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 지구 문명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는 기후 대재앙이 엄습하고 있다. 탄소 감축을 위한 국제적 목표와 시기, 방법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국제적 협약 비준을 위해 각국 정상들이 모여드는 것도 기후변화가 가져올 파국을 막아보자는 안간힘이다.
영국 ‘스턴 리뷰’(Stern Review)의 2006년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산업혁명 이전의 280ppm 이산화탄소환산량(CO₂e)보다 훨씬 높은 약 430ppm이며, 산업혁명 이후 이미 지구 온도가 0.5℃ 이상 증가했고, 앞으로 10∼20년 동안 추가적으로 최소 0.5℃ 정도 더 상승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이 증가세라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농도는 550ppm CO₂e에 이를 것이고, 이 농도에 이르면 지구 온도가 2∼3℃ 이상 상승하게 될 것이다. 현재 지구 기온이 마지막 빙하시대보다 단지 약 5℃ 따뜻할 뿐이란 사실에 비춰볼 때 지구가 얼마나 급속히 뜨거워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또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 4차 보고서(2007) 역시 지구의 안녕을 위해 지구촌 모든 국가가 당장 공동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보고서는 적어도 앞으로 20년간 10년에 약 0.2℃의 상승률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현재 약 368ppm 수준인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21세기에 490∼1260ppm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 결과 지구 평균온도는 1990년에서 2100년 사이에 약 1.4∼5.8℃ 상승하고, 금세기 동안 평균 해수면 수위는 1990년 대비 8∼88cm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염된 청계천은 4대강 사업의 수질악화 예고편
장면 2 :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신화’로 불리던 청계천이 사실상 환경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모두 낙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하천이나 호수 등에 질소나 인, 유기물질과 같은 영양물질이 크게 유입되면서 부영양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 발생하는 것이 조류인데, 청계천은 전 구간에 조류가 부착화되고 있고 그 종조성과 현존량으로 봤을 때 부영양화한 하천인 것으로 판정된다”고 한다.
그동안 서울시는 청계천의 조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자 “마사토(산모래)를 활용해, 시민들이 없는 밤에 투여하며 조류 성장을 억제하려 했으나 확인 결과 마사토가 청계천 살포 현장에 대부분 남아있었으며, 이것이 부착조류를 덮어버려 녹조를 가리는 효과만 내는 ‘눈가리고 아웅’ 식의 대처” 방식을 취해 왔음을 조 의원은 밝히고 있다.
또한 이런 대처를 위해 서울시가 동원한 인력과 세금은 3년 간 연인원 2,147명과 8,308만원에 이른다는 것이 조 의원의 주장이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 ‘성공신화’의 본보기였던 청계천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주장했던 “생태계 복원”이 아니라 “조류로 인한 수질 악화로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하천”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조 의원은 “오염된 현재의 청계천은 4대강 사업의 미래이자 수질 악화의 예고편”임을 강조하면서 “청계천에서처럼 4대강도 물속에 들어가 빗자루로 쓸어낼 것인지, 효과도 없는 생물화학제를 살포할 것인지, 밤에 몰래 마사토를 뿌려 4대강 바닥을 덮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한번 망가진 강을 다시 회복시키는 데 너무나 많은 고통과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면서 “당장 4대강 사업을 중단하고 사업시행 여부에 대해 객관적인 절차를 거친 뒤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술만능주의의 사유
1980년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전면화하면서 함께 등장한 세계화는 한 때 ‘세계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2009년이 저물어 가는 이 시점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적인 기후변화 문제나 지역적인 4대강 사업 문제 역시 세계적이면서 지역적이고 지역적이면서 세계적이다. 양 영역의 밀접한 상호연관성은 생명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양자 모두 지구 문명 전체의 생명 문제이면서 대한민국의 생명 문제이기도 하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생존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생존은 사유를 넘어 행동의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 이 두 장면은 이제 ‘그만 사유하고 행동하라’는 정언명령처럼 보인다. 물론 두 장면 모두 공포스런 미래를 경고한다는 측면에서 지구온난화나 4대강 사업의 위험성을 과대평가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이른바 미래 기후변화의 진행이나 수질 악화의 불확실성 논거들이 되겠다. 거기에는 기술발전의 가능성에 기대어 현재 투입해야 할 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좀 더 빨리 탄소 배출 문제나 수질 악화의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술만능주의의 사유가 숨어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문제와 관련해서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최근에 출판된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정치 지도자들에게 제안하고 있는 4가지 방안은 귀담아 둘 만 하다. 첫째, “가능한 영역 모두에서 정치적, 경제적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 둘째,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라.” 셋째, “지구온난화 문제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넷째, “기후변화 정책은 그 속성이 대단히 복잡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단기적 관점에서는 물론 장기적으로 미칠 수 있는 영향까지를 고려한 정밀한 리스크 평가를 시행하라.”
생명 파국의 전조
억지스럽지만, 필자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기든스의 대처 방안을 4대강 사업의 문제와 관련지어 이명박 정부에 이렇게 제안해 보면 어떨까 싶다.
첫째, 4대강 사업의 문제와 관련해서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정치적, 경제적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 기든스의 주장처럼, 진보적인 환경정책 하에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업인들을 선별하여 전위대로 육성하는 방법을 마련해보라. 지금처럼 특정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4대강 사업은 생명 파국의 전조일 뿐이다.
둘째,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4대강 사업의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라. 현재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4대강 사업의 문제에 일반 대중이 관심을 갖도록 하는 정책을 어떻게 짜느냐가 될 것이다. 일반 대중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파시즘의 변형일 뿐이다.
셋째, 4대강 사업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는 특히 사회정의의 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4대강 사업의 영향으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특별한 대책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4대강 사업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될 것이다. 혹여 이 사업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넷째, 4대강 사업은 그 속성이 대단히 복잡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물론 장기적으로 미칠 수 있는 영향까지를 고려한 정밀한 리스크 평가를 시행하라. 우리는 이 사업이 생명의 문제가 관련되어 있는 만큼 장기지속적이어야 하며, 미래세대까지 포함한 사회적, 경제적 파급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정밀한 리스크 평가나 일반 대중의 동의 없이 밀어붙이기식 방식의 진행은 결국 파멸을 맞을 뿐이다.
한 해가 저문다. 올 한 해 이명박 정부를 되돌아보면, 화해와 조정보다는 더욱 더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생명의 문제를 두고 갈등을 극대화 했다는 것에서 강한 위험의 전조를 느낀다. 우리가 요청하는 지도자는 강력한 지도자가 아니다. 아픔을 치유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부드럽고 따뜻한 지도자이다. 연일 맹추위의 기세가 드세다. 마치 이 대통령의 모습처럼.
여전히 친기업, 금융규제 철폐, 부자 감세.면세, 노동 억압, 대규모 토목.건축공사에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면서 민주, 인권, 소통, 공정의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따뜻한 지도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자칫 어떠한 법적.시민적 권리도 없이 벌거벗은 생명으로 축소된 인간의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어쩌면 새해에는 사유하기를 그만 접고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재성 칼럼 15]
이재성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대구사회연구소 연구실장 ssyi@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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