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매료시켰던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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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노무현, 그다운 선택..우리 모두는 죄인이 되버렸다"


  86년 나는 감옥에 있었다. 집회와 시위를 주도한 혐의다. 재판이 열렸다. 담당변호사가 나에게 질문했다. “피고인이 주도한 데모에 참가한 사람이 100명도 채 안되었죠? 그래서 시민들이 크게 동요할 이유도 없었죠?” 별 거 아니니 내보내 줘도 되지 않겠냐는 판결을 기대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받자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극소수의 행동으로 전락, 우리 투쟁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게 아닌가. 나는 대답했다. “아닌데요. 훨씬 많았습니다.” 순간, 재판정은 술렁거렸고, 킥킥 거리는 웃음소리와 한숨 소리, 당혹해 하며 나를 책망하듯 째려보는 변호사의 눈빛. 1심 집행유예 석방 작전은 이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담당변호사에게 고마운 마음은 가졌지만 그때 경험으로 변호사라는 직업인을 제대로 된 지성인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변호사를 새로이 볼 수 있게 된 계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이듬해인가. 부산미문화원 점거사건의 항소심이 대구고법에서 열렸다. 감옥에서 나온 나는 방청하러 갔다. 그곳에서 나는 내 재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멋진 변론을 접했다. 변호인이 재판부를 향해 열정적인 변론을 펼쳤다.

"피고인들이 폭력행위를 했다고 몰아세우는데요. 피고인들은 잘못된 체제에 저항하는 겁니다. 혁명을 하려고 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동서고금 모든 역사를 볼 때 혁명에는 어쩔 수 없이 폭력이 동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적인 것은 폭력행위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아닙니다. 이 피고인들이 왜 저항했는가. 왜 혁명을 하고자 하는가를 따져 볼 일입니다"

얼마나 멋진가. 코드가 딱 맞는 변론은 나를 매료시켰다.

변호사 노무현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를 처음 만났고 그를 좋아했다. 그 후 그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여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을 때, 나는 그의 비판자가 되어 있었다. 나를 매료시켰던 그 변론의 핵심인 “왜 저항했는가. 왜 혁명을 하고자 하는가.”를 대통령 노무현은 더 이상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떠났다. 이 충격적인 사실 앞에 우리 모두는 우울하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그가 남긴 말이다. 죽음을 결심하고 이를 실행할 용기에 이르렀을 때 이 말을 진정 이해하게 될까? 지금 우리는 그러하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의 가슴은 조각조각 났다. 그가 택한 방식은 참으로 그다웠다. 그는 이번에도 그가 살아온 방식대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공법을 택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죄인이 되어버렸다.

그의 공과는 언젠가 정리될 것이다. 그의 마지막 선택도 평가받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추모하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애도하는 것뿐이다. 84세 노인인 나의 아버지는 당일 아침 뉴스를 나에게 전해주시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쯧쯧. 수천억 해 먹은 사람은 살아있는데, 죽어야 할 사람은 살고 살아야 할 사람은 죽다니...”







[기고] 이연재 (수성주민광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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