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우리 할머니, 생각하면 눈시울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열아홉 시인 이다은..."아픔을 알았다. 그렇게 나를 찾았다"

열아홉살 시인 이다은의 시집을 받아들었을 때, 그랬다.
나이만큼 산뜻하고 감각적인 시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소박함과 따뜻함.
그녀는 김천에서 태어나 쭉 김천에서 살았고 김천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배창환 시인과 만나 시인이 되었다. 또래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인의 따뜻한 정서는 그러한 배경에서 우러나온 것이리라.

이다은
이다은
시 쓰는 사람
* 이다은

수학 시간에 시집을
보다
생각했다
- 내가 시인이라면

사람들이 말했다
- 그럼, 이제 넌
  C인이야

도장이
쾅,
찍혔다.


이다은의 첫 시집 「생각하면 눈시울이」는 다은이를 아끼는 교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보태어 출간했고 조촐한 출판기념회도 했다. 시의 암흑기에, 나이 어린 학생이, 어렵다는 시를 잘 써서 시집을 낸 것이 여간 용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김천역 앞 예쁜 찻집에서 열아홉살 시인을 만나던 날은 인터뷰하기에 적당한 시점은 아니었다. 그 날은 그녀가 대학입학을 위해 상경하기 바로 전날이었고 가족들과 저녁식사 자리를 앞두고 있어서 시간이 넉넉지 못했다. 그럼에도 무리한 일정을 감행한 것은, 슬픔을 절제하고 담담하게 정제된 언어로 써 낸 그녀의 성숙함에 반해 꼭 한번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어쩌다가 시를 쓰게 됐어요?

- 우리학교에 배창환 시인이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어요. 선생님이 수행평가 시간에 시쓰기, 삶쓰기를 하신다는 것도 언니들한테 들어서... 저도 조금씩 시를 써놓았거든요. 한날, 선생님이 시 쓴 거 가지고 와보라 하셔서 모아봤더니 70편정도 되더라구요. 선생님도 놀라셨죠.

- 보통 글쓰는 수업은 안좋아 하잖아요?

= 맞아요. 일주일에 한번은 읽고 싶었던 시 가지고 와서 낭송하고 느낀점 발표하고 수필쓰기하고... 저도 처음엔 귀찮았는데 막상 우리들 책이 나와서 글 실리니까 진짜 좋았어요.
(배창환 시인은 김천여고 학생들의 글을 모아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2007년 116명 학생들의 창작시집 「뜻밖의 선물」, 2009년 학생들의 창작 수필집 「어느 아마추어 천문가처럼」이 그것이다.)

출판기념회...이다은 학생(사진 가운데 교복)과 배창환 시인(둘째줄 왼쪽에서 네번째)
출판기념회...이다은 학생(사진 가운데 교복)과 배창환 시인(둘째줄 왼쪽에서 네번째)

- 시집을 많이 볼텐데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
= 도종환, 안도현... 문정희 시인 시도 참 좋아하고요. 아! 배창환 시인을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지요. 선생님이 안계셨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거에요. 도종환 선생님은 저희 문학모임에도 한번 오셨어요.

- 시집을 보면 할머니 이야기가 많아요. 마음 아픈 얘기도 많고.
= 초등학생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컸거든요. 고생하면서 키워주셔서 애틋한 마음이 커요.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냐면요, 해마다 심장병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시는데 주무시다가 벌떡 일어나서 “개밥 줘야 된다.”고 걱정하시는 거에요. 강아지 세 마리 키우는데...

- 시집 나와서 유명세 좀 타지 않았나요? 출판기념회도 했었고.
= 친구들은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했는데 아빠는 우시더라고요. 해준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할머니는 까막눈이라 시를 읽어드렸는데 아직도 제가 썼다는 걸 몰라요.

- 꿈이 뭐에요?

= 브랜드 메이커요! 어떤 상품이나 이미지에 이름 붙이는 직업이에요. 한번은 신문기사에 ‘참이슬’이란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소개됐었는데, 정말 멋있어보였어요. 사실은 프리랜서가 되고 싶어요. 시인만 해서는 못먹고 살잖아요.

- 술 잘 마셔요?

= 아... 저... 주량... 약해요... 소주 한 병... 정도...


그녀는 올해 한신대 문예창작과 ‘10학번’이 되었다. 여고 마지막 겨울방학은 그저 “잉여인간”(먹고 노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으로 보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주말마다 직지사 앞 식당에서 일년동안 아르바이트를 할만큼 야무지고 속이 깊다.


아픔을 알았다.
그것이 어렸던 나의 여린 삶을 아리게 만들었다.
시를 통해,
비밀을 고백하고
미안함을 말하고
감사를 전하고
행복함을 표현했다.
한 편의 시가 숨기고 싶었던 비밀에 찔끔, 땀을 흘릴 때마다
내게서 한 꺼풀의 가면이 벗겨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찾았다.

(*「생각하면 눈시울이」서문 중에서)



못나고 여린 것에 대한 연민이 잘 녹아있는 이다은의 시를 보면, 그녀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시인이 되어서 참 다행이다!’하는 안도감마저 느끼게 된다. 늦은 밤, 인터뷰 싣는다고 전화를 했더니 그 시간까지 기숙사 축제 자원봉사 일을 하고 있다면서 주변이 시끌시끌하다. 시 전공인데도 일주일에 한편씩 소설쓰기 과제를 계속해야 해서 조금 괴롭다고, 그렇지만 하고 싶었던 일이라 정말 즐겁다 한다. 스무살, 이다은의 두 번째 시집이 벌써 기다려진다.


생각하면 눈시울이
* 이다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면
슬레이트 지붕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 그 빗물 받아 빨랫물로 쓰려던
할매 생각이 나는 것

- 할매, 그거 석횟물이라서 쓰면 안돼요
몸서리를 치니까 결국엔
받아놓은 빗물 감나무 밑에 뿌리던
할매 생각이 나는 것

감나무, 하니까 감 따던 그 생각도 나는 것
할배가 주워온
교회 뒷산의 버려진 대나무 한 그루,
그 노랗게 뜬 대나무 끝에 철사로
양파주머니를 동여매서 감 따라고 주던
할매 생각이 나는 것

아직도 우리 집 어딘가 담벼락엔가 서 있을
대나무 감채가 생각나는 것

아직도 비가 오면 빗물 뚝뚝 떨어지던
빨간 다라이 생각이 나는 것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