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용서를 구해야 한다"

평화뉴스
  • 입력 2007.06.0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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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남.홍덕률 두 교수의 '성찰'...
"의무로 권리를, 헌신으로 권력을 말하라"


“나는 그동안 자유가 허용된 직장에서 나와 제도적으로 관계 맺는 사람들의 시간과 정력을 탕진했다.
의무를 말하곤 했지만 의무의 행위는 지극히 자의적이었다. 그런 나머지 경쟁과 성공의 주류 교육학을 비판하면서 그것을 전승하는 자기 기만을 일삼았다”

원로 교육학자 경북대 김민남 교수의 자기 고백이다.
김민남 교수는 6월 8일 오후 대구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사)대구사회연구소 창립 15주년 기념 심포지엄 발제에서 이처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성찰’로 말문을 열었다. 김 교수는 17쪽에 이르는 발제문 내내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글을 이어갔다.

경북대 김민남 교수
경북대 김민남 교수
특히, 발제문 첫장에서는 “나는 반성하기도 하는 글쓰기를 할 참인데, 그것은 틀림없이 ‘나는...’이라는 문체를 수반하게 된다”며 “나에게 쓰는 편지 같은 것이기에 혹시 내 글을 읽는 분들은 조금도 마음을 상해할 필요가 없다”고 단서를 달기도 했다.

김 교수는 ‘앎의 운동과 지식인의 도발’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나는 지식인인가. 어중간하기 짝이 없는 나의 처지를 고백하는 것이..”라는 말로 ‘지식인임을 자임하기 어려움’을 털어놨다.

또, “나는 세상을 혼자 걱정하는 말과 글을 하지 않아야지 하면서 그게 어찌 그리 어려운지..”라며 지식인으로서 반성을 이어갔다.


우리 사회 지식인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면서도 발제 내내 자기 성찰과 고백을 잊지 않았다.

“학문을 아직 이 지경에 남겨둔 것은 오로지 지식인의 책임이다. 여건부족이라고 변명하는가. 지식인은 자연적으로 한국인임을 실패한 것이다. 지식인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다닌 것이다. 지식인은 한국인의 삶의 범주를 따르지 않았다. 지식인은 아무도 문장이 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삶을 폄하했을 지도 모른다. 민족과 민중을 입에 달고 있으면서 그것을 행위의 이유로 삼지 않은 것이다. 민족과 민중이라는 말로 다른 사람을 현혹시켰다. 그것을 가지고 ‘확 뒤엎어 버리는’ 권력 욕구를 부추겼다”

김 교수는 또, “지식인은 의무를 가지고 권리를 말하기, 헌신을 가지고 권력을 말하기, 소명을 가지고 직업을 말하기, 철학을 하여 정치적 결단에 이르기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라면서 “성찰은 도덕이 아니라 ‘용서를 구하는’ 존재 방식”이라고 했다.

토론자로 나선 경북대 김윤상 교수는 김민남 교수의 발제에 대해 “수십년 교육학자로서 그리고 양심적 지식인으로 살아오신 분으로서 학문과 지식인에 대한 소회를 토론하신 것 같다”며 “특히, 지식인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편싸움을 벌이는 이 시대에 ‘이해와 용서, 근본과 현안, 앎과 교제(사회적 맥락), 연구와 활동’을 하나로 뭉치는 것을 상상하고 ‘지식인이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김 교수의 자세가 더욱 귀하다”고 말했다.

경북대 김윤상. 대구대 김재훈. 경북대 김민남 교수. 송해익 변호사. 영남대 김태일 교수. 최현복 사무처장.
경북대 김윤상. 대구대 김재훈. 경북대 김민남 교수. 송해익 변호사. 영남대 김태일 교수. 최현복 사무처장.


이날 심포지엄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대구대 사회학과 홍덕률 교수도 ‘지식인의 성찰’을 강조했다.
홍덕률 교수는 ‘역사적 전환기, 지역 지식인의 역할 : 성찰과 과제’라는 발제에서 대구경북지역의 대학과 교수사회를 비판하며 “각종 부도덕과 나태, 비리를 통렬하게 반성하고 스스로 청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교수는 먼저,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자의 책임’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인문학 위기의 본질은 인문학자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며 “정부나 대학의 지원 같은 다른 이유를 대지 말고 인문학자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역사적 전환기에 국가와 사회와 지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민중의 고통과 지적 혼돈을 외면해 온 인문학자들의 역할 방기가 인문학 위기의 진정한 원인”이라며 “때문에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자들의 역할 위기’며 ‘인문학자의 사회경제적 위기’가 더 정확한 말”이라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정치에 기웃거리는 교수들 ▶대학내 파벌.패거리 정치에 몰두하거나 휘둘리는 교수들 ▶돈을 중요한 가치로 삼아 처신하는 교수들 ▶연고주의의 포로가 된 교수사회 ▶표절.대필.연구부실, 도덕적 타락과 불.탈법 비리로 얼룩진 교수사회를 꼬집었다.

특히,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할 기회 ▶정보.자료 접근권을 비롯해 다른 사인(私人)들과 비교해 월등한 특권 ▶시민사회를 대표한 과도한 사회적 발언권을 예로 들며 ‘교수.지식인’이 누리는 ‘특권’을 지적한 뒤, “자신의 공적 지위와 공적 역할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공적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에 몰두하는 교수를 흔히 만나게 된다”며 비판했다.

홍 교수는 “지역 교수사회에 내재해 있는 각종 부도덕과 나태와 비리를 통렬하게 반성하고 스스로 청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시민과 민중과 사회운동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소통할 수 있는 매체나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맺었다.

경북대 김석수. 계명대 김혜순. 대구대 홍덕률. 계명대 김영철. 경북대 김규원 교수. 이종태 연구위원
경북대 김석수. 계명대 김혜순. 대구대 홍덕률. 계명대 김영철. 경북대 김규원 교수. 이종태 연구위원



한편, 이날 심포지엄은 ‘지역과 지식인은 상보성(相補性)을 가지는가?’, ‘세계화 시대, 지역에서 지식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두 주제로 나눠 김민남.홍덕률 두 교수가 각각 발제한 뒤 토론했다.

첫 주제에 대해서는 경북대 김윤상(행정학과). 대구대 김재훈(경제학). 영남대 김태일(정치외교)교수. 대구흥사단 최현복 사무처장이, 두번째 주제에 대해서는 경북대 김규원(사회학).김석수(철학)교수, 계명대 김혜순(사회학) 교수, 금융경제연구소 이종태 연구위원이 각각 토론했다. 토론회 사회는 송해익 변호사와 계명대 김영철(경제학) 교수가 맡았다. 대구사회연구소 회원을 비롯해 50여명이 참석했다.


글.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김 체칠리아 수녀가 마을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 체칠리아 수녀가 마을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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