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언론은 흥행을 위해 보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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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변회 인권세미나> "언론.수사과정서 2차 피해..소년법원 신설, 피해자 지원 절실"


이른 바 '조두순 사건'으로 어린이와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청소년 범죄와 피해자 인권'을 주제로 한 인권세미나가 대구에서 열렸다. 대구지방변호사회(회장 장익현)가 주최한 이 세미나는 23일 오후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변호사회관에서 지역 변호사와 시민단체 회원을 포함해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3시간동안 진행됐다.

남호진 변호사(대구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의 사회로, 차경환 판사(대구지법 가정지원 가사소년전문법관)와 박성호 변호사의 발제에 이어, 정희철(대구가대 법대 교수), 조윤숙(대구여성의전화 대표), 손병근(대구청소년종합지원센터 청소년쉼터 팀장), 권기한(대구보호관찰소 행정지원팀장)씨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대구지방변호사회 '인권세미나'에서 차경환 판사가 발제하고 있다(2009.11.23 변호사회관)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대구지방변호사회 '인권세미나'에서 차경환 판사가 발제하고 있다(2009.11.23 변호사회관)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차경환 판사는 청소년범죄 재범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소년사법회합'과 '소년법원' 신설을 제안했고, 박성호 변호사는 청소년 성범죄의 '2차 피해'를 지적하며 피해자를 위한 예산 확보와 상설위원회 설치를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정희철 교수와 권기한 팀장은 '소년사법회합'의 실효성을 물었고, 조윤숙 대표는 성범죄 수사.재판과정과 언론의 '2차 피해' 문제를 지적했다. 또, 손병근 팀장은 '소년법원' 신설에 공감하며 가정내 폭력을 막기 위해 친부모의 '양육권 제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언론, 흥행을 위해 보도하나?"

특히, 발제와 토론 과정에서 언론과 수사기관에 의한 '성범죄 2차 피해'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박성호 변호사
박성호 변호사
박성호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이 언론 보도로 신원이나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우려 때문에 신고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구A초등학교의 경우, 분명히 아이들이 성폭력을 당했으나 언론은 '아이들이 야동을 즐긴다'는 식으로 보도했다"며 "언론은 흥행을 위해 보도하나"라고 쓴소리를 했다.

또,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기자나 편집인들은 피해자에게 큰 피해를 가하면서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선정성과 흥행,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언론이나 잡지.대충매체는 성범죄 피해자들을 '처녀 아니면 창녀'의 양극단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윤숙 대표
조윤숙 대표
조윤숙 대표도, '나영이 사건', '조두순 사건'으로 보도된 예를 들며  "일반적이 사건은 가해자 이름을 써 '000사건'이라 하면서, 왜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 이름을 써 보도하느냐"며 언론을 비판했다.

"반복진술.합의종용...수사.재판의 2차 피해"

특히, "언론은 성폭력 피해자나 그 가족 인터뷰 요청을 많이 하고,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성폭력 사건) 학교 그림을 내보낸다"면서 "언론의 '특종' 욕심인지는 몰라도, 이런 보도 때문에 성범죄 피해자는 또 다른 2차 피해를 겪게 된다"고 말했다.

수사와 재판과정의 '2차 피해'도 지적됐다.

조윤숙 대표는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반복해 진술하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의 고통이 매우 크다"면서 "심지어, 성폭력을 당한 아이들에 대해 '아이들이 즐기지는 않나'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성폭력 전담수사관 도입해야"

박성호 변호사는 "성폭행 사건에 대한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형사들이 피해자 보호에 대한 인식없이 수사를 진행하는 경우 심각한 피해자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성범죄 사건에 대해서는 성폭력 전담 수사관제 도입과 전문경찰관(심리상담사 자격소지자)의 피해자 동행.설명, 피해자 상담창구 운용, 수사기관 시설 개선 등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차경환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중립적 입장에 서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반복 진술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 객석에서 토론회를 지켜보던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성폭력 범죄라 해서 다른 범죄와 동떨어져 다루기는 어렵다"며 "반대심문권 보장은 수사의 기본적이 틀"이라고 말했다. 또, "검찰도 '여자가 오죽하면 당했다고 하겠나'는 심정적 입장에서 접근한다"면서 "여성.시민단체들도 성폭력 피해가 얼마나 큰 지 국민들에게 알려달라"고 말했다.

"가해자.피해자 사이에 '중립'은 없다"

박성호 변호사는 이같은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예산 확층과 상설위원회 설치를 주장했다.
그는 "조두순 사건에도 불구하고, 2010년도 여성.복지.법무부의 아동청소년범죄 관련 예산이 지난 해보다 오히려 9억원이나 줄었다"면서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예산을 대폭 확충하는 한편,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보호위원회'를 국가상설기구로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윤숙 대표는 수사와 재판 과정의 성폭력 피해자 인권보호 방안으로, 반복 진술을 피해를 줄이기 위한 '비디오 녹화 의무대상자' 확대, 피해자의 변호인선임권과 대리인제도 도입, 피해자를 위한 의료.상담.법적 협력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중립'은 없다"면서 "최대한 피해자 인권에 맞춰야 한다"고 법조인들에게 당부했다.

'인권세미나'...지역 변호사와 시민단체 회원을 포함해 10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인권세미나'...지역 변호사와 시민단체 회원을 포함해 100여명이 참석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이에 앞서, 차경환 판사는 발제에서 청소년 범죄 재판의 사례를 들며 '회복적 사법'의 하나로 '소년사법회합'과 '소년법원' 신설을 강조했다.

'회복적 사법'은 특정범죄에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범죄의 결과와 그것이 장래에 미치는 의미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해결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차 판사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 목적보다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해악을 미쳤는지 깨닫게 하고 피해자는 범죄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회복적 사법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가해자 부모의 경우, 처음에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며 합의에 나서지만 나중에는 피해회복에 둔감해져 합의에 소극적으로 변하는 반면, 피해자의 부모는 자녀의 상처를 빨리 씻기고 가해자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느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고 재판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소년사법회합...가해자.피해자 함께"

차경환 판사
차경환 판사
차 판사는 이같은 '회복적 사법'의 하나로 호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소년사법회합'을 제안했다. '소년사법회합'은 가해자.피해자 가족과 그들의 후원자들이 모여 범죄에 따른 해악을 깨닫게 해 범죄소년의 재발을 방지하는 목적의 제도로, 주로 폭행이나 강도, 주거침입절도, 자동차 절도와 같은 약식범죄를 대상으로 한다. 성범죄나 피해자 사망 범죄 등은 제외된다.

차 판사는 "우리나라에는 이런 회합에 관한 규정이나 제도가 없지만, 범죄소년에게는 반성의 기해를 주고 피해자의 진술권도 충분히 보장하고 조속한 회복을 도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제도 도입과 관련 규정 마련을 제안했다.


'소년사법회합'의 실효성을 대한 정희철 교수와 권기한 팀장의 질문에 대해서는 "실효성에 대한 연구통계 는 없으나, 소년사법회합 방식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합하는 방식을 운영하면 소년범의 재범을 줄이는데 영향이 있지 않겠느나"면서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5분 재판 받으러 울릉도에서 대구까지...소년법원 절실"

차 판사는 또, '소년법원'의 신설을 강조했다. 차 판사는 "소년범이 5분 재판받기 위해 울릉도에서 대구까지 와야할만큼 관할 지역이 너무 넓은데다, 소년범죄를 다룰 조사관조차 한 명도 없다"며 "소년법원은 해방이후 계속 나온 얘기며, 판사.검사.변호사.당사자 모두 원하는만큼 조속히 소년법원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조두순 사건' 양형 문제에 대해서는 "양형이 약한 건 판사의 인식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수사기관이 범죄를 부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검사가 최대한 피해자 입장에서 대변하면 양형이 올라간다"고 차 판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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