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보도가 모든 뉴스를 빨아들이고 있다.
지난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서거 백주기 관련 기사로 도배하다 시피 한 공중파 3사는 YTN이 10시 24분 긴급뉴스로 ‘초계함’(천안함) 침몰 사실을 전한 이후 10시 40분대에는 모두 특보체제로 들어갔다. 이후 천안함 침몰 10일이 지나도록 여타 뉴스는 방송 3사의 메인뉴스에 주요 기사로 파고 들 틈이 없었다. 선거, 세종시 수정안, 4대강, 그리고 대구경북 지역 뉴스도 마찬가지.
그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 보도체제에 문제는 없는가? 현재 보도체제가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얼마나 생산적인 보도였는가? 대구․경북 뉴스보도가 새길 교훈은 무엇인가? 짚지 않을 수 없다.
SBS '북한 연계설'로 1보…조중동 이어받아
지난달 26일 YTN의 첫 보도는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서 훈련 중이던 해군 천5백 톤 급 초계함이 침몰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고는 9시 반쯤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해군당국은 타고 있는 장병들에 대한 구조작업에 나서고 있다는, 긴급하지만 사실 중심의 1보였다.
그러나 이날 밤 10시 40분대 SBS 특보는 내용이 사뭇 달랐다. 먼저 ‘북한 공격’으로 자막을 달고 2함대 소속 초계함 1척이 북한공격으로 침몰, 승조원 백4명 중 생존자는 59명이라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첫 뉴스에서 SBS는 ‘북한연계설’을 강조, 시청자들을 전면적인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으로 몰고 갔다.
이 보도는 즉시 보수신문 조중동이 ‘천안함’을 북한 공격설로 몰고 가는 길을 열어 놓은 대문 구실을 했다(조선일보-3월 29일 <‘기뢰 폭발 가능성’ 집중 조사> 기사에서 ‘이 가운데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북한에 의한 공격이다.’ 동아일보-3월 29일 <“북 연루 가능성 있다”> 기사에서 1. 대청해전 패배 보복 2. 유화공세 안 먹히자 군사 모험주의로 전환 3. 분쟁지역 부각시켜 미에 평화협정 압박 4. 화폐개혁 반발 무마 대남 무력 분쟁 의도. 중앙일보-4월 1일 <“암초는 무슨…벼르던 북에 한 방 맞은 게지”>.
심지어 조선일보는 3월 30일 사설을 통해 '천안함이 북한 기뢰 또는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한 것이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국가적 차원의 대응을 결정해야 할 고비를 맞게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시(戰時)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도 각오해야 한다.'라고 가정법을 교묘히 쓰면서 주장해 ‘전시(戰時)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 조성이 이 신문의 목적임을 시사했다.)
가상상황을 그래픽으로 추측성 보도
그러면 그 후 공중파 3사의 보도는 어떤 특징을 보였나?
크게 두 가지 경향이 뚜렷했다. 하나는 군 당국 발표를 받아쓰기에 분주했다. 다른 하나는 군 당국 발표를 바탕으로 하는 추측을 사실인양 확대하는 추측성 보도가 난무했다. 이 추측성 보도가 믿을만하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세 채널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상상황을 부각했다. 시청자들에게는 컴퓨터 그래픽이 화려하면 할수록, 그래픽의 질이 우수하면 할수록 거기에 담긴 메시지는 강렬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이 정도면 이미 보도는 보도가 아니라 중독성이 강한 영상마약 구실을 하게 된다. 사실이 밝혀진다 해도 그 사실을 믿지 않게 만드는 최면 작용을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보. 군 당국이 핵심정보를 틀어쥐고 공개하지 않음에 따라 오보는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대표적인 오보가 KBS의 <‘같은 70분’ 다른 설명>(3월 28일 뉴스9). 이 뉴스는 ‘사고 직후 선미가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라, 상당 시간 붙어 있었다고 한다면 마지막 침몰까지 70분 동안의 구조 과정도 다시 논란에 싸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고 해 실종자를 신속 하게 구조하는 데 되레 발목을 잡는 구실을 했다. 특히 통제한 정보를 자극적인 그래픽으로 가공,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들의 판단을 마비시키면서 시선을 천안함 보도에 묶는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보도를 여타 뉴스보도의 블랙홀로 만드는 데는 보도통제와 통제된 정보를 자극적으로 가공, 전달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종자 가족 위장 취재와 보도 윤리
공중파 3사의 이 같은 보도는 결국 시청자=국민을 오락가락 발표한 군 당국 만큼이나 혼란에 빠뜨리게 했고 실종자 가족을 허탈하게 했다. 왜 그런가?
하나는 확인이 뒤따르지 않는 속보경쟁에 목을 맸기 때문이다. 군 당국 발표를 확인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군 당국이 발표하면 영상은 백령도 앞바다 화면과 컴퓨터 그래픽을 교대로 띄웠다. 그래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가능성’이란 단어와 따옴표 보도(“…”)는 빠뜨리지 않았다.
둘째, 그 결과 황색 선정주의는 넘쳐난 반면 보도의 진정한 목적․목표는 상실했다.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실종자 신속 구조와 실종자 가족에 대한 배려, 국민 불안 해소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시청률 올리기의 호재로 삼으려 했다.
4월 2일 KBS의 <미디어비평>은 <‘천안함’ 보도 점검해보니…> 제목으로 천안함 보도의 실상을 점검하는 보도를 했다. 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은 ‘KBS와 조선일보 기자가 취재경쟁 속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실종자 가족 속에 섞여 천안함 수색 현장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기자가 진실을 취재, 보도하기 위해서라면 수상의 침대 밑도 잠입할 수 있겠지만 수심 40여m 아래 함미 격실에 있을 형제, 남편, 자식을 생각하면 온 몸이 녹아들 실종자 가족을 위장해(그들의 애타는 심정을 이용해) 수색현장과 실종자 대화 등을 취재한다는 것은 목적과 목표를 위해서라면 취재 윤리는 아랑곳할 게 못 된다는 평소 보도 태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천안함’을 시청률 올리기, 신문 판매의 호재로 삼는 것 이상으로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군 당국, 정보 틀어쥐고 오락가락 발표…국민 혼란
YTN의 제1보에서부터 보도의 중심축은 국방부 대변인을 비롯한 군 당국이 차지했고 실종자 가족 동정이 다른 한 축을 형성했다. 군 당국은 정보라는 열쇠를 쥐고 있었고 실종자 가족의 동정은 함미 격실에 갇힌 것으로 보이는 46명 승조원의 신속구조-생환이 절체절명의 목표를 상징했다.
정보라는 면에서 보면 천안함 사태 보도는 여러 언론이 한 결 같이 지적하듯이 오락가락 발표로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 군 당국의 발표 태도나 내용은 한 마디로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인상이 짙었다. 이에 따라 방송 3사의 보도는 군 당국 발표에 따라 춤 출 수밖에 없었다. 군 당국의 발표 외에 딱히 신뢰할 만한 정보원을 확보하지 못한 언론은 ‘오락가락 발표로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점을 지적, 군 당국이 정보를 공개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나온 자료가 열영상관측장비(TOD)에 의한 사진과 해경의 구조 관련 비디오. 그러나 열영상 사진은 핵심 장면은 삭제한 채 함수 부분 영상을 1분20초가량 편집한 것이 전부여서 의혹은 되레 증폭됐다.
이 같이 군 당국이 결정적인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안보를 우선 고려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바다의 안보를 최전방에서 지켜내야 할 초개함 천안함 침몰이란 근래 드문 사건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뒤집어 말하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고 납득시키는 한편 승조원 구조에 최대한 박차를 가하는 것이야 말로 근본적인 안보 의 지름길임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4월 3일 MBC가 군 상황일지, 해경의 상황보고를 확보해 단독 보도한 것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지금까지의 보도 체제를 결정적으로 역전시킨 ‘사건’이었다.
MBC, 군 상황일지 폭로…보도 중심 군→언론 역전
하나는 군이 발표하는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물론 핵심적인 정보를 이제까지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입증했다. 다시 말해 ‘천안함’과 관련해 정보 틀어쥐기의 의도를 어느 정도 국민-시청자들이 자료를 근거로 간파하게 했다.
둘째, 군 당국의 상황일지, 해경의 상황보고를 단독 입수해 보도했고 그 내용이 편집하거나 요약한 것이 아니라 <최초 상황관련 일지> 제목의 원본임을 4일 <이것이 상황일지 원본> 기사를 통해 재확인시킴으로써 지금까지 정보를 틀어쥐고 파도타기 식 보도(널뛰기보도)를 유도했던 군 당국의 발표체제를 극적으로 역전시키고 바꾸도록 했다는 것이다.
셋째, 이 보도는 천안함 관련 상황이 3월 26일 밤 9시15분에 이미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지금까지 군 당국의 발표를 받아쓰기 하거나 발표의 각종 의문점을 소극적으로 점검하는 보도, 또는 추측 보도에서 정보 확보 면에서 언론이 자신감을 가지고 의문점은 물론 사건 발생과 관련한 모든 것을 원점에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하는 심리적, 실제적 전환점이 됐다. 즉 취재 경쟁의 질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KBS․조선일보, MBC <상황일지> 뒤집기 주력
넷째, MBC의 상황일지 보도는 미디어오늘의 보도(4월 4일 <조선일보 ‘~라면 기사’, 결론은 북한 엮기>)대로 ‘-라면’이란 가정법을 내세우면서도 북한 연루를 집요하게 주장, 몰아가기보도를 일삼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동아, 중앙 등 보수신문, KBS로 하여금 이제 공격 방향을 MBC 상황일지 보도 뒤집기로 향하게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KBS의 4월 5일 보도 <“천안함 생존자 21시20분까지 통화”>. 이 보도는 군 당국의 주장을 인용해 ‘사고가 일어난 시각은 일각(MBC)의 주장대로 밤 9시 15분이 될 수 없다는 얘기’를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4월 5일자 신문 6면을 아예 ‘천안함 침몰/어뢰 공격 가능성 증폭’으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사실을 적극 탐사해야 할 텐데 그 노력을 경쟁사 보도 비판하기에 쏟는다는 것은 보도 윤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MBC의 상황일지 보도가 KBS와 조중동 보수 신문이 해온 기왕의 보도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이런 식의 몰아가기 보도는 ‘선동’이라고 할 수 있다)에 불과해 자신들의 보도 정체성을 상당부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들 매체가 할 일은 사실을 처음부터 확인하는, 즉 보도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로 보면 MBC의 군 상황일지 보도는 천안함 사태 보도 방향, 정보 흐름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천안함’ 보도의 문제점이 정리됐다고 볼 수 없다.
첫째, 군 당국은 정보 공개를 거듭 말하고 있지만 정작 천안함이 인양되면 함선의 절개 단면을 공개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군 당국의 ‘정보공개’가 구두선에 불과함을 보여준 말이다.
둘째, 4월 2일 국회에서 보고하는 김태영 국방부장관에게 청와대가 보낸 ‘메모’가 언론에 포착돼 보도된 데서 드러나듯 겉으로는 북한 연루와 관련해 청와대와 국방부의 발표, 설명이 엇박자인 것처럼 보여도 그 실상이 어떤지는 자료를 근거로 보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컷뉴스의 4월 5일자 청와대 VIP 메모 공개(오마이뉴스, SBS 뉴스가 인용 보도)는 그런 면에서 ‘천안함’ 대국민 발표/보고의 배경에 고도의 정치성이 개재해 있다는 것을 읽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군, 실종자 가족에 총구 겨냥
세째, 직접 보도와 관련은 없지만 군 당국이 실종자가족에게 보여준 위협적, 억압적 태도(제2함대 부대 안으로 들어가려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일단의 헌병이 앉아쏴 자세로 소총을 겨냥한 것. KBS․SBS가 보도)는 우리 군이 과연 국민의 군대인지 의아심을 가지게 했다. 경찰 역시 실종자 가족 동향을 탐지하려고 경찰관을 실종자 가족을 위장해 그 모임에 투입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발각돼 쫓겨났다. 두 경우 모두 국민의 군대․경찰이란 개념은 찾을 수 없는 현장이었다. ‘천안함’ 보도는 그 시각을 이제는 사건 중심에서 사건이 발생한 그럴만한 구조적인 환경을 조사, 탐사하는 데로 방향을 확대해야 하며 군.경찰과 같은 막강한 기관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 아니라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순기능을 하도록 하는 방향타 구실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천안함' 보도의 블랙홀 기능에 관련한 대목이다.
대부분 보도는 이미 사고 발생 1보에서부터 모든 주요 관심사를 빨아들여 무력화하는 ‘블랙홀’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것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너무나 당연시해온 해군의 초계함이 의문 속에 침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46명의 실종자 구조 문제가 화급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이 실종자 생존 가능성의 69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군의 구조활동이 지지부진한 데다 한 준위와 금양 98호 선원들의 희생이 잇따르자 구조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하는 대승적 결정을 내림으로써 ‘천안함’ 사태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현직 프리미엄'과 '관언유착'의 소지
새로운 국면에서 고려해야 할 점은 다른 보도도 그렇지만 지방 기사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이미 대구MBC가 3월 19일 <출마선언> 보도에서 “예비후보 등록은 하지 않고 공식선거운동전까지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현직 프리미엄을 최대한 유지해나갈 계획입니다.” 라고 다뤘듯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체장 일부는 현직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고 그 주요 경로는 언론을 통한 것임은 분명하다.
단체장들이 쏟아내는 관광 등 갖가지 개발프로젝트 발표를 기자보도로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은 ‘현직의 프리미엄’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천안함 보도에서 보이는 확인보도 실종 자세가 권력을 창출하는 선거를 앞두고 ‘합법’의 그늘 아래 우리 지역에서 관행화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천안함’ 보도의 교훈을 새기지 못하는 태도라 할 것이다.
대구경북 시청자들은 ‘천안함’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안함’ 보도에서 놓치고 있는 확인 외면, 주장 확대 전달, 몰아가기 보도가 대구․경북 보도에서 재현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천안함’ 보도가 의미를 가지려면 실종자 문제와 함께 정보 공개를 통한 국민 불안 해소가 보도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구경북 관련 보도에서도 선거를 앞두고 ‘관언유착’ 소지를 없애는 노력을 언론 종사자들은 보여줘야 할 것이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77]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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