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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誠金)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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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KBS 국군장병 격려성금, 정부 북소리에 발맞춘 선동 아닌가"


  풀뿌리의 선의(善意)와 상호부조

  요즘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과 금액을 소개하는 방송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 명단들에는 고위공직자나 기업의 임원, 지역의 유지 같은 소위 ‘사회지도층’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도 결코 형편이 넉넉할 것 같지 않은 시민들이 더 많다. ‘경제’가 어렵고, 그래서 해가 갈수록 참여율과 액수가 떨어진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이런 보도를 볼 때마다 우리 사회에 선한 마음, 자비심을 가지고 사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러나 이런 ‘성금 모금’에 관련해 우리가 근본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문제는 있다고 생각한다. (미리 말해 두지만, 각종 성금 모금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웃들의 선의를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공적으로 벌이는 ‘성금 모금’ 캠페인들 중에는 국가(정부)의 의무와 책임을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민들은 각종 세금을 통해 국가의 예산을 충당하고, 국가는 그것으로 일상적인 복지행정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재해나 비상한 재난에 처한 사회구성원들을 성실히 돌보아야 할 의무를 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수재의연금이나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의 모금이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는 까닭은 우리가 이웃, 즉 공동체의 구성원들에 대한 책임과 연대를 오직 ‘국가기구’를 통해서만 표현하고 실현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예컨대 당장 눈앞에서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나서는 대신 112나 119에 ‘신고’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합리적’ 사고방식이 윤리적·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과 태도가 만연한다면 결국 시민사회의 활기와 연대의식은 약해지고, 오직 국가만이 사회적 관계를 독점함으로써 풀뿌리 공동체 위에 군림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성금 모금’과 같은 자발적인 선의의 표현과 참여는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풀뿌리 민중이 근대국가 이전부터 이미 생존과 자기조직화의 원리로 계승해온 상호부조의 전통과 문화를 재확인하면서,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삶의 영역이 엄연히 실재(實在)하고 있음을 묵묵히 증명하는 것이기도 한 셈이다.

  국가는 무엇 때문에 존재해야 하는가?

  이 점을 깊이 생각한다면, 과거 국가에 의해 공공연히 주도되거나 적극적으로 부추겨진 ‘방위성금 모금’이나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국민성금 모금’, 아이엠에프 환란 당시의 ‘금 모으기 캠페인’ 등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들이었는지 알 수 있다. 국가가 세금이 아닌 별도의 성금 모금을 통해 특정한 목적의 재원을 확보하려고 하는 행위는 그것 자체로 국가의 의무와 책임을 방기하고 시민들로부터 ‘삥’을 뜯는 파렴치한 행위이자, 국가의 ‘도덕적 해이’(‘국가’에 ‘도덕’을 기대하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미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같은 국가 주도의 대규모 성금 모금 캠페인은 사실상 재원(돈)의 확보보다는, 대부분이 그것을 통해 사회적 위기감(불안감)을 조성하거나 냉전 논리, 국가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를 확산하기 위한 불순한 프로파간다라는 데 더욱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특히 이러한 동원 캠페인에 두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시민들을 기만하고 오도했던 일부 언론들의 행태는 국가의 죄과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되어 집행되기 시작한 2011년도 국가예산은 가난한 아이들의 점심값과 경로당 난방에 쓰일 기름값, 장애인들의 활동보조인 예산 등 수많은 항목의 복지예산이 상당부분 잘려 나간 채 4대강 토건사업 따위에 엄청난 규모로 집중되는 식으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힘없는 풀뿌리 시민들이 텅 빈 주머니를 또다시 털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가 ‘국가의 역할’과 ‘성금의 정치학’에 대해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그러니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한 성금을 모아야 한다”고 호소해야 할까? 물론 우리는 인류가 오랫동안 그래왔듯이, 사회적 위기와 곤경이 심화될수록 우선 가까이에 있는 동료나 이웃과 더불어 힘과 지혜를 모으고, 마을과 같은 작은 단위에서부터 상호부조의 긴밀한 안전망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성금 모금’을 통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인 지원도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라야 그 의미가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아래로부터의 노력과 동시에 우리는 “그러면 도대체 국가라는 것은 무엇 때문에 존재해야 하는가?”라고 냉정하게 묻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국가가 혹시라도 그럴듯한 명목을 내세워 ‘삥’을 뜯겠다고 나선다면, 절대로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군장병 격려성금?

  지난 1월 14일 오전, 우연히 텔레비전으로 KBS 방송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국군장병 격려성금 모금’을 위한 특별 생방송! (이 생방송은 1월 21일 한 차례 더 방송되었다.) 혹한의 계절을 나고 있는 최전방 군부대 여러 곳을 생중계해 가며 시청자들에게 ‘격려성금’ 모금을 실시간으로 독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넘어 모욕감마저 느꼈다. 

지난 1월 14일 방송된 KBS 1TV <특별생방송-대한민국 국군, 우리가 응원합니다> 생방송
지난 1월 14일 방송된 KBS 1TV <특별생방송-대한민국 국군, 우리가 응원합니다> 생방송

  아무리 이명박 정부의 나팔수 역할로 전락해 버린 KBS라고 하더라도,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아니고 '국군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성금 모금' 생방송이라니! 이미 앞에서 이야기한 '성금의 정치학'에 비추어 본다면 소위 공영방송 KBS의 이러한 기획(김인규 사장의 지시에 따라 급조된 것이라고 한다)은 과거 '방위성금 모금'이나 '평화의 댐 건설 국민성금 모금' 같은 엉터리 짓의 재탕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는 국가기구의 일부이고, 그것을 유지하고 장병들을 '격려'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국가가 전담해야 할 의무라는 원칙론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번 모금의 목표액은 총20억 원인데 1월 19일 현재까지 ARS모금으로 약 3억 원이 모였다고 한다. KBS는 이 돈으로 장병들에게 '발열조끼'를 사 줄 거라고 한다.)

  그것보다 오히려 우리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은 이런 KBS의 '눈물겨운' 기획이 사실은 '성금' 자체보다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피폭 등 일련의 남북 군사적 충돌(물론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관련성은 아직도 입증되지 않았다) 이후,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험천만한 전쟁의 도박판에 판돈으로 걸고 있는 현 정부의 북소리에 발맞춘 노골적인 군사주의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난번 KBS의 '천안함 희생자 성금 모금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놓은 부모들의 심정이라고 다를까? 몇 해 있지 않으면 결국 군 입대 영장을 받게 될 자식을 둔 아비의 입장에서 본다면, KBS의 이번 성금 모금 캠페인은 군 복무중인 우리 자식들을 싸구려 군사주의 선동에 '앵벌이'로 내몰고 있는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이번 성금 모금 생방송에 패널로 출연한 국방연구 기관의 한 인사는 프로그램 말미에 한 마디 덧붙이면서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아들을 많이 낳아 달라. 그래야 (군대에 보낼 장정들이 많아져) 국방이 튼튼해진다"는 시대착오적인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것은 명백히 여성에 대한 비하 발언이자, 이 땅에 태어나는 고귀한 생명들을 '국방'을 위한 '자원'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반생명적, 전체주의적 발언이 아닌가. 대규모 성금 모금이 늘상 그렇듯 단순히 돈을 모으기 위한 행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변홍철 칼럼 1]
변홍철 /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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