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일본 에오로시 발전소’ 자막과 함께 수많은 광부들이 마치 군인들처럼 4열종대로 행진하듯 갱구로 들어가는 장면과 함께 시작된 ‘‘문어방’ 갇혀 중노동’ 보도(대구MBC, 11월 2일 뉴스 투데이).
일제의 이른바 ‘대동아전쟁’을 떠받치기 위해 끌려간 한국인 청년들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혹사당하는 참혹한 현장 상황을 영상으로 띄워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영상 속 홋카이도 에오로시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만 천 명 넘게 강제 동원됐고 이들은 대개 경북 안동․영주 지역 출신들로 보인다면서 92세 생존자의 증언을 곁들여 보도했다.
‘한 방에 백 명 씩 갇혔고 고문에 시달렸으며 식사도 앉지 못하고 서서 해야 하는’ 한국인 징용자들이 당한 참상을 전했으나 ‘총리실 산하 강제동원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5년의 조사 끝에 강제징용 실체의 일부를 확인했지만, 징용명부 등이 남아있지 않아 피해확인과 보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고 맺었다. 에오로시 수력발전소 건설현장 한국인 강제동원 실상 전모는 자료(근거서류)가 없어 밝히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홋카이도 에오로시 한국인 강제 동원의 역사 구성은 ‘팩트’ 단계에서 저지되어 있고, 그래서 그 역사를 밝히려면 실상을 증명할 자료부터 발굴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문어방’ 갇혀 중노동’ 보도는 그나마 일부 영상과 생존자의 증언을 확보할 수 있어서 역사 현장의 문으로 들어갈 최소한의 단서는 최소한 확보됐음을 영상과 증언으로 보여줬다. ‘‘문어방’ 갇혀 중노동’ 보도는 시청자들에게 역사의 진실은 어렵기는 하지만 반드시 밝혀야 하는 작업임을 환기했다.
다음날인 3일 대구MBC는 ‘우여곡절 끝에 첫 삽’ 제목으로 103년 전 인 1907년 대구에서 불길이 타오른 국채보상운동의 발자취를 담은 기념관 건립 공사가 시작된 것을 기자보도로 전했다. TBC도 “숭고한 뜻 알리자” 제목으로 이 뉴스를 메인뉴스에서 역시 기자보도로 다뤘다. KBS대구도 단신이지만 다뤄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
MBC․TBC ‘기념관 보여주기’ 공통점
그러나 대구 공중파 TV 세 채널의 보도 내용은 제각각이었다. 우선 KBS대구는 기념관 기공식․기념관 개요만 간단히 전했다. 대구MBC는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건립 사업이 당초보다 규모가 줄어들었고 기금 마련도 여의치 못한 곡절을 곁들여 다뤘다. 그러면서 “내년 7월까지는 완공해서 세계육상대회 손님 등에게 대구의 민족정신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김범일 대구시장의 인터뷰를 곁들였다. TBC는 ‘내년 세계육상대회 이전까지는 공사를 끝내 세계에서 대구를 찾는 손님들에게 국채보상운동의 숭고한 뜻을 알릴 계획’이라면서 김범일 대구시장의 인터뷰로 기념관 건립 사업비 확보 사실을 강조했다. 대구MBC․TBC 보도에서 강조한 것은 ‘기념관 보여주기’였다.
MBC, ‘국민 참여 부족’ 숙제 부각
대구MBC 보도는 기념관 사업을 추진해오면서 드러난 문제점을 '숙제'라는 표현으로 다뤘다.
"모금 운동으로 26억 원을 모아 공사비에 보태려 했지만 두 차례나 기간을 연장하고도 목표의 4분의 1에도 못 미쳤기 때문입니다. 기념관 규모가 줄면서 사업비도 줄었다고는 하지만 4억 원 정도가 여전히 부족합니다."
‘원래의 국채보상운동처럼 전 국민이 참여하는 그런 모금운동 기부운동의 형태로 완성되기를 기대’ 한다는 김영호 기념사업회 회장의 인터뷰는 2011 국제육상경기대회에 올 외국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 이상의 것이 ‘국민의 참여’에 의한 건립이며 기념관 당일에 이르도록 ‘국민의 참여’가 부족했음을 대구MBC는 제대로 지적한 것이다. 관이 돈을 대 짓는다면 그 기념관은 나라가 진 일본의 빚을 같아 일제 지배에서 독립하려고 거상에서 기생에 이르기까지 차별 없이 참여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살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구시장을 중심인물로
그러면 영상보도는 어땠을까?
먼저 대구MBC는 김범일 대구시장의 얼굴을 두 차례(인터뷰 포함) 클로즈업해서 다루고 마지막으로 김영호 기념사업회 회장(인터뷰)를 띄웠다. TBC는 김영호 기념사업회 회장을 먼저 띄우고 김 시장을 다음으로 다뤘다. 한 세기 전 온 백성이 힘을 모은 국채보상운동을 오늘에 되새기는 작업을 대구의 민간에서 먼저 시작했다는 점에서 민간인 기념사업회 회장을 먼저 띄운 TBC의 영상보도는 적절했다.
TBC, 서상돈 흉상만 부각
국채보상운동 기념 조각상 관련 영상 보도에서는 대구MBC가 국채보상운동에서 두각을 드러낸 여성들을 기념하는 원형의 상징 조각과 대구 광문사 사장 김광제, 부사장 서상돈 두 중심 인물의 상을 함께 룬 반면 TBC는 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의 비문, 서상돈 선생의 흉상을 띄웠다. 김광제 선생의 흉상은 뻬 버려 마치 (대구)국채보상운동의 주역은 서상돈 선생 혼자인 듯 비치게 했다.
앞의 ‘‘문어방’ 갇혀 중노동’ 보도가 한국인 강제 동원 역사의 진상을 밝히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강조했다면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건립 관련 보도는 선열이 벌인 숭고한 민족운동(역사)을 방송이 어떻게 해석해서 전달하느냐에 따라 시청자들에게 비치는 역사상은 다른 얼굴을 할 수 있고, 역사와는 관계없는 또 다른 메시지로 뒤바뀔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국채보상운동’ 배경 안 다뤄
이 두 종류의 기사는 시청자들에게 역사교과서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그 비중이나 의미가 적지 않지만 배경과 맥락을 빠뜨려 운동의 향방을 알 수 없게 했다. ‘나라 빚을 갚기 위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국민 모두가 술과 담배를 끊고 비녀와 반지를 뽑’은 배경, 역사 속의 맥락이 세 채널의 보도에서는 모두 빠졌다. 여러 FTA가 잇따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상황이라 국채보상운동이 어느 나라에 대한 운동인지, ‘국채’는 왜 짊어지게 됐는지, 외세는 ‘차관’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국가 운명을 뒤집어 놓는다는 정도는 시청자들이 모두 잘 알고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일까?
이밖에 대구 공중파 세 채널이 지난 두 주 동안 ‘의성 마애보살좌상 중요문화재 가지정’(KBS대구 11월 1일), ‘청량사 삼존불살 보물지정’․(11월 1일), ‘남산 신성비 한 자리에’․‘‘대승기신론의기’ 보물로 지정’(11월 4일) 등을 다뤘다. 문화재가 역사를 증명하거나 해석할 수 있게 하는 증거물․열쇠란 점에서, 또 ‘동학혁명 116주년 기념식’(대구MBC 10월 29일), ‘전몰 학도의용군 추념식’(TBC 11월 4일) 기사는 그날의 역사에 대한 기억을 이어가는 역사의식을 다뤘다. 그러나 다소 흥밋거리, 또는 맥락을 알 수 없어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보도가 돼 버렸다.
역사 보도는 ‘연성’이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확’ 모으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시청자들의 역사 정체성을 가장 대중적으로 교육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최근 들어 학교 교육에서 역사교육이 매우 등한시 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역사보도, 역사 찾기․비틀기 ‘양남의 검’
‘사실’이 차단당했을 때 우리는 역사의 미아가 된다. 배경과 맥락이 무시된 채 역사가 해석됐을 때 우리는 역사의 ‘사생아’ 또는 ‘폭군’이 된다. 방송은 배경과 맥락 있는 역사 해석으로 시청자를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역사의 견인 역을 하게 할 수도 있고 역사를 외면해 역사에 무시당하게 할 수도 있다.
양날의 검을 쥔 방송, 어디를 향하는지가 문제다.
|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07]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