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창립 20년을 맞은 대구여성회. 그 20년 가운데 10년을 '회장'으로 지낸 안이정선(53)씨가 지난 20일 총회에서 '10년 회장'의 짐을 내려놨다.
안이정선씨는 대구여성회가 창립한 이듬 해 1989년 이 단체에 발디딘 뒤 1991년부터 4년동안, 2002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0년을 회장으로 지냈다. 이번 총회에서 대구여성회 사무국장을 지낸 김영순.정종숙 공동대표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줬다.
'10년 회장'의 소회를 묻자, "좀 섭섭하고 많이 시원하다"는 말로 그는 웃어 넘겼다. '여성가족부'를 통폐합하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서는 "그동안 노력이 도로아미타불 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올 2월에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과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대표도 그만 둔다. 대구여성회 회장과, 그 직함으로 함께 한 모든 여성.시민단체 공식 활동을 정리하는 셈이다. 그에게 소회를 물었다.
- 10년이나 회장을 했는데, 섭섭하지 않으신지?
= 좀 섭섭하고 많이 시원하다. 이제 좀 쉬고 싶다. 쉬면서 정리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싶다.
- 20년동안 여성운동을 했다. '성평등사회', 돌아보면 어떤까?
= 아직 갈 길이 멀다. 법과 제도는 많이 좋아졌지만 생활 속의 의식까지 달라지려면 아직 먼 것 같다.
그동안 여성단체에서 열심히 목소리를 내 성폭력.가정폭력특별법, 성매매방지법이 생겼고 고용평등법도 많이 개선됐고 보람도 느낀다. 그래도 지역의 여성문화, 성평등문화가 우리 피부까지 와닿으려면 더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성평등문화에 대한 '교육'이 중요한 것 같다.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여성부’ 폐지를 비롯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국회에 냈다.
= 그동안 노력이 정말 ‘도로아미타불’ 된 것 같다. 성평등사회로 가는 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부는 여성단체의 오랜 요구에 따라 지난 2001년 만들어졌다. 아직 10년도 되지 않았다. 여성문화와 성평등사회를 위해 깊이 고민하고 풀어야 할 일들이 아직 너무 많은데, 뿌리까지 자르듯 하는 인수위원회의 폐지 방안이 안타깝다. 여성부는 꼭 필요하다. GNP 수치만 높아진다고 선진국 되는 건 아니다. 벌써부터 거꾸로 가는 이명박 정부, 정말 안타깝고 걱정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1999년 11월이었다. 대구백화점 앞에서 ‘죽은 딸들을 위한 영혼 살풀이 굿’을 한 적이 있다.
대구는 성비 불균형이 심하고 남아선호 때문에 여아 낙태비율이 높다. 태아 성감별이 불법이지만 산부인과에서 공공연히 알려줬고 딸아이를 지우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죽은 딸들을 위한 굿을 했다. 부산에서 진짜 무당을 데려왔고 경북 상주에서 대나무를 사왔다. 대구백화점 앞에는 수백명이 모였다. 굿판이 끝날 때쯤, 무당이 오색천을 잘라 낙태 경험이 있거나 아들 못놔 설움 받은 사람들에게 나눠졌다. 그런데, 그 오색천을 받아가는 사람이 끝이 없었다.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자연을 거스러는 짓인데...적어도 아들은 있어야 된다는 정서가 아직 많다. 사람들 생각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 힘든 일도 많았을텐데?
= 그동안 참 사건도 많았고 좋은 일 안좋은 일도 많았다. 착잡하기도 하다. 회장을 하며 궂은 일도 해야 했다. 쓴소리 하는 일...심지어 임원 가운데 1명이 대구여성회 명예를 훼손한 적이 있었는데, 회원 탈퇴로는 부족해 제명시킨 일도 있었다. 참 마음이 아팠다. 사람간의 갈등도 왜 없겠는가. 이런 저런 궂은 일 할때가 제일 힘들었다.
- 여성단체, 시민단체 후배들에게..
= 여성회와 함께 대구 생활을 시작했고 여성회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시민단체가 시민들에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활동가들도 많이 나와야 하는데, 갈수록 여성단체나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생활이 어려워진다. 활동가 충원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더 힘들어지고... 그래도 후배들이 즐겁게 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닦달하면 일에 성과는 빠르지만 자신을 빨리 소진시킨다. 느리지만 여럿이 함께가는 태도 중요하다. 활동하는 후배들이 여유를 좀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 앞으로 어떻게..
= 확실히 정리하려고 한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과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대표 자리도 2월이면 끝난다. 다 정리하고 좀 쉬고 싶다. 그동안 제대로 쉰 적이 별로 없었다. 자기 정리도 하고 충전도 하고...여행도 하고 싶다. 이제 대구여성회 회원으로만 활동하며 후배들 도와줄 생각이다. 후배들 돕는 게 선배의 몫 아니겠나.
안이정선씨는 1955년 태어나 경남여고와 서울대 외국어교육과를 거쳐, 부산 성모여고와 서울 창문여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1989년 대구에 와 대구여성회 회원으로 본격적인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91년부터 4년동안, 2002년부터 2008년 1월까지 10년동안 회장을 지냈다. <여성신문사> 대구지사장과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실행위원장도 맡았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와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들 두 연대단체 대표 자리는 오는 2월 총회 때 내놓는다. 지난 2004년 유방암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건강은 괜찮다”고 한다. 딸 아이는 서울에서 직장 다니고, 아들은 올 2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한창 대입 시험을 치르고 있다.
글.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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