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 딱 마음에 드는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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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꾼 시인' 류근삼② / 혁신계 활동 틈에서 의식을 키우다


“요새는 안적습니다. 그걸로 시비 거는 사람도 없으니 빈칸을 채울 필요가 없지요. 굳이 채워야 한다면 무학(無學)으로 씁니다.”

바로 학력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실제로 학교에 다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꽤나 공부를 잘했습니다. 당시 중학교에 가기위해 치르는 국가고시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고 싶은 중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6.25 전쟁통인데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학교 대신 동네 사방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밀가루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양복 일을 시작한 형의 도움으로 집안형편이 나아져 이듬해 중학교에 진학합니다. 중학교 졸업 뒤 체신고등학교에 진학하려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합니다. 말하자면 ‘무학’은 정규학교를 다닌 햇수가 얼마 되지 않고, 또 원하는 학교를 다니지 못해 평생의 한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류근삼(71)님
류근삼(71)님

그는 학교 수업대신 강의록이나 책을 읽는 것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한때 그는 이승만 정부의 자유당 정권이 농촌청소년들에게 장려한 4H운동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농촌 현실의 피폐함을 제대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시절 그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속의 주인공인 채영신의 실제인물 최용신의 전기를 쓴 서울대 유달영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고향인 달성 군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농촌운동을 벌입니다. 또 야학에도 참여합니다. 어떤 동네는 처녀만도 칠팔십 명이 야학에 모여들었다고 회고합니다. 그 때 그의 나이 18~19세. 곧바로 그는 시대의 흐름 속에 휩쓸려 들어갑니다. 그의 곡절 많은 운명과 아픈 가족사는 그의 백형을 둘러싸고 시작됩니다.

“아버지 역할을 하던 백형의 성서 양복점으로 청년들이 자주 모였어요. 진보당을 하던 죽산 조봉암 선생 쪽에서 내는 중앙공론이라는 기관지도 보이고….”

한국일보 2010년 7월 1일자 8면
한국일보 2010년 7월 1일자 8면
그의 백형과 친구들은 진보당을 통해 이른바 혁신계 활동을 한 것입니다. 그 또한 그 틈에 끼여 종이가 귀해 누런 ‘똥종이’에 인쇄된 책들을 틈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정치적인 의식을 키워왔던 셈이지요. 그러다 1958년 1월, 진보당 사건이 터지면서 백형과 일행들은 일본으로 밀항을 하게 됩니다.

진보당 사건은 평화통일 방안을 문제 삼아 당수인 조봉암을 국가보안법과 간첩죄로 몰아 이듬해 사형시킨 사건입니다. 진보당도 해산 명령을 받습니다. 조봉암은 56년 대통령 선거에 야당 후보로 나서 216만 표를 얻었습니다. 헌정사상 첫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조작사건으로 드러나 지난 10월 대법원이 재심결정을 내렸습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북송선은 타지 않았다고 하는데, 하도 답답해서 물어보니 점쟁이는 죽었다고 그래요. 조카들은 제사지내고….”

그의 백형은 1959년 일본에서 행방불명되고 맙니다. 당시 백형과 함께 일본으로 간 사람들 중 몇몇은 재일동포북송선을 탔지만 백형은 북송선을 타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그의 백형과 관련된 어떠한 소식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의 백형은 그의 시에도 가끔 등장할 만큼 잊지 못할 아픔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해를 넘긴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고 자유당 정권은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백형 친구들과 편지 등으로 교류가 잦던 그는 이를 고리로 민족‧민주를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고 이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그것은 그에게 정치와 사회 현실에 본격적으로 눈뜨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한편으로는 그의 풍상세월을 예고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한마디로 말합니다.

“그 사람들 만나니 내 마음에 딱 드는기라.”



[박창원의 인(人) 36]
여덟 번째 연재 '통일꾼 시인' 류근삼②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 정옥순 ▷'하회마을 뱃사공' 이창학 ▷'노동운동가' 장명숙 세실리아 ▷'장승쟁이' 김종흥,
▷'고서 일생' 박창호' ▷'사주쟁이 기자' 우호성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 그리고 ▷'통일꾼 시인' 류근삼.
<박창원의 인(人)> 여덟 번째 연재는 민족.자주통일에 힘써 온 '통일꾼 시인' 류근삼(71)님의 이야기 입니다.
류근삼 시인은 민족자주평화통일대구경북회의 의장과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통일꾼 시인' 류근삼 님과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292-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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