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보기

공포의 정치와 소통의 정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성 칼럼]..."김제동의 웃음 철학과 현 정부의 유치한 유머"


요즘 여기저기서 좋은 사회를 말한다. 친서민 중도실용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을 키워 외형상 경제지표를 플러스 성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좋은 사회라고 주장하는 측이 있는 반면에 실물경제와 거리가 먼 거품 경제성장률을 좋은 사회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 자체가 이미 우리 사회는 나쁜 사회임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측의 주장이 있다. 그들은 좋은 사회를 왜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가?

MBC 드라마 '선덕여왕'(사진.MBC)
MBC 드라마 '선덕여왕'(사진.MBC)
얼마 전 TV 드라마 선덕여왕의 한 장면은 필자에게 강하게 각인되었다. 그것은 바로 미실과 덕만 공주의 대화 장면이었다. 구 권력과 신 권력을 상징하는 미실과 덕만은 어떻게 하면 신라를 좋은 사회로 만들 것인가 문제로 설전을 벌였다. 먼저 미실은 좋은 사회 건설을 위한 근거로 공포정치를 주장한다. 지배자는 어리석은 피지배자를 항상 공포를 통해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덕만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소통정치를 좋은 사회의 근본이라고 논박한다.

짧은 대화 상황이었지만 이 장면은 고대 계급사회의 정치공학을 현대적 버전으로 번역한 작가적 상상력에 머물 뿐이라고 하기엔 필자에게 그 무게나 의미가 너무나 크고, 깊었다. 공포와 소통. 이 두 개념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공포가 지배하는 곳에 어떻게 소통이 가능할 것이며, 소통이 있는 곳에 어떻게 공포가 존재할 것인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미실의 공포정치를 증명해 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특정 시기마다 덕만의 소통정치를 현실에 실현하고자 노력했던 권력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배자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는 지배 수단은 항상 '공포'였다. 사전적 의미에서 공포는 어떤 구체적 대상에 대하여 두려워하거나, 어떤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감정을 말한다. 생물학적으로 보더라도 공포에 빠진 인간에게는 이성적 판단능력의 상실, 근육 경련, 급박한 심장 박동 및 안구 요동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듯 지배자는 피지배자와의 관계를 공포로 경계지음으로써 자신의 권력 의지를 분명히 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경계짓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현대의 정치는 과거처럼 단순하지 않고 고도의 정치공학이 판치는 보다 복잡한 형국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치공학을 보라. 소통과 공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친서민 행보를 가속화한답시고 내세운 현 정부의 소통정치는 주식과 부동산 거품 키우기로 국민의 물질적 욕망을 충분히 채워주는 데 있다. 한해 51조 원의 재정적자는 상관없다. 오직 현 정부에 중요한 것은 플러스로 돌아선 경제지표와 촛불시위 당시 10%대로 추락했던 지지율의 40%대 급등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게도 떡고물이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악무한적 욕망을 부추기는 일이다. 이것이 현 정부가 내세운 소통의 정치이다.

동시에 현 정부는 공포를 유효적절하게 사용한다. 엊그제 방송인 김제동이 KBS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 KBS 측에서는 김씨의 갑작스런 하차 결정에 어떤 공식적인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남기고 노제의 사회를 맡았던 점, 자신의 트위터에 "쌍용자동차와 이란을 잊지 맙시다"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던 점 등 그의 사회 참여 활동을 문제로 삼은 것 아니냐는 분석만 있다. 이것이 개인에게 국가가 공포를 일깨우는 방법이다. 윤도현도 쫓겨나고, 진중권도 쫓겨나고 그리고 또 누군가 계속해서 쫓겨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방송인 김제동은 보기 드물게 진지한 사람이다. 그의 진지함은 현실을 매우 정직하게 바라본다는 것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피하거나 숨어서 바라보는 시대에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자신의 자립적 사유를 통해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다.

자립적 사고는 자유를 필요로 한다. 이 자유는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사고를 공공연히 타자에게 전하는 자유다. 김씨는 자신의 자립적 사고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면서 그 웃음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는 사람이다.

방송인 김제동(사진.마들연구소)
방송인 김제동(사진.마들연구소)
KBS, MBC 그리고 자신의 트위터라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성의 공간에서. 바로 그게 현 정부의 타율적 사고가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지난 8일 김씨는 마들연구소(이사장 노회찬)의 '명사 초청 특강'의 강사로 나서 서울북부고용지원센터 10층 대강당에서 500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특강을 했다. 이 특강에서도 그의 '현실 그 자체'에 대한 자립적인 사고는 빛났다. 그에게 유머는 현실의 "틀을 깨는 것"이고, "우리 생활의 혁명"이다. 그의 웃음 철학은 "거창한 정치적인 혁명"이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 좀 웃는 것"에서 출발한다. 거기에는 폼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그는 사람들을 '웃기면서 감동을 주는' 그만의 웃음코드로 소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김씨는 이날 '사람이 사람에게'라는 주제로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법'을 이야기했다. 그는 웃음 속에서 혁명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는 두려움의 감정, 즉 공포를 극복한 소통의 시작을 '유머'에서 찾았다. 그에게 "유머란 사람이 사람을 웃기는 것, 바로 대화며, 대화는 말과 말이 오고가는 것"으로서 ‘대화의 철학’이었다.

그에게 대화는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되 틀리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틀리다고 할 때 대화는 사라지고 싸움만 남게 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간의 어떠한 딱딱한 마음도 돌려세울 수 있는 게 바로 유머"이다. 자립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유머로 소통한다. 거기서 변덕스럽지 않은 애정을 매개로 하는 사랑의 공동체도 싹튼다.

김씨에게 "웃음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가장 원초적인 증거며 웃음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웃음에는 기술이 없다. 진심만 있으면 된다. '당신을 좋아한다', '당신을 인정한다', '언제든 당신의 눈높이와 맞추겠다', '사람이 사람에게는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 유머"인 것이다.

필자는 그의 웃음 철학에서, 그의 대화 철학에서 공포라는 심리적 기제를 사용하여 사회적 공간의 분리를 시도하는 현 정부의 유치한 장난은 단지 유머의 대상일 뿐임을 확인했다. 그에 대한 현 정부의 공포정치는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의 정치적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다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과 일그러진 표상을 야기할 뿐이다.

특강 말미에 그가 던진 말 속에는 여전히 소통정치의 본질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어떤 정치적 색깔도 없다. 웃기는 데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 다 웃어야 한다. 새도 왼쪽 오른쪽 날개를 다 퍼덕여야 난다. 다만 상식, 우리 아이들이 빨리 뛰지 말고, 산에 가서 신발 벗고 천천히 걷길 바란다. 천천히 걸으면 보게 된다. 보면 안다. 알면 느낀다. 느끼면 실천한다. 실천하는 것이 무엇인가? 살아 있다는 것"뿐이다.





[이재성 칼럼 13]
이재성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대구사회연구소 연구실장 ssyi@kmu.ac.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