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웬일인가, 삽질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반고의 핏줄을 끊고 강물이 썩어가는 것이 아닌가!
지금 당장 삽질을 멈추어라! 강물을 다시 흐르게 하라!"
변사의 애절한 말과 함께 창조신 반고(盤古)가 쓰러졌다. 반고는 동양신화 속에 나오는 창조의 신으로, 혼돈 속에서 홀로 태어나 2만년을 산 뒤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죽으면서 그의 몸이 자연의 일부가 돼 이 세상 우주만물이 창조된다.
극단 ‘연극자리소풍’이 11월 4일 저녁 대구 동성로에서 ‘창조신 반고, 동성로에 나타나다!’라는 주제로 1시간가량 ‘4대강 사업반대’ 길거리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날 공연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대구지회(대구 민예총)가 주관한 ‘4대강 사업반대 목요 저항의 예술행동’ 여섯 번째 순서로, 매주 목요일마다 대구지역 가수.극단.노래패들이 노래.연극.춤.몸짓 등의 형식으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연극자리소풍 단원들은 창조신 반고의 인형을 들고 대구 2.28공원부터 대구백화점을 거쳐 중앙파출소 앞까지 거리행진을 펼쳤다. 중앙파출소 앞 광장에 도착한 이들은 “반고의 고귀한 죽음으로 이 땅에 창조된 자연과 생명”, 그리고 “4대강 사업으로 강이 죽어가고 있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변사의 대사에 맞춰 단원 3명이 반고 인형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양한 몸짓을 만들어 냈다. 퍼포먼스의 마지막 부분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지금 당장 삽질을 멈추어라! 강물을 다시 흐르게 하라!”는 변사의 말과 함께 반고가 죽자, 광장 바닥에 펼쳐진 큰 도화지에 시민들이 강과 자연의 모습을 그렸다. 그뒤 한 단원의 “삽질을 멈추어라!”는 외침과 함께 퍼포먼스가 끝났다.
변사 역할을 맡은 권순정(38) 연극자리소풍 공동대표는 “시민들이 바닥에 그림을 그린 것은 반고의 죽음으로 자연과 생명이 태어난다는 의미”라며 “오늘 퍼포먼스는 반고의 고귀한 생명으로 창조된 강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파헤치지 말고 보존하자 뜻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최엄윤(35) 연극자리소풍 공동대표는 “주로 거리극을 많이 하는 극단이기 때문에 거리에서 느껴지는 저항정신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이런 게릴라성 공연을 통해 시민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4대강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고자 예술행동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연극자리소풍은 2006년 대구시 남구 이천동에서 창단한 거리공연과 그림자극을 주로 하는 극단이다. 단원 3명 모두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4대강 사업반대 목요 저항의 예술행동’을 주관한 최수환(47) 민예총 대구지회장은 “예술 퍼포먼스에 시민들이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아 이제껏 큰 호응은 없었다”며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행동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릴레이 예술행동을 통해 시민들에게 ‘매주 목요일마다 어디에서 뭐 하고 있더라’하는 인식만 심어줘도 아주 큰 성과라고 본다”며 “4대강 사업반대 구호를 외치는 것 보다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자연스레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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