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젖줄, 또 다시 헤집는 건 죄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대강사업 반대> 대구생명평화미사..."강은 자연의 메신저, 원래 뜻에 맞게 보존해야"


대구생명평화미사에는 정홍규 신부를 비롯한 7명의 사제가 함께 했다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대구생명평화미사에는 정홍규 신부를 비롯한 7명의 사제가 함께 했다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비오는 토요일(5.22) 아침, 한적한 도동서원(대구시 달서구 도동리) 앞 너른 마당에서는 색다른 미사가 열렸다. '4대강 사업'을 막기 위한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대구생명평화미사'. 장대비가 쏟아지는데도 신부님들과 참가자들은 강을 위한 미사를 숙연하게 이어갔다.

주례사제인 정홍규(오산자연학교장) 신부는 "강은 산과 들과 갯벌과 바다를 연결하는 자연의 메신저"라며 "강의 죽음은 또 다른 십자가상 죽음"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성당의 4대강 반대 현수막과 서명운동을 선거법 위반으로 규정한데 대해 "4대강 사업이야말로 선거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경기도 두물머리에서 단식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온 오상환 신부도 "이미 다 내어준 대지의 젖줄을 황금알 낳는 거위처럼 또 다시 헤집고 피흘리게 하는 것은 죄악"이라며 "하느님 원래 뜻에 맞게 보존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마음을 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는 빗줄기를 맞으면서 미사는 낙동강 순례로 이어졌다. 비가 와서인지 공사현장 사람들의 제지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덕분에 도동 개포나루터까지 걸어간 참가자들은 공사현장을 뚫고, 흐르는 강물 앞에 서서 강을 위한 기도를 계속할 수 있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낙동강 순례는 계속되고...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쏟아지는 빗속에서 낙동강 순례는 계속되고...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강변에는 비에 흔적이 뭉개진 동물의 발자국도 있었고, 용케 살아남은 유채꽃이 선연한 노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보상 문제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는지, 모래둔덕에 잇닿은 양파밭에는 굵은 양파 알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여름이 지나면 저 푸른 양파밭도 강바닥을 파헤쳐 나온 모래언덕 아래로 묻힐 것이고 농민은 자기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양파밭을 포위하여 쌓아 올리고 있는 모래둔덕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양파밭을 포위하여 쌓아 올리고 있는 모래둔덕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곽상수씨
곽상수씨
보상을 거부한 채 농사를 짓는 곽상수(고령 우곡면)씨네 논도 4대강사업으로 물에 잠길 위기에 놓였다. 곽상수씨의 논 바로 옆으로 평지보다 3미터 높게 모래둔덕을 길게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논이 잠기면 이제 양어장 차리게 생겼다"며 낯빛을 흐렸다.

달성군 현풍면 다람재에 서면, 시원한 시야 안으로 풍수지리학자들이 으뜸으로 꼽는 도동서원 터가 유유한 낙동강의 물줄기와 함께 한눈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제 강과 사람의 마을이 어우러져 빚는 아름다운 풍광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람재에서 내려다 본 도동서원 전경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다람재에서 내려다 본 도동서원 전경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강변의 초록융단은 사막과 같은 모래언덕으로 빠르게 뒤덮이고, 곳곳마다 포크레인이 멀쩡한 강바닥을 긁어내고 토사를 쌓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강물을 정화시켜 내보낸다는 침사지에는 누런 황토물만이 고여 있다.

다람재에서 내려다 본 도동서원 앞 공사현장...흡입식준설방식은 강물을 끌어다 침사지에서 정수시켜 다시 강으로 흘려보낸다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다람재에서 내려다 본 도동서원 앞 공사현장...흡입식준설방식은 강물을 끌어다 침사지에서 정수시켜 다시 강으로 흘려보낸다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정수근씨
정수근씨

생명평화미사를 준비하고 진행한 정수근씨는 "한번만 눈으로 보면 진실을 알게 된다"면서 "낙동강 순례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낙동강을생각하는대구사람들>까페지기인 그는 생명평화미사를 준비하다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3차 대구생명평화미사는 5월 31일 저녁7시, <박창근&박창근 콘서트>와 함께 대구 삼덕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천오백리를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바람이 지나가는 다람재에 서면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강과 함께 비에 젖은 사람들이 성가를 부른다. 그대로 두면 좋을 이 모든 생명들의 노래 소리가 언제까지나 이어지길 바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막 피어난 보리꽃, 논두렁을 수놓은 자운영꽃무리,
아침이슬 머금은 작은 제비꽃,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시냇물, 해지는 서산마루,
비껴가는 저녁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발자국... 내가 좋아하는 것,
시냇가의 조약돌, 이름 없는 들길에 노란 민들레, 이른 아침 못가에 피는 물안개,
푸른하늘 날으는 아기종달새, 해저문 강나루에 살랑이는 솔바람,
노을을 기다리는 물새들의 속삭임..."
  (생활성가. '내가 좋아하는 것' / 김정식 작사.곡)

생명평화미사에는 천주교 신자와 시민 50여명이 함께 했다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생명평화미사에는 천주교 신자와 시민 50여명이 함께 했다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강가에서 손 모아 기원합니다. 생명의 강이 흐르게 하소서..."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강가에서 손 모아 기원합니다. 생명의 강이 흐르게 하소서..."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아픈 마음으로 강변을 바라보는 사제들...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아픈 마음으로 강변을 바라보는 사제들...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정홍규 신부(영천 오산자연학교장)
정홍규 신부(영천 오산자연학교장)

포크레인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용케 피워올린 꽃들...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포크레인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용케 피워올린 꽃들... / 사진. 이은정 객원기자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