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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의 단어 '평화통일'
'통일꾼 시인' 류근삼③ / "사회피라미드의 하층에 서라"
2010년 12월 15일 (수) 10:38:17 평화뉴스 pnnews@pn.or.kr

"자주와 평화통일…요새는 아무렇지도 않게 쓰지만 50년 전만 하더라도 금기를 깨뜨리는 상상력의 방안쯤 되었지요. 단지 서로 싸우지 말고 평화적으로 통일하자는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론이 활개를 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죽산 선생은 평화통일론을 주창하다 사형당한 것 아닙니까?"

반공이 유일한 국가의 존재이유가 되다시피 했던 그 시절. 그는 ‘평화통일’과 ‘자주통일’이라는 말에 점점 익숙해져갑니다. 진보당 운동을 하다 일본으로 밀항한 백형의 영향으로 일찍이 정치의식에 눈을 뜨게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궁금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대구대에서 틈틈이 ‘도둑청강’을 한 것도 도움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그의 발걸음도 바빠집니다. 같은 해 치러진 7.29선거에서 그는 달성군의 사회대중당 후보를 지지하며 지원활동을 펼칩니다. 하지만 그 후보는 완패하고 맙니다. 그러고 보면 그는 고향인 달성군에서 진보적이고 이상적인 청년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 류근삼(71)님

"제가 가입한 단체는 강령과 회원명부, 노래에다 깃발까지 갖춘 전국조직이었습니다. 대구사무실은 종로파출소 옆에 있었지요. 서도원, 도예종, 박상홍, 송상진, 하재완, 은달섭 그리고 이낙호, 조만호 같은 분들이 참여했습니다. 제가 가장 어렸지요."

그는 스무 살 갓 넘은 해에 통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바로 민족민주청년동맹(민민청)에 발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민민청은 4.19 혁명 이후 그해 6월 부산에서 처음 만들어집니다. 부산경남맹부에 이어 경북맹부, 서울맹부가 결성됩니다. 단체의 출발을 부산에서 한 것은 일찍이 문화조직을 이끌던 부산대 이종률 교수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1961년 민민청에 가입한 그는 단체 이름을 걸고 영남일보에 ‘사회피라미드의 하층에 서라’는 제목으로 기고도 합니다. 또 서도원 선생은 같은 신문에 ‘국내외 정세는 조국통일이 목전에 다다랐음에도 반민주세력이 일부 외세에 아부 의존해 조국통일을 지연시켜 보려는 망상을 꾸고 있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여기에다 2월에는 대구역 광장에서 통일 촉진 웅변대회도 열렸다고 합니다.

   
▲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하재완...1975년 4월 9일.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희생자들

뒤이은 3.1절 행사에서 그는 처음으로 데모행렬에 참여합니다. 달성공원에서 기념식을 마치고 북성로를 거쳐 중앙로로 진출했습니다. 그는 민주당이 자유당으로 회귀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은 2대 악법 반대운동 같은 집회에 참여하며 ‘짚차 연설’을 합니다. 당시에는 짚차로 시내를 돌며 지지나 반대 연설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2대 악법은 반공임시특별법(안)과 데모구제법(안)이 그것입니다.

민민청은 60년대 자주통일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했던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민자통)를 구성하는데도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민자통은 학생, 시민, 정당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자주통일을 추구했던 전국단체입니다. 당시에 시작된 그의 민자통 인연이 풍상을 겪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와 평화통일을 위한 전진은 여기까지가 전부였습니다. 1961년 5월 16일 정치군인들이 반공과 부정부패, 혼란 척결 등을 내세우며 쿠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를테면 사회의 정상적인 본분을 회복시키기 위해 나섰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군인의 본분을 이탈한 것이지요.

"5.16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내 인생 수난의 시대가 시작되었지요. 우리끼리 피 흘리지 말고 평화통일 하자는 것도 큰 죄가 된 것입니다. 우찌, 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세상이 다시 거꾸로 가는 건지."

   


[박창원의 인(人) 37]
여덟 번째 연재 '통일꾼 시인' 류근삼③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 정옥순 ▷'하회마을 뱃사공' 이창학 ▷'노동운동가' 장명숙 세실리아 ▷'장승쟁이' 김종흥,
▷'고서 일생' 박창호' ▷'사주쟁이 기자' 우호성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 그리고 ▷'통일꾼 시인' 류근삼.
<박창원의 인(人)> 여덟 번째 연재는 민족.자주통일에 힘써 온 '통일꾼 시인' 류근삼(71)님의 이야기 입니다.
류근삼 시인은 민족자주평화통일대구경북회의 의장과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통일꾼 시인' 류근삼 님과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292-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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