논리적으로 현안에 관한 결론을 도출한 다음, 그 결론이 어느 쪽으로 기울건 상관없이 이를 견지해야 한다. 우리는 개혁이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있지만, 개혁도 무슨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천하자는 것이 아니라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로, 원칙을 중시하더라도 현실 정책에 대해서는 균형 잡힌 기준을 적용한다.
현실이라는 제약조건 속에 놓여있는 정책에 대해 ‘완전하지 않으면 반대’라는 기준을 적용한다면 찬성할 수 있는 정책이 있을까?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주권국가라면 외국 군대의 장기간 주둔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우리가 당장 그렇게 할 형편이 안 된다면, 대추리 주민이 삶의 터전을 상실한다는 이유를 들어 기지 이전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 현지 주민의 강제 이주는 대부분의 공공사업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이고 또 기지 이전에 반대한다면 미군이 수도의 한복판인 용산에 그대로 주둔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무의식적으로 강자 또는 다수에 동화되려는 자신을 경계한다.
인간은 자기보존과 생존극대화를 위해 강자와 한 편이 되어 쉽게 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포기하는 수가 있고, 심하면 약자를 왕따시키는 데 적극 가담하기도 한다.
정권 말기를 맞아 집권세력이 교체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현 정권의 공과에 대한 냉정한 판단 없이 ‘노무현 때리기’에 너나없이 가담하는 세태도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지식인이라면 이런 본능적인 쏠림을 경계해야 한다.

넷째로, 무조건 약자의 편을 들어서도 안 된다.
약자라고 해서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며 또 약자가 언제나 약자로 머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양비론이 아니냐?’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남을 비난하면서 자신만 빠져 나가겠다면 그것이 잘못이지, 양비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 자체를 금기시하는 시대에는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주어야 하지만 노동조합의 이기적 속성까지 옹호할 수는 없다. 노동조합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업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거나 정규직 노동조합이 오히려 강자가 되어 비정규직과 영세 하청업체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경우는 당연히 냉정한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한다.

 
 
 








[김윤상 칼럼 1]
김윤상 / 평화뉴스 칼럼니슽.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



(이 글은, 2007년 4월 9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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