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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수의 계절에 살풍경(殺風景)
고희림(시인)..."그늘, 그늘은 정녕 '발달'하는가"
2009년 10월 23일 (금) 10:42:21 평화뉴스 pnnews@pn.or.kr


 살풍경(殺風景)이란 말이 있지요 자칫, ‘풍경을 죽이다’ 또는 ‘풍경을 감소시키다’는 뜻으로, 분위기에 걸맞지 않는 행동이나 풍류를 모르는 사람의 엉뚱한 말과 행동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긴 하지만, 애수의 계절에 썰렁한 시 두 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 감나무가 너무 웃자라 / 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 / 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 / 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 / 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 / 우리 집 지붕에는 폐렴같은 구름 / 우리 집 식탁에는 매끼 묵은 밥 / 우리는 그늘을 앓고 먹는 한 몸의 그늘 / 그늘의 발달 /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 눈물은 웃음을 젖게 하고 / 그늘은 또 펼쳐 보이고 / 나는 엎드린 그늘이 되어/밤을 다 감고 / 나의 슬픈 시간을 기록해요/나의 일기(日記)에는 잠시 꿔온 빛

 위의 시는 문태준시인의 「그늘의 발달」이란 시 전문입니다. 
“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 라는 싯구는, 오랜 그늘 속에 자란 화자가 그늘을 이제 우리의 가족으로 받아 들이자는 체념과 포기가 깃들어 있습니다만, “눈물을 감출수가 없어요” 라고 합니다, 화자의 지붕을 떠다니는 “폐렴같은” 오랜 지병, 식탁 위의 “매끼 묵은 밥”으로 “한 몸의 그늘”을, 한 가족의 그늘로, “발달하는 그늘”로, 슬픈 시간으로 기록하는 화자의 ‘그늘’은, 기어이 풍경을 죽이는 그 ‘그늘’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정류장에서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느 젊은이 앞으로 뚜껑을 연 장미빛 스포츠카 한 대가 지나갔다고 합시다. 옆자리엔 얼짱으로 보이는 애인을 태우고요, 그 젊은이의 바라보는 심정은 어떨까 싶네요. 순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거고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동시대, 동년배로서 어떤 계급의식이 느껴졌다면, 그건 문태준 시인의 시 ‘그늘의 발달’에 해당하는 그런 ‘그늘’일까요?

 아님, 시골집 주변을 산책하는 길이었습니다. 밤 이슥토록 고구마를 캐는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저걸 다 캐고 나면 다시 두사람이 매달려 추수해야 할 감나무, 감 한 이백여개쯤 달려 있는 감나무 한 백그루에 다시 작업을 해야 합니다. 제가 물끄러미 그 노부부의 감밭을 바라다 보면서, 문태준시인의 그 ‘그늘의 발달’을 다시, 다시 떠올렸습니다.

 어떤 선택의 인생이라기보다, 선택의 여지 없이, 자유에의 의지보다, 본능적으로 껴안고 살아가는 생활, 오랜, 오래된 생활을, 그늘의 생활을 떠올렸습니다. 그 그늘이 풍경을 죽이는, 살풍경(殺風景)이 되어서, “발달‘의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니, 일개 시인의 시로 넘기기엔 점입가경의 시절이 섬짓하기만 하군요.  

 다음의 시 한편은 어떨까요

남의 일하는 곳에 와서 아무 목적없이 앉았으면 어떻게 하리 / 남이 일하는 모양이 내가 일하고 있는 것보다 더 밝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이면 어떻게 하리 // 일한다는 의미가 없어져도 좋다는듯이 구수한 벗이 있는듯 / 너는 나와 함께 못난 놈이면서도 못난 놈이 아닌데 / 쓸데없는 도면 위에 글씨만 박고 있으면 어떻게 하리 / 엄숙하지 않는 일을 하는 곳에 사는 친구를 찾아 왔다 / 이 사무실도 네가 만든 것이며/이 많은 의자도 네가 만든 것이며/네가 그리고 있는 종이까지 네가 製紙한 것이며 / 청결한 공기조차 어지러웁지 않은 것이 / 오히려 너의 냄새가 없어서 심심하다 // 남의 일하는 곳에 와서 덧없이 앉았으면 비로소 설워진다 / 어떻게 하리 / 어떻게 하리  

 거대한 뿌리, 김수영의 「사무실」이란 시입니다. ‘말하는 그림’이라고 하는, 시 두편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더 좋은 시를 쓰려는 시인들의 경쟁, 더 많은 문학상을 받으려는 시인들의 경쟁, 더 좋은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언론의 조명을 더 받으려는 출판사들의 경쟁, 더 좋은 시인들을 유치하려는 출판사들의 경쟁, 제조업자들과 제조업자들의 경쟁, 도매업자들과 소매업자들과 대형 백화점과, 그 모든 업자들의 대형 경쟁, 더러운, 적대적인 경쟁의 시대에, 풍경과 생활을 죽이는, 남의 일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아야 할 지경에 처한 여전한 오늘의 하늘 아래 “그늘”과 “사무실”이 살풍경스럽기만 한 애수의 계절입니다.
 
 우리는 다만 선거명부에 등재된 한 표의 “그늘”일 뿐인지 골목 골목을 빨아대는 선거유세가 어디선가는 한창입니다.

   

 

 

 

[주말에세이] 고희림 / 시인.  99년 작가세계로 등단. 03년 시집 <평화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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