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얻은 멋진 벗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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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선생님' 아용② / 어머니를 여의고 스님의 길로 들어서다


"송도(松都)가 망하려니 불가사리가 나왔다더니 집안이 망하려니 별개 다 나오는구나."

그의 삭발한 모습을 본 아버지는 통곡을 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아버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딸이 낯선 인생행로를 걸으려는데 대해 같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느꺼움 때문이었을까요? 불교에 빠져 사는 것에 눈감으며 항상 그의 편이 되어주었던 어머니마저 막상 출가결심을 밝히자 이를 말렸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장래 희망을 물었습니다. 그때 스스럼없이 승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봐도 드문 일이기는 했겠지요."

그는 이미 고등학교 다닐 때 출가를 하겠다는 생각에 두 번씩이나 절을 찾아가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오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또 대학진학에 실패해 재수를 할 때도 절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미 불교나 절은 그와는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비구니 선생님' 아용 스님...20대에 출가한 스님은 벌써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비구니 선생님' 아용 스님...20대에 출가한 스님은 벌써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애초부터 비구니 스님이 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중학교 1학년 때만 하더라도 정치가가 꿈이었습니다. 박순천, 임영신 등 국내 여성 정치인은 물론 영국 수상인 대처의 신문 기사를 오려서 책상 앞에 붙여 놓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도 결혼 생각 말고 정치가의 길을 가라며 격려해줄 정도였습니다.

"저의 집은 무교였지만 외가 식구들이 교회를 다녔지요.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 교회를 열심히 다녔지요. 그러다 책 한권으로 불교를 알게 되고 급기야 스님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인생행로는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일대 변화를 맞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 댁에 갔다가 책 한권을 빌려오게 됩니다. 바로 고은의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는 제목의 수필집입니다. 스님이 되었던 고은이 환속해 처음 쓴 이 책은 ‘성(聖)‧고은 에세이집’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불교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그는 ‘도가 무엇이냐’고 묻자 ‘뜰 앞에 잣나무’라고 했다는 글귀를 보고는 김용사(金龍寺)를 찾아갑니다. 선문답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동네 가까운 문경 운달산의 절을 찾은 것입니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당시 마루 끝에 앉은 스님과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불교를 믿는 것과 속가와의 인연을 끊고 ‘출가’를 한다는 것-둘은 너무나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출가하려는 뜻이 있어도 계기가 없으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출가의 계기는 대학 재수시절 딸을 절에 보내놓고 청소하면서 줄곧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로부터 왔습니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어머니가 급작스레 세상을 떠납니다.

어머니를 여읜 슬픔에 꼬박 1년 동안 빈소를 지킨 뒤 속세와의 인연을 끊기로 마음을 먹고 이를 실행에 옮깁니다. 그렇다고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나요. 출가하고 얼마 되지 않은 행자시절 아버지와 오빠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집에 가지 않으려고 차문을 닫고 빠져나오려다 아버지의 팔을 부러뜨리기도 합니다. 한동안 집에 갇혀 지내다 창문을 넘어 다시 절로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결국에 그는 내원사에서 성택 스님을 은사로 비구니 스님의 길로 들어섭니다.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티 없이 자란 소녀는 그렇게 비구니로 인생행로를 그려나가게 됩니다. 딸의 삭발모습을 보며 슬퍼하던 그의 아버지는 아흔을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집안에 스님 1명 있다며 오히려 좋아합니다.

유달리 책을 좋아하는 그는 ‘독서상우’(讀書尙友)를 제대로 실천한 셈입니다. 책을 통해 최고로 멋진 벗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이름은 ‘붓다’(Buddha)입니다.



[박창원의 인(人) 41]
아홉 번째 연재 '비구니 선생님' 아용 ②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 정옥순 ▷'하회마을 뱃사공' 이창학 ▷'노동운동가' 장명숙 세실리아 ▷'장승쟁이' 김종흥
▷'고서 일생' 박창호' ▷'사주쟁이 기자' 우호성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  ▷'통일꾼 시인' 류근삼.

그리고, <박창원의 인(人)> 아홉 번째 연재, '비구니 선생님'으로 불리는 아용 스님의 이야기입니다.
아용 스님은 대학 다니던 20대에 양산 내원사로 출가해 20년째 대구 능인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비구니 선생님' 아용 스님과 인연 닿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292-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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