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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의는 큰 복지
[김윤상 칼럼] "특권과 차별을 타파해 복지 수요를 줄여야"
2011년 02월 13일 (일) 16:07:51 평화뉴스 pnnews@pn.or.kr

복지가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복지는 자선 또는 사치라고 여겨왔던 우리 풍토에서 복지 논쟁이 전면에 부상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구호가 먹히자 야권은 무상의료, 무상보육을 추가로 내세우고 있으며 박근혜 의원까지 ‘맞춤형 복지’를 내걸면서 복지는 당분간, 적어도 다음 대선까지는,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복지를 대가족과 이웃사촌이 담당해 왔으나 이제는 사회가 맡을 수밖에 없도록 시대가 변했다. 대가족과 이웃사촌은 그래도 피가 통하고 인정이 통하는 집단이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 세금으로 복지 재정을 마련하면 ‘모르는 사람을 왜 내 돈으로 부양해야 하나?’ 하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복지 논쟁에는 ‘세금폭탄론’이 난무하고, 도와주기 시작하면 버릇만 나빠진다는 공격이 나온다.

노력, 능력, 운 그리고 특권과 차별

복지 수요는 결국 소득이 적어서 생기는데, 소득에 영향을 주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알기 쉽게 성적을 예로 들자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은 아니다. 평소실력이나 두뇌와 같은 능력에 따라 성적이 달라진다. 또 자신이 공부한 범위와 문제의 관계 또는 그날의 일진과 같은 운도 작용한다. 거기다가 100점 만점 시험에서 어떤 학생에게는 무조건 30점을 보태주거나 깎는 제도가 있다면 그 역시 성적에 큰 영향을 준다. 즉 보통의 경우에는 노력, 능력, 운이 원인이 되고 그밖에 특권과 차별도 원인이 된다는 말이다.

이런 여러 원인의 정당성에 대해 공개 토론을 벌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노력의 정당성은 만장일치로 합의할 것이다. 특권과 차별이 부당하다는 데에도 모두 동의할 것이다. (속마음으로는 특권과 차별의 존속을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운이 떳떳하지 않은 원인이라는 점에도 대체로 합의하겠지만, 운의 영향을 정부가 나서서 줄이자는 데는 반대도 있을 것이다. 자유를 중시하고 정부 개입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운의 영향을 측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권과 차별의 사회구조를 고쳐야

이런 예상이 맞다면 정부는 노력의 결과를 보호하는 동시에 특권과 차별의 사회구조를 고쳐야 한다. 특권과 차별의 예를 들면, 과거에는 신분, 인종, 성별 등에 의한 불평등이 있었고, 요즘에는 토지 소유자와 비소유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비수도권, 일류 학교 출신과 나머지 간의 불평등이 있다.

노력도 기여도 없이 단지 땅을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 불로소득을 얻는 사회.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쥐어짜는 사회. 신분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임금이 더 높아야 하는데도 거꾸로 되어 있는 사회. 수도권에 권력과 기회가 집중되는 사회. 학벌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복지를 논하는 자체가 너무 어색하다.

대증요법 아닌 원인 제거를

특권은 불로소득을 낳고 차별은 책임 없는 손실을 낳는다. 특권과 차별을 그대로 둔 채 복지를 말할 수 있나? 특권과 차별로 인해, 사람들이 매일 가난의 늪에 빠지고 또 빠지고 있는데, 건져내기에만 신경 써서 될까? 병의 원인을 놔두고 증상만 다스려서는 치료도 어렵고 재발을 막을 수도 없다. 때에 따라서 대증요법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원인을 없애는 것이 당연히 더 중요하다.

특권과 차별이 없어지면 사회가 건강해져서 복지 수요는 크게 줄어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복지 수요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후천적으로 삶의 능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생장환경 탓으로 능력을 배양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편으로는 복지를 제공하고 또 한편으로는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복지 확대냐 특권과 차별 철폐냐?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면 (응급조치로서의 복지를 제외한다면) 필자는 단연코 특권과 차별 철폐다. 큰 정의는 그 자체로 큰 복지이기 때문이다.

   





[김윤상 칼럼 36]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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