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요즘 참 재미있는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다. 한국 현대사의 대부라 불리는 부르스 커밍스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은 참으로 다이내믹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이내믹하다는 말의 의미는 좋게 읽힐 때는 변화무쌍하다고 읽힐 수도 있고 때로는 일관성이 없다고 읽힐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한국 방송이 사실 일관성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사실과 관련이 있든 없든 너도 나도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하다는 점이나, 누군가 한 가지 사건을 대서특필하면 너도나도 줄을 서서 함께 거기 매몰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대단한 일관성 있는 자세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난 해 미국발로 의심되는 신종플루 공포의 보도를 보면서도 참으로 대단한 저력을 가진 언론들의 다이내미즘과 전혀 다르게 대비되는 저력 있는 일관성을 목도했다. 실시간으로 북새통을 이룬 병원 현장과 환자들의 사망 사실들을 연일 보도하는 다이내미즘과 가끔씩 “몇 만 명 사망 가능성” “비상사태” 등으로 양념을 치는 일관성 있는 태도도 보여준다. 그것도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가 오륙 천 명에 달하는 나라에서 교통사고 보도는 한갓 가십거리 정도로 보도하면서도 신종플루에 대해서는 첫 희생자부터 100명이 채 안 되는 마지막 사망자까지 줄기찬 공포의 보도를 그치지 않았다. 매년 유행했던 독감 관련 사망에 대해 정확한 통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에서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열정적으로 신종플루에 집중적으로 매달릴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어찌 보면 존경스럽고 어찌 보면 안쓰럽고 때로는 비참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러나 정부의 지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언론들은 어느새 ‘적당한’ 때가 오자 슬금슬금 보도횟수를 줄이더니 신종플루의 공포는 한국 땅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국민들이 불안과 공포 속에서 그 실체를 채 파악하기도 전에 신종플루는 언론의 화면이나 지면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와중에 세종시 문제나 나라호 실패 등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조용하게 묻혀갔다. 그리고 그 후 세계보건기구에서 보다르크 유럽 보건분과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허위공포설 등 뒷말들이 무성할 때 정작 한국의 언론들은 일과성 보도만 했을 뿐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신종플루의 특종이 잦아들만할 때쯤 시간이라도 맞춘 듯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한국의 언론들은 역시 그 대단한 열정으로 오래도록 끈질기게 천안함 사건에 매달리고 있다. 신기한 것은 신종플루처럼 천안함 사건의 경우에 있어서도 연일 보도되는 ‘뉴스’들이 새로운 것이라곤 거의 없는 거의 꼭 같은 보도를 하면서 기막힐 정도의 일관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언론들이 어뢰설, 기뢰설, 선체노후설, 암초설 등 몇 가지 안 되는 가설들을 사실 확인도 없이 연일 추측만으로 보도하면서 어떻게 시청자들의 이목을 저리도 잘 끌어갈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할 뿐이며, 국민들은 또 그 많은 관심거리들을 두고 어찌 저렇게 지루한 방송을 그리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지도 신기할 따름이다. 이러한 한국의 저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러나 한 발짝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면 이 저력은 괴이하고 스산하기까지 하다. 균형 잡히지 않고, 매몰되기 쉬우며, 과장하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오히려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많은 사실들은 국민들의 시선에서 사라져 버리거나 은폐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언론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국민들은 신문과 텔레비전이 이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된다. 중독성을 확보하고 비대해진 힘을 가진 어떤 체제나 권력에 의해 국민들이 이끌려갈 때 이미 민주주의는 포장만의 민주주의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이념체제에 의해 이끌려가다가 붕괴된 사회주의 국가들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기 전에 포장만의 민주주의로 전락해가는 우리 앞가림부터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우리 앞날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반세기도 전에 이런 세상을 풍자했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상황들에 비추어 더욱 음험하게 빛을 발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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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 의사. 내과전문의.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前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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