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그 붉은 첫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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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해 시인.."올해 처음 교단에 선 심지민 선생님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선생님께는 올 한해가 무척 특별했지요? 그렇게 오래 간절했던 교사가 되어, 처음으로 교단에 섰으니까요. 떨리는 마음으로 선 첫 교단, 천방지축 아이들 앞에서 당황도, 실수도 많으셨겠지만 그 모습 그대로가 꽃이고 열매인 선생님을 늦은 밤, 낮게 불러 봅니다.

 심 선생님. 우리집 현관 앞에는 산수유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 나무에는 붉은 열매 몇 알, 아직도 남았구요. 꽃 없는 이 계절에 홍등 밝힌 저 환한 나무를, 젊은 심 선생님은 어쩌면 모를 수도 있겠네요. 이리 찬 겨울에도 보석처럼 붉게 빛나는 열매 달았지요. 새 봄이 오면 바람을 뚫고 제일 먼저 노랗게 환한 꽃을 피우는 저 나무, 산수유.

 맑은 가을 날, 만국기 펄럭이는 시골 학교 운동장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9월에 부임한 선생님은 학부모인 저를 보고 얼굴을 살짝 붉히셨어요. 선생님의 그 모습이 영판, 산수유 작고 붉은 열매 같았기에, 나는 나며 들며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내 아이의 담임인 심 선생님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을 처음 뵌 그 때 저는 몇 번의 입원과 퇴원을 거치고 집으로 돌아온 즈음이었지요. 몸도 마음도 지친 제게 선생님의 그 첫 마음이 흘러와 닿았습니다. 더 이상은 다시 무엇도 할 용기가 없던 그 때, 이제 막 세상을 향해 나가는 선생님의 깨끗한 발자국. 그 깨끗한 마음이 강물이 되어 내게로 흘러왔나 봅니다. 불현듯 나는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났지요. 그렇게 심 선생님은 자신도 모르게 제게도 선생님의 그 첫 마음을 나누어 주셨지요.

 심 선생님, 어쩌면 교사는 자신의 삶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빛내기 위해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20대 젊은 선생님의 순수한 그 열정과 믿음과 땀으로 아이는 자라고, 자라서 빛나고 또 빛나며 깊어지겠지요. 선생님이 가진 뜨거운 마음을 먹고 아이가 자라 다시 누군가의 삶을 빛내기도 하겠지요. 제게도 그런 스승이 있었듯,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교사인 심 선생님도 분명 누군가의 가슴에 환한 꽃등이 되겠지요. 그 마음의 뜨거움으로 세상 꽃천지 될 봄날도 머지않았겠습니다.

 살다보면 어디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어디 쉬운 일만 있겠습니까? 가르치는 일이 어디 그리 만만찮은 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삶을 더 환하고 뜨겁게 살 수 밖에 없겠지요. 산수유 저 붉은 나무가 그렇듯, 우리는 이 계절을 온전히 견디며 더 꿋꿋해야겠지요. 아직 보이지 않는 꽃을, 바람 속에 서서 준비하는 저 나무처럼 선생님은 선생님만의 작고 노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겠지요.

 꽃이래야 눈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꽃송이 여럿이 모여야, 겨우 한 송이 꽃처럼 보이는 저 나무. 산수유. 그러나 산수유나무는 봄들을 덮고 또 봄산을 꽃천지로 덮지요. 저 나무처럼 심 선생님도 그런 뜨겁고 환한 교사가 되길 빌어요. 선생님이 가르치는 아이가, 지금 비록 부족하고 서툴지만 제 인생의 봄 들판을 눈부시게 빛낼 수 있도록 참고 견디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마침내 제 인생의 빛나는 붉은 열매를 자랑스레 가슴에 달 수 있도록 선생님은, 선생님의 아이들 곁에서 한 그루 나무로 오래 오래 서 있어 주세요.

저도 이제야 오래 절망했던 마음을 털고 온전히 산수유 그 붉은 첫 마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환하게 노란 꽃을 피울 인생의 새 봄날을 기다리겠다고 선생님께 작고 단단한 씨앗 같은 약속 하나 놓아 드리겠습니다. 

 12월, 겨울바람 찹니다. 우리 이 바람 속에서도 늘 깨어 있는 교사로, 늘 깨어 있는 시인으로 거듭 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머지않아 환한 봄꽃을 피울 심지민 선생님, 제 가슴에도 선생님의 그 첫 마음을 보석처럼 달아두겠습니다.  





 

[시인의 편지 7] 김승해 시인
(김승해 시인 / 대구 출생.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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