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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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해(시인)..."카메라 앵글 너머 분명 있는 진실처럼"


-김종국 카메라 감독님께

 김 선생님!
이렇게 가을이 옵니다.
지난 여름의 대통령 서거 소식, 이제 마음 안에서 고요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네요. 그날, 경주 보문의 한여름 꽃그늘에서 빡빡했던 일정을 잠시 접고 쉬는 틈에 문자 메시지를 통해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정리 되지 않은 그리움 위에 다시 큰 슬픔이 겹치고 말았던 그 날은, 제게도 특별한 날이었지요. 텔레비젼 프로그램 방송분을 촬영 중이었으니까요. 1박 2일 동안의 짬 없는 여행일정이며 걷고, 또 걷고 산을 올라야 하는 것보다 스냅사진에도 찍히기 싫어하는 천성으로 카메라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방송 출연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긴장한 채 처음으로 방송 촬영용 커다란 카메라 앞에 섰지요.

 그러나 웬일일까요? 저는 촬영 내내 아이처럼 즐거워. 구김살 없이 맘껏 웃었던 날이었습니다. 몇 차례의 수술로 지쳤던 마음을 털고 새롭게 시작해보자, 이제 더 이상은 아프지 말자. 다짐을 두던 즈음이었으니 저는 그 촬영 여행을 즐기고 싶었던 거지요. 그렇게 제가 늦여름 햇살 같이 웃는 동안에도 김 선생님은 한 순간도 카메라 렌즈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지요. 찍은 장면을 또 찍고, 다시 찍고 그래도 한 번 더를 외치며 카메라 렌즈를 오래 들여다보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시던 김 선생님의 모습은 제게 서늘한 바람 한줄기였습니다. 그때 김 선생님은 위태롭게 보이는 산언덕 위를 망설임 없이 성큼 오르셨지요. 저는 순간 당황하여 어떤 영상을 담기에 저렇게 무모하게 촬영하나 싶었습니다.
 
 드디어 방영되는 날, 설렘으로 기다리던 방송 화면을 보고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김 선생님께서 1박 2일 동안 마음과 몸의 정성으로 쉴 틈 없이 찍던 영상의 많은 부분들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텔레비젼을 통해 본 영상은 뜻밖에 적은 양이었습니다. 몸을 아끼지 않고 찍으시던 그 많은 컷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선생님께선 원래 촬영은 그렇게 하는 거라, 말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저는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방송으로 보여 진 화면보다 땀 흘려 촬영하고도 영상이 되어 담기지 못했던 김 선생님의 사라진 수많은 컷들이 마음 안에 남았습니다. 아, 그러나 그 영상들을 ‘사라진 컷’이라 말하면 안 되겠지요? 배경을 오래 직시하던 눈빛과 긴장과 열정이 오롯이 담긴 그 한 컷, 한 컷들은 모두 정지 화면이 되어 내 마음에 클로즈업 되어 있으니까요.

 세상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만 믿고 살라 했지요. 그렇게 참으로 오랫동안 보이는 것만 믿고 살기도 했고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저 수많은 것들이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켜 나아가게 했듯, 이제 이 가을 나는 사라진 것들이 더 아름다웠다고 말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진실이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어디에도 없이 사라져버린 화면 속의 선생님 눈빛이며 그 땀방울의 뜨거움이 보이지 않는 진실이었듯, 이제 나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말할 것입니다. 앞서 가신 두 분의 대통령이 그러했듯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힘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진실이었다는 것을 아주 늦게야 알게 되는 나는 아직도 보이는 것만 보려하고, 본 것만 믿으려 하니 여전히 어리석기만 합니다.

 김 선생님!
 선생님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선생님의 한평생이 그러했듯 남은 날들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진실을 조망하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듯. 선생님의 카메라 앵글 너머 분명 있는 진실처럼 이 세상은 우리가 보지 못한 것 속에 참으로 많은 아름다움들이 숨겨져 있음을 저는 이제 겨우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선생님! 어리석은 제가 사라진 것에 마음 두고 있는 이 순간조차도 선생님은 다시 다가올 저 수 많은 따스한 사람들의 모습과, 온기를 담은 풍경을 마음 속 화면에 담겠지요. 그래요. 이제 저도 사람이 가진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는 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새 다짐을 해봅니다. 김 선생님께서도 오래 건강하시어 세상의 모든 진심과 진실들을 화면에 올곧게 담아 눈 어두운 저에게도, 그리고 선생님의 영상을 보는 모든 시청자에게도 전해주시길 감히 청합니다.

 오래 맑은 가을 날 되십시오.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을 향해 더듬거리는 서툰 발걸음을 옮기며 그 길에서 언제 한번 꼭 다시 뵈올 날, 기약해 봅니다.






[주말에세이]
김승해 시인 / 대구 출생.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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