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雪景), 어느 군주와 재상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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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 / "서민들의 비슷한 걱정거리,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입춘도 지났고 며칠 동안 날씨가 따뜻한 가운데 가는비가 내려 봄비인가 했더니 착각이네요. 오늘 다시 눈 구경 했습니다. 날도 몹시 차갑습니다. 그러고 보니 입춘은 지났지만 설을 앞두고 있으니 벌써 봄 운운하기에는 이른가봅니다

창문가에 서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니 문득 중국의 옛이야기 한토막이 떠오르네요. 옛날 춘추시대이야기입니다.

어느 군주가 따뜻한 방에서 털옷을 입고 바깥 눈 구경을 하면서 옆에 있던 재상에게 "설경(雪景)이 참으로 아름답도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춥지도 않구나"라고 했더랍니다.

그러자 재상이 정색을 하며 직언을 했습니다.
"옛날 현명한 군주들은 자기 배가 불러도 누군가 굶주리지 않을까, 자기가 따뜻해도 누군가 헐벗고 추위에 떨지 않을까, 자기 몸이 편해도 누군가 피로에 지쳐 있지 않을까 염려했다는데, 어찌 군주께선 큰 눈과 추위에 지친 백성의 처지를 걱정하지 않으십니까?"

추기급인(推己及人), 이 네 글자는 자기 처지나 마음을 기준으로 삼아 남의 처지나 마음을 헤아리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경계하는 고사성어(故事成語)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요즘 중국에서는 개혁개방의 부작용이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특히 주택문제 때문에 사람들 걱정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아는 대학생이 이런 얘기를 해줬습니다. “집이 부자가 아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은 취직하고 결혼한 후 맞벌이로 십 수년 고생을 해야 작은 아파트 한 채 구할 수 있다. 요즘 집의 노예라는 뜻으로 팡누(房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 얘기를 듣고 이곳저곳 살펴보니 팡누(房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육아비와 교육비 부담에 괴로워하는 부모를 자식의 노예라고 해서 하이누(孩奴), 자동차 구입에 따른 부담을 얘기하는 처어누(車奴), 그리고 카드의 노예라는 카누(卡奴)라는 말도 있더군요. 아마 제가 미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노예도 한 두가지가 아니겠지요.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반 서민들은 비슷한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데 과연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만약 앞의 이야기에 나온 군주와 같은 사람이 지도자로 포진해 있다면 절망적이겠죠. 그렇다면 재상과 같은 이가 지도자로 있다면 미래가 조금은 희망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설 명절 잘 보내자"고 편지쓰기를 시작했는데 엉뚱한 데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기고]
이연재 / 수성주민광장 대표


이연재씨는 2009년 8월 '산동대학 위해한국연구원 객좌(객원)연구원'으로 중국 연수를 떠났습니다.
올 8월쯤 돌아올 예정입니다. 이 글은 설을 맞아 평화뉴스와 지인들에게게 보내 온 편지입니다 - P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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