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입니다. 2010년 새해를 맞는다고 법석거렸는데, 오늘 또한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갖습니다. 양력과 음력을 동시에 기준으로 삼아 세상을 헤아리는 방식이 복잡할 법도 한데 우리는 용케도 이러한 방식으로 사는데 오래 전부터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피아노의 백건과 흑건이 어울려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는 양력과 음력이 맞물려 돌아가는 세월 속에서 나름대로의 결절을 만들어내어 의미를 부여하고 그 틈새를 활용해서 달콤한 휴식을 취합니다. 한때는 이중과세라고 해서 음력설을 쇠지 못하도록 한 때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피아노의 흑건을 없애자고 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N형. 요즈음은 시간의 흐름에 그저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 싶어 될 수 있는 한 해와 달을 헤아리지 않고 살아보려고 하지만, 설날에 느끼는 기분은 다르네요. 예전에는 덕담을 듣기만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덕담을 건네는 자리에 가 앉아 있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월이 흐른 탓이겠지요. 쏜살같은 세월 때문인지, 혹은 하수상한 시절 탓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올 설에는 왠지 이상하게도 마음이 휑하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N형.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설날 아침에 쑥스럽게도 내가 스스로에게 덕담을 건네고 혼자서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와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성어를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물처럼...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노자에 나오는 말이라는 것을 N형도 잘 아시지요. 최고의 경지는 물과 같은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의 풀이를 합니다. 물은 도자기에 담으면 도자기 형태로, 술잔에 따르면 술잔의 모습을 따릅니다. 물은 바윗돌을 만나면 때론 옆으로 슬쩍 피해서 흘러가지만, 때론 굉음을 내며 뛰어넘어 가기도 합니다. 물은 물끼리 어울려 시내를 이루고, 강이 되고, 마침내 대동의 큰 바다에 이릅니다. 그런데, 물은 겉으로 보기에 쉼 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지만, 순간순간 남이 눈치 채지 않도록 몸을 가볍게 하여 하늘에 오르기도 합니다. 언젠가 새벽 강가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몰래 황홀한 방식으로 신비한 비상을 하려 했지만 나에게는 불쑥 들켰던 셈입니다. 하늘로 비상한 물은 요즈음 흰 눈이 되어 사뿐사뿐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땅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여름철이 되면 시원한 소나기가 되어 퍼부어 내리면서 세상에 닿습니다.
물은 유연하고 자유롭습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집요하게 스며들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초월과 이탈을 도모합니다. N형. 젊은 시절 한 때 불같이 살자고 어깨를 걸었던 우리가 이제 물을 들먹이고 있으니 한편에서는 우습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서글프기도 하네요. 그러나 상선약수라는 말이 설날 아침에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물처럼 살라고 세상이 가르치는구나라고 받아들이며 그 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난득호도(難得糊塗)는 청나라 시대의 시인인 정섭이 남긴 글자로 더욱 유명한 말입니다. 바보되는 것이 힘들다는 정도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N형. 이 편지를 읽고 난 후 인터넷에서 정섭이 쓴 난득호도라는 글자를 한번 찾아보십시오. 삐뚤삐뚤 바보가 쓴 글자처럼 보이지만 희한하게도 멋들어진 품격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 글자 밑에는 총명난(聰明難) 호도난(糊塗難) 유총명이전입호도갱난(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이라는 글이 씌어져 있습니다. 이는 ‘총명하기는 어렵구나. 어리석기도 어렵구나.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기는 더 어렵구나.’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바보가 그리운 시대
우리 주위에는 총명한 사람이 넘치고 또 넘칩니다. 총명함은 찰나에 번득이는 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잘 치르는 것은 총명함에서 비롯됩니다. 주식시장의 흐름을 잘 읽고 돈을 버는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가 총명한 사람들로만 채워질 때 불행한 사회가 되리라는 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보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바보는 우직함을 특성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매일 쓰러지고 패배하면서도 마지막에 한번 이기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 바보입니다. 바보는 스스로를 일부러 드러내지 않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오랫동안 묵묵히 감당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N형. 우리가 대학 다닐 때 함께 부르던 김민기의 ‘친구’라는 노래가 생각나는지요. 가사에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어디 있겠소’라는 대목이 있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한때 N형이나 저나 서로에게 그런 친구가 되기를 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바보 친구를 원했고, 바보가 되어 친구로 다가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세상의 게임 방식에 앞장서서 끼어들었고, 지금은 혼자 뒤처져서 비틀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N형. 설날 아침에 난득호도라는 말을 떠올리며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저를,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 앞에서 무턱대고 바보라고 놀리지는 않겠지요.
N형. 벌써 매화가 터진 곳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한 겨울은 지난 듯합니다. 봄바람이 온갖 꽃들에게 수작을 걸 때쯤 기별 한번 주십시오. 술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예전처럼 구성지게 노래나 한 곡조 불러주십시오.
[김영철의 경제읽기 23]
김영철 /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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