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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은 처벌할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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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흔히 법치국가(Rechtsstaat) 원리를 현대 헌법의 기본원리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다. 대한민국 헌법도 예외는 아니다. 법치국가 원리는 민주국가 원리, 사회국가 원리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원리를 구성하고 있다. 법치국가 원리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법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법에 의한 지배"라고 말할 때 그 "법"이란 이중의 성격을 갖는다. 국가권력이 발동되는 근거로서의 성격과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성격이 그것이다. 법치국가의 목적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성문헌법주의, 권력분립, 적법절차의 보장, 위헌법률심사제, 포괄적 위임입법의 금지. 신뢰보호의 원칙 등이 사용된다.

헌법학 교과서 어디에나 나오는 얘기를 굳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법치국가 원리 혹은 법치주의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빠른 속도로 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은 법치주의 파괴의 상징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말단 공무원도 아닌 국무총리실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동영상을 자기 블로그에 퍼와 게시한 사인(私人)을 아무런 법적 권한 없이 소환하고 압수수색까지 한 사건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심지어 국무총리실은 그 사인(私人)이 대표이사로 있는 업체의 거래 상대방인 은행에 외압을 넣어 결과적으로 그 사인이 자신 명의의 회사 지분을 이전하고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도록 했는가하면, 수사당국을 압박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도록 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이 저지른 행태 안에는 국가권력의 발동근거이면서 국가권력을 제한해야 하는 수단으로서의 "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법치국가원리 혹은 법치주의가 지향하는 목적과 수단도 찾을 길이 없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나 적법절차 보장은 흔적도 없다. 아니, 그 보다는 최소한의 합법성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입만 열면 법치주의 확립을 말하는 대통령 아래서 발생한 이 불법투성이의 사건은 그 자체로 명백히 범죄를 구성한다.

국무총리실이 저지른 이 불법행위는 주목을 받아 마땅한 사건이다. 한국방송공사 정연주 사장 해임, 광우병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 및 기소, 미네르바 구속·기소, 용산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편파수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과잉 수사 및 그로 인한 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등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법을 통한 지배"였다. 법을 통치의 도구로 삼았을지언정 합법의 외피는 둘렀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무총리실이 자행한 민간인 불법사찰에 이르면 이 정부가 “법을 통한 지배”조차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정부의 수장인 MB의 과거 행적을 보면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은 고사하고 민주시민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하는 준법정신조차 크게 모자란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법치주의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마당에 그 많은 헌법학자들은 대체 어디서 무얼 하는 것일까? 

[미디어오늘] 2010년 06월 30일 ( 미디어오늘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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