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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씨만한 보탬이라도 될 수 있었다면.."
통일.민주인사 야성(野星) 강창덕 선생 팔순연
..."7천만 염원의 그날은 자주통일"
2008년 01월 05일 (토) 19:18:39 평화뉴스 pnnews@pn.or.kr

"불초 저는 끝까지 불꽃 한번 못내고 연기만 내고 마는 젖은 짚단처럼 한 평생 못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한 구석 자위하는 마음은 숨어있습니다. 비록 거칠고 험상 궂은 황야에 젖은 짚단의 한줄기 연기일지라도, 그 연기가 행복한 삶을 꿈꾸며 투쟁하고 전진하는 민족.민주.민중의 암울하고 엄혹한 행로에 길잡이로써 담배씨만한 보탬이라도 될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지 하는 간절한 소망이 아닐까 합니다."

   
▲ 야성(野星) 강창덕(姜昌德) 선생
 
대구지역의 원로 통일.민주인사 야성(野星) 강창덕(姜昌德) 선생의 팔순(八旬) 축하연이 5일 오후 대구의 한 호텔에서 열렸다. 가족을 비롯해 지역 평화.통일운동과 시민사회단체, 정당 관계자를 비롯한 200여명이 참석해 선생의 삶을 되새기며 건강을 기원했다. 4남2녀 자제들이 직접 사물놀이 공연을 하기도 했다.

강창덕 선생은 감사 인사를 통해 "불꽃 한번 못내고 연기만 내고 마는 젖은 짚단처럼 한 평생 못난 삶을 살았다"며 "그러나, 민족.민주.민중의 엄혹한 행로에 길잡이로써 담배씨만한 보탬이라도 될 수 있었다면 다행"이라고 삶을 되돌아봤다.

또, 심훈(沈熏)의 시(詩) '그날이 오면'을 인용하며 "7천만 백의민족이 바라는 염원의 그날은 조국의 자주통일독립국가 건설이요, 우렁찬 목소리가 3천리 강산에 울려퍼지는 그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선생은 흰 종이에 쓴 인사말을 읽는 가운데 '열사들'의 명복을 빌며 울먹이기도 했다.
"오늘 저는 이 순간 지난날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투쟁과 운동의 선상에서 이슬처럼 먼저 가신 열사님들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강 선생은 '암울한 시기' 옥중에서 어느 선배에게 '야성(野星)'이라는 호(號)를 받았다고 소개한 뒤, 그 호를 한문시로 풀이한 구절을 읽으며 감사 인사를 마쳤다.

야초린부생(野草躪復生) 성광야유명(星光夜唯眀)
"들풀은 밟고 밟아도 다시 살아나고 별빛은 밤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욱 밟고 빛난다"



   
▲ 가족들 품에서 감사 인사를 하는 강창덕 선생...'열사들'의 명복을 빌며 울먹이기도 했다.
 


강창덕 선생은 언론인으로 시작해 민족.민주.통일운동에 한 평생을 바쳤다.

192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선생은 건국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56년 영남일보 공채 1기로 입사에 정치부 기자로 사회 첫발을 내딛었고 2년 뒤 58년 대구매일신문사로 옮겼다. 그러나, 1960년 사회당 경북도당 선전.조직위원장을 시작으로, 67년 '반독재 재야민주세력단일후보 추진위원회' 활동과 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대구경북상임공동의장, 93년 경산민우회 초대회장을 지내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선생은 이같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무려 7차례 투옥돼 13년을 복역하기도 했다.
특히, 일제시대 말기인 1944년(17살) 친구들에게 상해임시정부와 만주독립군 활동을 얘기했다 '반일사상 고취' 혐의로 구속됐고 45년에는 일본해군지원병 입대를 피해 도피하다 붙잡혀 구속됐다.

선생의 고난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됐다.
47년 학생웅변대회에서 '남조선 단독선거'를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미군정 포고령위반'으로 구속됐고, 52년에는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 서상일 후보(초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과정에서 '무력통일 반대, 평화통일'을 선거운동원들에게 주장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4번째 구속됐다. 또, 61년에는 '반공법 제정 반대' 집회와 '남북학생회담 촉진 시민궐기대회' 연설로 두차례나 구속되기도 했다.

그리고 1974년, 이른 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돼 모진 고문과 함께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82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8년8개월을 복역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국무총리실 소속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고, 2007년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심에서 '인혁당 무죄'가 선고되면서 오랜 멍에를 벗었다.

선생은 82년 출소한 뒤 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대구경북상임공동의장, 93년 경산민우회 초대회장을 지내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고 90년대 이후에는 평화.통일운동에 힘을 쏟았다. 지금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고문을 비롯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남북평화나눔운동본부 고문을 맡고 있다.

선생은 민주.통일운동 뿐 아니라 이 뜻을 펴기 위해 정당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51년 민주국민당 경북도당 상무를 시작으로 , 56년에는 진량중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진보당 창당준비위원으로 참여해 진보당 대통령 후보 조봉암 경산군 선거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60년 사회대중당(대표 서상일) 창당준비위원, 61년 사회당(대표 최근우) 경북도당 선전.조직위원장을 거쳐, 1990년에는 신민당(대표 김대중.이우정) 중앙위원회 의장을, 91년에는 민주당(대표 김대중.이기택) 당무위원을 지냈다. 이후 2002년까지 신민당.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 대구경북시도당 상임고문을 맡으며 한국 정치사와 함께 했다.


평생 민족.민주.통일을 위해 살아온 야성(野星) 강창덕(姜昌德) 선생.
"들풀은 밟고 밟아도 다시 살아나고 별빛은 밤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욱 밟고 빛난다"는 싯구처럼, 선생은 수많은 투옥과 고난에도 뜻을 잃지 않았다. 팔순, '조국의 자주통일'이라는 선생의 오랜 염원이 더 간절하게 울려퍼졌다.

글.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 통일.민주인사 강창덕 선생 팔순 축하연...평화.통일.시민사회단체와 정당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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