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사 보호하기? 정치인 행차 나팔 불기?
구제역 감염 지역이 경북, 충청, 경기, 강원을 휩쓸어 남한 지도의 거의 2/3를 뭉개고 있다. 구제역으로 살 처분된 가축 수가 백삼, 사십만 마리에 달한다. 대구도 구제역 영향권에 들어갔다. 현재 대한민국의 축산농업은 구제역으로 살처분 되는 대상 가축 수와 그 대상 지역, 구제역 지속 날짜, 백신 접종 등 대책, 육류 소비를 넘어 관광 등 확산되는 분야…로 볼 때 그 어떤 재난보다 심각하다(여기다 조류인플루엔자 AI도 호남 지역에서 시작, 경기 등지로 날로 확산되고 있다). 그만큼 구제역 대책에는 총체적이고 납득할만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전국 최대 한우 사육단지라 불리는 우리 지역의 구제역 보도를 보면 애매하기 짝이 없다. 경북지사가 다칠라 보호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보도, 늑장보도, 축산농업인 입장보다 특정 정치인을 부각한 보도가 잇따랐다. 최근 대구지역 공중파TV의 구제역 보도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짚어본다.
축산기술연구소 구제역에 뉴스가 긴장?
먼저 구제역 보도의 성역 문제.
지난 11일 KBS대구와 대구MBC의 메인뉴스는 경상북도 한우.돼지의 품종 개량 핵심 기관인 축산기술연구소마저 구제역에 무너진 사실을 보도했다. 그것도 연구소의 가축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는데도 열흘째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KBS대구, ‘축산기술연구소 칡소 구제역’, 대구MBC, ‘경상북도축산기술연구소 구제역 발생’).
일보를 전한 두 채널의 보도는 일단 칡소를 비롯해 이 연구소에서 키우는 가축에서 구제역이 발생했고, 지난 2일 구제역 증상을 보였으며, 5일 양성판정을 받았는데도 이 연구소는 열흘째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사실을 전함으로써 축산 농장의 구제역 대응과는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할 한우.돼지 품종개량 전담 기관에 엄청난 문제가 이미 발생한 사실을 어렴풋이 시청자들이 느끼게 했다(그나마 TBC는 11일 메인뉴스에서는 이 뉴스를 다루지 않았다).
이후의 KBS대구, 대구MBC, TBC의 보도는 ‘경상북도축산기술연구소 구제역 사태’를 보는 세 채널이 보도 태도가 어디를 향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구제역 확산은 ‘정부 탓’
먼저, 대구MBC의 12일 뉴스데스크 ‘영주확산 이유 있다’ 보도.
이 보도는 지난 2일의 ‘경상북도축산기술연구소 구제역 사태’의 책임소재를 다룬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영주시 장수면 모 돼지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이 농장에서 3.1km 떨어져 있는 이 연구소에서도 살 처분 관계로 바짝 긴장했으나 웬일인지 살 처분 범위가 알려진 대로 3km가 아니라, 돈사 반경 500m로 대폭 축소돼 진행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고 그에 따라 보름이 흐른 지금(보도시점), 축산연구소를 비롯한 영주 서부지역의 한우.양돈농가 50여 곳과 인접한 예천 농가의 10여 곳 등으로 구제역이 무섭게 번졌다고 안동MBC발 보도로 전했다.
이 보도는 영주시도 살 처분 범위가 3km였다면 예방접종을 검토했을 것이라는 시 관계자 말을 인용, 보도했다. 살 처분 범위를 500m로 ‘대폭 축소’했기 때문에 방역에 제 때 손을 쓰지 못해 구제역이 확산됐고 그 같은 살 처분 범위 축소는 ‘중앙 단위 기관의 결정’이라는 것이다.
축소보도 인상
TBC는 KBS대구와 대구MBC보다 하루 늦은 12일 ‘경상북도축산기술연구소 구제역 사태’를 다뤘다(프라임뉴스, ‘축산기술연구소도 구제역’). TBC는 연구소 구제역 사태로 우량 한우.돼지 품종 개발 보급 사업이 타격을 받게 됐고 은폐 의혹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TBC 보도는 은폐 의혹은 ‘당황한 직원이 기관이 아닌 연구소장 이름을 적었’기 때문이라면서 고의로 숨기려 한 것은 아니라는 연구소 측 해명을 곁들였다. 그러나 은폐 의혹이 없다는 대목은 같은 날 KBS대구의 보도와는 달랐다.
'지사도 쉬쉬' 은폐의혹 강조
KBS대구는 ‘경상북도축산기술연구소 구제역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12일 메인뉴스에서 집중 보도해 단연 돋보였다. 보도 내용과 태도 면에서 축산농업 관계자는 물론 일반 시청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적극 전달하려는 자세를 보였다(집중1-‘조직적 은폐’, 집중2-‘품종개량 캄캄’). KBS대구는 이날 보도에서 경상북도가 이 사태(경상북도축산기술연구소 구제역 발생)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축산기술연구소의 칡소가 2일 구제역 의심 증상을 보이자 연구소장은 즉각 경북도에 보고했으나 축산기술연구소 명의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정밀검사를 의뢰했고, 외부에는 전혀 알리지 않았으며, 구제역 양성판정이 나온 지난 5일에도 구제역 발생사실을 숨겼고, 일주일 동안이나 몰래 매몰작업을 해 왔다. 경상북도는 상급기관인 농림수산식품부에조차 일체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상북도축산기술연구소가 구제역에 뚫린 것이 여간 심각한 사태가 아니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알만한 사태인데 외부에는 일체 알리지 않았고 담당 국장과 김관용 지사까지 쉬쉬한 것은 고의적 은폐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
은폐 의혹, 구제역 확산 책임 시사?
한우와 칡소 5백18 마리, 돼지 5백21마리, 흑염소와 산양 83마리 등 모두 천 백20여 마리를 살 처분한 것으로 드러난 경상북도축산기술연구소 구제역 사태(살아남은 가축은 지난달에 미리 옮겨놨던 임신 소 50여 마리뿐)는 대한민국 축산농업인들의 대재난에 누구보다 책임을 통감해야 할 관계 공무원 조직 내부에서 은폐 의혹을 키움으로써 미증유의 구제역 확산 책임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시사했다. 그와 함께 축산기술연구소 구제역 사태를 다룬 지역 여타 공중파TV 보도 태도는 축산기술연구소 구제역 사태를 축소 지향적으로 다루거나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매몰범위 백m, 아니면 2백m로' 강조
그런 가운데 대구MBC는 15일 뉴스데스크 보도 “매몰반경 재고해야”(안동MBC 발)는 영양군을 방문한 MB의 최측근 이재오 특임 장관이 매몰처분만이 능사는 아니라면서 “(매몰 범위를 구제역 발생 축산농장의 부근) 5백m 안에 백m로 한다든지 2백m로 한다든지” 해야 한다는 이 장관의 발언을 기자보도로 전했다.
그런데 이에 앞서 대구MBC 12일 뉴스데스크 ‘영주확산 이유 있다’ 보도에서는 구제역이 경상북도축산기술연구소 등 영주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된 것은 살 처분 범위 3km를 지키지 않고 중앙단위 결정-정부 실수로 5백m로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라면서 ‘감염력이 높은 돼지 구제역은 반경 3km 안의 가축까지 살 처분 해왔기 때문에, 당시 축산연구소도 바짝 긴장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이날 안동MBC 발 보도에서 정창진 경북 축산연구소 소장은 “저희 연구소하고 3.1km가 떨어져 있습니다. 공기 전염이라고 저희들은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밝혔다). 이 장관 발언은 관계 공무원이나 전문가 주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어서 ‘놀라운’(어쩌면 ‘획기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장관이 영양군을 찾아 백신 접종의 효과를 강조했음에도 정작 영양군청 홈페이지 ‘구제역 백신의 장단점’ 안내문은 그 효과가 그렇지만은 않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정부가 구제역에 획기적인 대책인양 접종을 서두르고 있는 백신이 이동통제 및 소독에 따른 경제적 손실(방역비 등) 최소화 등의 장점 외에 예방접종 가축에 대한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일부 예방접종 가축이 전염원 역할을 하며 다른 가축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는 등 단점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은 왔다 가면 그만이고 동정 보도도 하고 나면 그만이지만 그 혼란의 피해는 모두 축산농업인 몫이다.
직접 백신 접종 이재오 장관은 수의사?
이 보도에서 눈길을 끈 또 하나의 장면-영양군 영양읍 화천리 축산농장을 방문한 이재오 장관이 직접 소에 백신을 주사하는 장면이다. '한우 농가를 찾은 이재오 특임장관. 능숙한 솜씨로 소를 다루며 백신주사를 놓습니다'면서 이재오 장관이 한우에 백신을 주사하는 장면을 기자는 중계방송 하듯 전했다. 이재오 장관은 백신 주사를 놓을 수 있는 수의사인가?(이 장관은 서울 모 대학 경제학과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화천리 축산농장을 이 장관이 여러 관련 공무원과 함께 방문해 백신 접종을 하는 장면을 보도진이 농장에서 취재 보도했다.
구제역이 발생하자 영양군은 사람이나 이동수단이 구제역을 확산시킬 수 있다면서 영양 5일장을 주민.상인 불편.피해를 무릅쓰고 사태 종료까지 폐쇄했다(영양군청 기획감사실 보도자료 ‘구제역 확산방지를 위한 영양시장(5일장) 폐쇄’(2010. 12. 16.). 영양군청은 구제역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주민.상인에게는 불편.피해를 감수하라고 요구하면서 특정 정치인의 나들이에는 대문을 열어준 셈이다. 또 1분56초에 걸친 보도는 이 장관 홈페이지도 이보다 더 화려할 수는 없을 정도로 농장.영양군청상황실의 이재오 장관 화면으로 도배하다시피 했지만 축산농업인은 보도화면 그 어디에도 없었다.
보도 초점은 축산농업인.축산농업에만
축산농업인들은 지금 구제역으로 애간장이 다 타들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축산농업인들의 소리는 보도 화면에서 사라진 채 아귀가 맞지 않아 혼란스러운 구제역 행정.보도는 (일부지만) 이어지고 있다.
구제역 보도, 초점을 축산농업인과 축산농업에만 맞추어야 한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17]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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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보도> "지사도 쉬쉬...은폐 의혹" / '이재오' 발언...축산농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