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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안에 갇힌 '성폭력 사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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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옥 / "쏟아지는 법과 대책들...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획일화"


가수 유영석의 노래 '네모의 꿈'을 아십니까?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각 신문을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중략)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 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들을 이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사는 지구는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중략)


잘 몰랐는데, 이 노래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하네요.  ‘이 가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정답은 ‘획일화된 사회에 소멸된 인간성을 회복하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획일화된 사회’일텐데요.
‘획일화된 사회’의 주요 축인 ‘획일화된 여론’을 만드는데 언론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월드컵땐 방송프로그램이 모두 축구로 채워지고, 올림픽땐 우리나라 메달권 경기만 봐야 하고, ‘영포회’논란을 여권내 계파싸움으로만 매도하고, 4대강 뉴스는 찬반 양론으로만 단순화 시키고, 영남권 신공항을 지역사회 싸움으로 폄훼시키는 등.

이런 분위기는 최근 급증하는 ‘어린이 성폭행 사건’에 대한 원인 규명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언론보도에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성폭력 원인.처벌.대책,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획일화'


다소 거칠지만 이 주제에 대한 정치권의 움직임이나 언론보도방향을 단순하게 요약하면, △어린이 성폭행 사건의 주요원인은 피의자(범죄자) 개인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검찰수사과정과 정치권이 고민하는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이 피의자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이는 것(화학적 거세, 전자 팔찌, 인터넷을 통한 신상공개), △ 사후 약방문, 호들갑만 떠는 대책은 안된다 등 일텐데요. 핵심은 ‘성폭력 원인은 피의자 개인의 문제, 해결은 그에 대한 처벌수위를 강화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6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일명 ‘화학적 거세법’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등의 기사와 함께, <매일신문>은 지난 5일 <성범죄 더 이상 땜질처방 안돼…근본적인 예방책 마련을>에서 “미국등 주요 선진국은 성범죄자 사후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강력한 안전장치를 도입하는 동시에 예방책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영남일보 2010년 7월 7일자 3면
영남일보 2010년 7월 7일자 3면

조선일보 2010년 8월 2일자 A6면
조선일보 2010년 8월 2일자 A6면

또한 <영남일보>는 기획시리즈 <아동성폭력 이대로는 안된다>(상하)에서 △ 솜방망이 처벌이 화를 키우다 △ 지역사회 차원의 대책 마련을, 8월 2일 <조선일보> 또한 <내 딸이 위험하다>에서 △ 수사력이 턱없이 부족 △ 어린이 성추행에 관대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론을 만드는 ‘언론’ 밖에서는 이를 따갑게 비판하며 성범죄에 대한 사고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여성운동단체 등에서 제시하고 있는 △ 아동성폭력 재범방지를 위한 인기몰이식 정책의 오류 △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다각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꽤나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일단, 2007년  여성단체에서 벌인 캠페인을 눈여겨봐야 할텐데요.

매일신문 2007년 11월 2일자 6면
매일신문 2007년 11월 2일자 6면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2007년 9월 검찰, 경찰, 법원 등의 판결문에 ‘순간적인 욕정을 못 이겨’라는 문구를 삭제해달라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해당 문구가 삭제해야되는 이유에 대해 이들은 “성폭력 발생 원인이 개인이 통제 불가능한 성욕 때문이며, 남성이라면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실수라는 잘못된 통념이 반영된 용어”라며 “가해자의 고의나 의도성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죠.

대검찰청은 한달 후 이 지적을 수용하고 중립적인 용어로 바꾸겠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쏟아지는 법과 대책들...아동 성폭행범, 그들은?


지난 15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아동성폭력 재범 방지정책과 인권> 토론회가 열렸는데요, 전 이 토론회에서 <아동성폭력재범방지 정책들에 대한 검토>를 주제로 발표한 표창원(경찰대 행정학과 교수), <아동성폭력 재범 방지정책의 인권법적 쟁점>을 요약한 이호중(서강대 법학과 교수)의 내용보다, 토론자로 나선 한국여성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이임혜경 소장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였습니다.

이임혜경 소장의 토론문 제목은 “언론 밖 세상에 주목하자”는 것이었고, 핵심적 내용은  △ 성폭력 가해자들의 범행동기 등을 제시하며, △ 성폭력 범죄 유형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조사, 연구 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가해자들의 범행 동기는 ‘순간적인 성욕’이라기 보다는 “쉽게 제압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존재가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하는 것에 대한 쾌감”때문이며,  “사회로부터 소외와 상처, 증오 등의 감정을 자기 방어 능력이 부족한 아동에게 하는 분출하는 과정”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성범죄의 원인으로 제기한 ‘성욕’보다 훨씬 해석이 넓고 풍부합니다. 이임혜경 소장의 주장에 따라 ‘범행 동기’를 해석하면, 성범죄의 원인이 가해자 개인의 문제라고 보긴 힘들 것 같고요, 현재 언론과 정치권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제시하는 ‘화학적 거세’가 얼마만큼 예방효과를 낼 수 있을 지 의문이 생기는데요.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뿐만 아니라 언론이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성범죄자에 대한 연구자료’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200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성폭력 범죄의 유형과 재범 억제방안'에 의하면 아동 대상 성범죄의 공통이력에 어린 시절 대부분 버림받거나 학대받은 경험들이 있다”며, “ 버려졌다는 느낌의 가정환경, 일상화된 가정폭력, 어른에 의한 신체적, 언어적 성적 학대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성범죄자에 대한 연구, 조사’는 금태섭 변호사도 같은 맥락에서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는 최근 발행된 한겨레21(821호. 8.2) <책속에 이런 법이?>에서 “김길태가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 받은 것이, 김수철이 어렸을 때 성추행을 당한 것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졌는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연구된 적이 있는가”라며 “아동성폭행범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젊은 이들의 도덕 재무장이나 포르노 금지 혹은 성매매 허용을 외치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무기력함을 느낀다”고 주장합니다.

이 칼럼에서 금 변호사는 A.M. 홈스의 <앨리스의 최후> (The End of Alice)를 소개합니다.  주인공 ‘채피’는 씽씽교도소에 갇혀 있는 아동성폭행범이고,  55년형을 선고받고 23년째 수감 중입니다.

"정신이 불안정한 어머니는 채피가 어렸을 때 그를 데리고 목욕하다 추행하고, 우리 주인공은 친어머니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중략) 수감생활도 굴곡이 많다. 교도소에 들어간 초기에 채피는 클레이튼이라는 동료 수감자에게 성폭행 당한다. 그 후로는 마치 애인처럼 그의 요구에 응하면서 살아간다. (중략)"

채피가 저지른 범죄의 구체적 내용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제시되어 있구요, 금 변호사는 “주인공 채피는 애초에 보통사람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아동성폭행범”이라며 “아동 성폭행범의 범죄를 막기 위해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범죄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이 만들어 놓은 ‘획일적 가치관’에 대해 언론 밖에서는 포괄적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색다른 논의가 진행되고 있더군요. 즉 언론과 정치권은 ‘네모난 세상’에 끼워맞추고 있었지만, 언론 밖 세상 사람들은 그 틀을 깨고 ‘둥근 지구’를 보고 있었던 것이죠.

유영석이 말하는 ‘네모의 꿈’ ?


교과서에서 제시한 ‘네모의 꿈’ 해석은 ‘윤리교과서’적 의미지만, 정작 이 노래를 작곡한 가수 유영석씨는 ‘교과서 해석’과 다르다고 이야기합니다.

<TV리포트> 이혜미 기자가 지난 2월 <유재석 김원회의 놀러와>에 출연, 유영석씨의 ‘네모의 꿈’ 얽힌 뒷 이야기 방송내용을 자세히 정리하고 있는데요.

“유영석이 ‘네모의 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다름 아닌 외계인”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는 “우리가 우주를 잘 모르지 않나”라며 “우주에 우리보다 훨씬 문명이 발달한 외계인이 있는데 걔들 생긴 게 네모난 거다”라고 설명하고, “문제의 외계인들이 사는 별은 환경이 좋지 않아 지구를 공략하려는 계획을 야심차게 세웠다. 그 애들이 지구에 오면 네모난 얼굴을 보고 놀랄까봐 6만 전부터 텔레파시를 보낸 거다”라며 “네모에 익숙해지라는 거다”라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크하하하!, 교과서에서 제시한 답이 언제까지 유효할까요?
‘네모 낳게 생긴 외계인’ 생각하며 ‘네모의 꿈’을 흥얼거려야겠습니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94]
허미옥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pressang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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