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당시 '민민청' 사건 재심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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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원.강왕수 선생..."169일 불법구금, 3년6개월 소급입법..무죄"


강왕수(74) 선생
강왕수(74) 선생

"서도원.도예종.송상진...모두 희생되고 나만 살았다.
돌아가신 분들 신원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강왕수(74) 선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른 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들의 이름을 천천히 부르며 "나만 살았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 신원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라며 '민민청 사건' 재심 청구 이유를 말했다.

"기억하기도 싫고 다시 상기하는 게 유족들한테도 미안하고..."
그래서 재심 청구를 망설였다고도 했다. 

1961년 '민민청'

'기억하기도 싫은' 1961년 5.16쿠데타 당시 '민민청(민주민족청년동맹경북도연맹)' 사건에 대한 재심이 청구됐다. 청구인은 서도원 선생의 유족과 강왕수 선생으로, 대구의 <법무법인 삼일>이 2월 11일 각각 대법원과 대구지방법원에 이 사건의 재심을 청구했다. 당시 서도원 선생은 혁명재판소 상소심판부에서 징역7년을, 강왕수 선생은 혁명재판소(1심)에서 징역5년을 각각 선고 받았다. '상소심판부'는 2심이나 당시에는 최종심이어서 서도원 선생의 재심은 대법원에 청구됐다.

1961년 1월에 발족한 '민민청'은 전국 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경북도연맹과 경남도연맹만 각각 수십명씩 활동하다 그해 5.16쿠테타 세력에 의해 와해됐다. 서도원 선생이 위원장을, 강왕수 선생이 경북도연맹 투쟁국장을 맡았다. 당시 서도원 선생은 청구대(현 영남대) 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다 4.19이후 그만두고 민민청에 전념했으며, 강 선생은 군을 제대한 이후였다고 한다.

강 선생은 "평화통일과 민주화가 민민청의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 선생은 '민민청' 사건 당시 모진 고문으로 "평생 몸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합병증까지 겹쳐 거동도 불편하다. 둘째 아들과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 서도원 선생은 매일신문 기자와 청구대 학생주임을 거쳐 '민민청' 사건으로 2년7개월 복역하고 출소했으나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돼 이듬 해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75년 4월 9일.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서도원 선생과 '인혁당 재건위' 희생자들
1975년 4월 9일.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서도원 선생과 '인혁당 재건위' 희생자들


이들은 1961년 5월 29일, 당시 5.16쿠데타 세력의 '혁명검찰부'에 붙잡혀 형사소송법상 수사단계의 최대 구속기간인 30을 139일이나 초과한 169일동안 '불법구금'됐으며 수사 과정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들은 '평화통일'과 '반공법.데모규제법 반대' 주장으로 유죄를 받았다.

혁명재판소 "특수반국가행위...유죄"

당시 서도원 선생에게 유죄로 인정된 부분은 ▶영남일보(61.1.11)에 '국내외 정세는 조국통일이 목전에 다달았음을 시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민주적인 보수세력은 일부 외세에 아부 의존하여 조국통일을 지연시켜 보려는 기망상을 노정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한 점 ▶ 같은 해 대구역 앞 광장에서 통일촉진웅변대회를 열어 남북평화교류 등의 평화통일론을 역설케 한 점, ▶ 반공임시특별법(안)과 데모규제법(안)의 입법을 반대하는 시위대회에서 '장 정권은 자신의 부패와 무능을 은폐하기 위하여 위 두 법을 제정하려 한다. 한국에도 미국의 맥카시 선풍이 예상된다'는 요지의 개회사를 한 점이다.

또, 강왕수 선생은 '수성천변에서 열린 위 두 법(안) 반대 궐기대회에서 '장정권은 선거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자신의 부패를 은폐하기 위하여 두 법을 제정하려 하므로 결사코 이를 반대한다'는 요지의 궐기사를 한 사실이 유죄로 인정됐다.

당시 혁명재판소는 "이들의 행위가 대한민국 국시에 위배하여 반국가단체인 북괴의 목적과 노선을 선전 선동하고 찬양동조했다"며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 제6조(특수반국가행위)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다.

재심 청구 "불법구금, 3년6개월 소급입법...무죄"

그러나, 청구인들은 불법체포.구금과 소급효적용 등의 이유를 들어 '무죄'를 주장했다.

'법무법인 삼일'은 재심청구서에서 "영장 없이 체포돼 형사소송법상 수사단계의 최대 구속기간인 30일을 무려 139일이나 초과한 169일동안 불법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며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감금죄를 범한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밝혔다. 

또, 이들의 행위가 '특수반국가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에게 적용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1961.6.22제정)'이 공포한 날로부터 3년6개월전의 행위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해 헌법에 규정된 형벌규정의 소급효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5.16 쿠데타 관련 재심 거의 없어"

송해익 변호사는 "불법체포.구금 상태의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소급효 적용 역시 헌법에 위배된다"며 "당연히 재심이 이뤄지고 무죄 판결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에서 '재심' 여부가 결정되기까지는 6개월에서 1년정도 걸릴 것으로 송 변호사는 내다봤다.

송 변호사는 또, "조작으로 드러난 '인혁당 재건위사건'처럼 유신이나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의 재심과 무죄 판결을 많았지만, 5.16쿠데타 당시의 잘못된 수사와 판결에 대한 재심은 거의 없다"면서 "그야말로 소급입법을 만들고 영장없이 체포.구금한 5.16쿠테타 세력과 그 피해자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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