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공간에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다"

평화뉴스
  • 입력 2008.10.22 18: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현장2] 한상훈(대구민예총)
<대구문화창조발전소 활성화 위한 예술난장 프로젝트>


특정한 사안이 발생하면 시민단체들은 성명서를 내거나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때로는 집회를 열기도 한다. 기자들은 정보를 모아 기사를 작성하고, 동네의 어르신들은 복덕방에 모여 목에 핏대를 세운다.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놓는 나름의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2006년, '동성5길 예술난장'을 기억하다

2006년 9월 10일, 동성5길(금융결제원 네거리 근처)에서는 보행자가 많은 거리의 보차도분리공사를 반대하는 의견을 예술행위로 보여주는 난장 ‘동성5길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들기 위한 첫 번째 거리굿’이 열렸었다. 거리를 점유한 채 보행자를 위협하며 교행하던 차량들 대신 재기발랄한 문화행사와 다양한 설치미술물 들, 호기심 가득한 행인들의 시선이 거리에 가득했다.

명확한 주장을 하기위한 자리였지만 여느 집회와는 달리 성명서, 확성기, 피켓, 구호들을 비보이들의 춤사위와 인디밴드의 기타소리가 대체하고 있었다. 백여 명이 넘는 다종다양한 소속, 장르, 성격의 예술가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뿜어내는 예술행동들은 매우 너르게 울려 퍼진 것 같다.

수개월 후 예술가들의 바램대로 차 없는 거리로 선포되거나 상시적 문화행사가 열리는 큰 변화를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동성5길의 보차도분리 안은 폐기되고 보도블럭이 깔리면서 행인들이 크게 늘었다. 거리의 활력이 보충되면서 문화거리로의 가능성은 열어놓게 된 것이다.


'대구문화창조발전소 활성화를 위한 예술난장프로젝트'

뭉쳐지지 않을 것 같고,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예술가들이 ‘난장’이라는 형식으로 짧지만 굵은 목소리를 내는 일은 흔치 않다. 국채보상공원에서 깨비예술시장과 몬스터마켓이 퇴출되는 것에 저항하는 의미로 일종의 예술점거가 시도되거나 광우병위험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촛불집회가 일종의 시민·예술난장형식을 띄면서 지난 동성5길 난장의 기억들은 되살아왔다.

예술난장의 끈질긴 생명력은 오는 2008년 10월 17일, 18일 양일동안 벌어지는 ‘대구문화창조발전소 활성화를 위한 예술난장프로젝트’(이하 ‘예술난장’으로 표기)에서 부활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여명에 가까운 지역예술가들이 추진위원으로 참여한 이번 난장행사는 옛 전매청 부지에 건립이 예정된 초대형복합문화공간, 가칭‘대구문화창조발전소’를 일종의 고급문화나 편향된 향유 층에게 쏠려있는 공간보다는 거리예술가, 생계형예술가를 위시한 지역의 열정적 예술가들과 대다수의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가자는 예술선언에 다름 아니다.



"예술난장으로 비효율적 문화시설 건립 관행을 우려하다"

예술난장을 계획하고 있는 예술인들의 행동은 이권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나 단순한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삶과 예술이 만나는 공간을 한 평이라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대구와 문화예술은 가깝고도 먼 관계이다.
대구는 근대화 이후 사진의 수도, 미술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문인의 도시 등 다양한 문화적 수사로 치장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문화예술중심도시, 공연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며 각종 초대형상업예술행사를 유치하거나 국제규모의 축제를 열고 있으며, 대형공연장 건설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지만 그 노력이 향한 곳이 어디인지는 다시 살펴봐야할 문제이다.

오페라하우스, 문예회관, 전용극장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구(區)단위마다 거대한 문화예술회관이 지어져있지만 그곳이 과연 그 지역의 특성을 온전히 담고 있으며 순수예술가와 생활예술인들, 주민들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되고 있을까? 문화기반시설을 건설할 때 우선시되는 것이 사람보다 시설이나 건물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모양새에 비해 그 활용도는 참담한 수준이다.

관이 주도하여 대규모 예산을 투입시키는 축제들은 관조직과 기업을 동원하고, 공무원들이 표 팔아주기 운동을 해서라도 살리려고 노력하는 반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자리 잡았던 자생적 예술시장은 약간의 배려와 관심만으로 일종의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으나 상행위로 일축당하며 내몰리면서 해체위기를 맞는 등 지금까지 대구의 예술행정은 일방통행으로 한정지어진 융통성 없는 외길이었다.


"무관심으로 잃은 건강, 예술난장으로 되찾자"

스트릿댄스, 전통무용, 인디밴드, 실내악단, 퓨전국악, 난타, 퍼포먼스, 설치미술, 예술시장, 클러빙, 사진전, 패션쇼, 문학행사, 아마추어 공연 등 예산이 없어 출연료를 한 푼도 지급할 수 없다고 밝혔음에도 ‘예술난장’을 진행한다는 뜻을 밝히자마자 한가락(?) 하는 예술단체, 예술가와 예술시민들이 앞 다투어 합류의사를 밝혔다. 꼭꼭 숨겨져 있던 예술열정이 하나씩 드러나고, 그것을 확인하는 작업은 절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의외로 대구라는 도시는 이렇게 적극적인 예술인들, 매력적인 예술소재들이 너르게 분포한 옥토였던 것이다.

야생의 모양새를 그대로 드러낼 예술난장은 어떠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문득 대구라는 문화옥토에는 어설픈 화학비료만 ‘실수’로 쏟지 않는다면 금새 풍년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평화뉴스 문화현장 2]  글. 한상훈(대구 민예총 사무국장)

* 대구민예총 한상훈 사무국장은 <일하는 사람을 위한 종합전시 '한 사진기 수리공이야기'>, <新길놀이: 탈춤 추는 B-boy 거리로 나서다>, <열린예술놀이터 '바람타고 색깔따라'>등의 행사를 기획했으며, 대구MBC 라디오 '토요일, 문화가 있습니다'에서 문화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8년 10월 9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