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인력시장, 불씨 꺼져가는 모닥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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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원대시장 앞 / "어제 오늘 일감 하나도...그래도 처자식 생각하면..."


대구시 서구 원대시장 앞 인력시장...모닥불 주위에서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대구시 서구 원대시장 앞 인력시장...모닥불 주위에서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사방에 어둠이 깔린 새벽 5시30분, 대로변 가로등 불빛 아래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빵모자와 두툼한 점퍼, 건빵바지 차림의 이들은 일감을 찾아 인력시장에 나온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들이다. 12월 2일 새벽 대구시 서구 원고개시장 앞 인력시장. 초겨울 찬 바람에 손이 시릴 정도의 새벽 공기, 입김이 절로 나왔다.

기자가 도착했을 무렵 이들은 장작과 폐지를 모아 불을 지피는 중이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 불을 피웠는지 타고남은 재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찬 새벽 날씨에 불을 피우지 않고는  두 시간가량 거리에서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6시쯤 되자 벌써 20명의 사람들이 모닥불 주위에 모였다. 40-50대가 대부분인 이들 무리 속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60대 근로자도 한두 명 섞여있었다.

어제 오늘, 하나도 없다...

보통 6시에서 6시30분 사이 인력중개업자들이 일손을 구하러 이곳을 찾지만 이날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 40대 근로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이 곳에 왔는데 어제 오늘 일감이 하나도 없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옆에 있던 다른 근로자는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일감이 있을지 알 수 없어도 매일 이곳에 나와야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혹시 인력중개업자들이 늦게라도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계속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일주일에 평균 세 번 정도 일 한다고 했다. 일이 있어도 인력중개업자들이 10명도 안 되는 인원을 선별해 데려간다. 일주일에 세 번, 그것도 절반가량의 근로자만 일 할 수 있다. 북비산네거리 인근 대광건설인력소개소 직원은 "사무실에도 매일 20여명이 찾아오지만 7-8명밖에 일을 구하지 못한다"며 "11월초부터 내년 2월말까지는 건설현장 비수기"라고 밝혔다.

6시 30분이 지나도 중개업자들은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20명 모두 일감을 얻지 못한 채 7시쯤 이 곳을 떠났다. 불씨 꺼져가는 모닥불만 남았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6시 30분이 지나도 중개업자들은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20명 모두 일감을 얻지 못한 채 7시쯤 이 곳을 떠났다. 불씨 꺼져가는 모닥불만 남았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당으로 보통 7-8만원, 기술이 있을 경우 12-13만원을 받는다. 일주일에 3일로 계산하면 한 달 평균 80여만원에서 많아야 150만원 안팎이다. 그나마 일을 잘 구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이 가운데 중계업자들에게 수수료를 떼어주고 남는 돈으로 생활한다. 수수료는 중개업자들마다 다르지만 대략 하루 5천원, 혹은 일당의 10%정도다. 새벽 일찍 나와도 일감을 찾기 힘든 이들에게 겨울은 시련의 계절이다.

불씨 꺼져가는 모닥불만...

모닥불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승합차 한 두 대가 모습을 보였다. 순간 근로자들의 시선이 모두 승합차 쪽으로 쏠렸다. 그러나 회사 통근차량임을 확인하고 다시 눈길을 돌렸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눈빛에서 실망하는 모습이 보였다. 

7시쯤 되자 한두 명의 근로자들이 내일을 기약하며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결국 이날 20명 모두 일감을 얻지 못했다. 어느새 근로자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불씨 꺼져가는 모닥불만 거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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