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들'만의 천국

평화뉴스
  • 입력 2008.04.2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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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강부자’ 정권이란 별칭을 얻으면서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각료와 비서관들이 펼치는 아슬아슬한 장애물경기가 정권 출범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웃을 일도 없고, 볼거리도 없는 어수선한 시절에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유일한 볼거리라면 볼거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난 주말은 박미석 사회정책 수석의 거취가 야당과 언론의 주된 관심사가 된 모양이다. 대학 교수이면서도 베껴 쓴 남의 논문을 자기 실적으로 내세우고도 한 줌의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당당하게 청와대에 입성한 그였지만, 재산형성 과정에서 실정법을 위반한 부분까지 ‘그럴 수 있는’ 일로 넘어가기는 좀 힘들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분들’에게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 흠결이 ‘그 분들’만을 위한 업무수행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대통령 스스로도 “부자들만 모였다는 인상”을 준다고 인정한 정권이다. 그러니 “마음을 다잡고 새로 시작하”면 되는 일이지만, 심상찮게 돌아가는 청와대와 여당의 분위기 앞에 끝내 국익을 위한 충정(?)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박수석으로서는 여론이 몹시 야속하고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박 수석의 처지는 한번 밀리면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기성 정치인들과는 사정이 확연히 다르다. 불과 두 달 만에 빈손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가야 하는 신세가 좀 허전하긴 하겠지만, 청와대를 물러나와 권력의 무상함을 곱씹으며 남은 인생을 야인의 신분으로 초야에 묻혀 살아야 하는 신세는 아니다. 그는 청와대를 떠나더라도 당당하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 그 곳에는 논문을 표절하든 말든, 절대농지를 사서 농사를 짓든 말든, 골프를 치든 말든, 무슨 발언을 하든 따로 해명을 해야 할 필요조차 없는 곳이다. 세상이 곤두박질치더라도 임금 체불이 되는 일도 없고, 정년까지 보장되는 천국 같은 곳... 그 곳은 바로 그가 이전에 몸담았던 대학이다. 또 그 대학의 총장님이 누구신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오린지’ 총장님이시다. 전공을 무시하고 사회정책 수석을 맡은 이력도 있는데, 대학에 돌아가서도 전공을 무시하고 ‘여론정치의 위험성’이란 강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실 지 또 누가 알겠는가.

박수석과 함께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다른 비서관들 중에서 교수 출신들은 비교적 느긋할 것이다. 권력의 갑주를 툴툴 벗고 나와도 그들을 따뜻이 기다리는 천국, 대학으로 돌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몸담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불나방처럼 권력의 중심부에 뛰어들었던 인물들의 처지가 좀 안스러울 뿐이다. 박수석의 결단으로 지금은 어느 곳에 숨어 후유! 한숨을 돌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지난 4월 총선에 경북대학교 교수 한 분이 느닷없이 대구 서구에 출마를 했다. 한나라당 간판을 달고, 푸른 점퍼만 입고 돌아 다기기만 하면 당선이 되는 지역에서 당대표의 낙점과 지원까지 받았으니 좌고우면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난데없이 해병대 복장을 하고 나타난 흘러간 옛 정치인에게 일격을 당했다. 사람들은 박풍(朴風)의 효과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게 과연 박풍의 효과만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낙선한 그 교수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자신만의 천국인 대학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던 강의를 내팽개치고 육아휴직을 내면서까지 지역구 출마를 했던 서울대 교수에게 서울대학은 그나마 자체 징계를 논의하고 있다. 경북대학은? 대학에서 어떤 조치가 있었다는 소문이 돈 적은 없고, 지역 언론에서도 무책임한 ‘폴리페서’들의 처신을 크게 문제 삼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총선이 끝난 뒤 영남대학교는 이번 선거에서 선출된 국회의원 중에서 자교 출신 국회의원 17명의 얼굴을 담은 신문광고를 큼지막하게 내보냈다. 국회의원들을 학교 홍보에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영남대학교 출신 장차관 명단은 학교 홍보지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이 나라 고등학교 서열을 서울대 입학생 수로 평가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그러나 몹시 잘못된,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할 교육계의 관행이다. 그런데 대학의 수준을 학문의 실적이 아니라 자교 출신 정치인과 장차관의 수로 홍보 미화하는 것은 생소하기도 하거니와, 대학이란 간판을 달고서는 할 짓이 못된다. 대학의 홍보비 역시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나오는 것, 학생들의 등록금을 털어 정치인들을 간접홍보해주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경호원으로 자처하던 유시민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대구 수성구에서 낙선한 뒤 한 지역의 신문사와 인터뷰(매일신문 2008.4.19 주말섹션)를 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그는 책도 쓰고, “... 대학 총장님 찾아뵙고 강의할” 수 있는 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끈 떨어진 정치인들에게는 강의‘나’ 하고 살며 부활의 기회를 찾도록 배려해주고, 유력 정치인들에게는 단 한번 강의에 수천만 원의 강의료를 지불하는 것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믿는 대학의 총장님!들이 이 나라의 대학들을 점점 ‘그 분들’만을 위한 천국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 분들만의 천국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비용으로 학생들의 등록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김진국 칼럼 13]
(김진국 평화뉴스 칼럼니스트.대구경북 인의협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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