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러 왔다가 봉사 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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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목욕봉사' <대건회>..."순수한 아이들, 우리가 더 감사하죠"

"○○아 좀 앉아라. 그래야 때가 불지"
"△△아 얼른 들어온나. 물 뜨시고 좋다"

목욕탕 안에서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원생들과 어떻게든 앉혀서 때를 불리려는 봉사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한 원생을 겨우 욕탕 안에 앉혀놓자 옆에서 다른 원생이 불쑥 일어났다. 한 명은 아예 욕탕 안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 원생이 손으로 봉사자에게 물을 뿌리자 이내 한바탕 물싸움이 벌어진다. 목욕탕에 가득 찬 김 만큼 웃음꽃도 활짝 피어났다.

매달 일심재활원에서 8년째 목욕봉사를 해온 대건회 회원들이 지하 목욕탕에서 원생들과 함께 때를 불리고 있다 (2011.03.20)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매달 일심재활원에서 8년째 목욕봉사를 해온 대건회 회원들이 지하 목욕탕에서 원생들과 함께 때를 불리고 있다 (2011.03.20)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3월 20일 대구 일심재활원에서 8년째 목욕봉사를 하고 있는 대구 신암성당 대건회 회원들을 만났다. 일요일 오후 대건회 회원 5명이 일심재활원 지하 목욕탕에서 원생들의 때를 밀어주고 있었다. 이날 대건회는 10대 초반부터 20대 후반의 중증장애인 9명의 목욕을 맡았다. 원생들이 혼자서 몸을 가누기도 힘든데다 몸부림을 칠 때도 있어 몸을 꼭 붙들고 씻겨야 한다. 1시간가량 목욕봉사를 마친 대건회 회원들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나눔과 섬김'을 목적으로 한 <대건회>는 대구 신암성당 30~40대 신자들의 모임이다. 또, <일심재활원>은 사회복지법인 성요한복지재단이 지적장애인들의 재활과 보호를 목적으로 1961년에 설립했으며, 현재 135명의 지적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다.

목욕 봉사..."우리에게 딱 맞는 활동"

대건회 회원들은 지난 2001년 말벗봉사를 시작으로 일심재활원과 인연을 맺은 뒤 2003년부터 목욕봉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특히, 10년 동안 꾸준히 봉사한 공로로 지난 해 11월에는 일심재활원에서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한 원생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는 대건회 김재민 부회장(오른쪽)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한 원생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는 대건회 김재민 부회장(오른쪽)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대건회 유재준(39) 회장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정기적인 봉사를 하자는 회원들의 의견에 대상을 찾던 중 당시 회장의 지인이었던 일심재활원 사회복지사의 권유로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김재민(42) 부회장은 "말벗봉사를 시작한지 2년쯤 지났을 무렵 한 사회복지사가 '정기적으로 목욕봉사를 해 줄 젊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부탁했다"며 "그때 처음 목욕봉사를 하게 됐는데, 당시 젊은 청년이었던 우리와 딱 맞는 봉사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이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모처럼 쉬는 날에도..."감사한 마음"

일심재활원 목욕봉사에 대한 회원들의 사랑은 남다르다.
서홍범(46) 회원은 격주로 쉬는 휴일을 목욕봉사로 보냈다. 서홍범 회원은 "매달 목욕봉사를 하는 게 솔직히 힘들고 귀찮을 때도 있지만, 봉사를 할 때마다 반겨주는 원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42살의 미혼인 박종진 회원은 애인과 데이트를 하던 중 목욕봉사를 위해 일심재활원을 찾았다고 한다. 박종진 회원은 "예전에 자폐증을 앓고 있던 한 원생의 등을 씻기던 중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얼떨결에 끌어안게 됐는데 순간 짠한 마음이 들었다"며 "결혼을 하지 않아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을 몰랐었는데, 그때 부모의 마음을 느끼게 돼 목욕봉사를 계속 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재준(왼쪽) 회장이 한 원생의 몸에 비누칠을 해주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유재준(왼쪽) 회장이 한 원생의 몸에 비누칠을 해주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그동안 목욕봉사를 해오며 겪은 에피소드도 있다.
목욕을 하던 중 한 원생이 욕탕에 대변을 보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재민 부회장은 "한 명이 대야로 대변을 퍼내고, 나머지 회원들도 봉사를 멈춘 뒤 부랴부랴 욕탕을 청소하느라 난리도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종진 회원은 "원생들과 함께 목욕을 하던 중 한 여교사가 탈의실에 들어와 깜작 놀랐는데, 정작 그 여교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원생들의 옷을 입힌 뒤 밖으로 나갔다"며 웃음을 지었다.

"마음도 깨끗해지는 느낌...뿌듯"

이들은 10년 동안 봉사활동을 해온 소회도 털어놨다.
유재준 회장은 "봉사하러 왔다가 오히려 봉사를 받고 간다"며 "마음이 순수한 원생들과 함께 목욕을 하다보면 마음도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 "처음에는 거부감도 조금 있었는데 봉사를 하다 보니 몸이 조금 불편할 뿐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김재민 부회장은 "10년 동안 봉사를 해 오면서 처음에 봤던 아이들이 점점 성장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며 "아이들이 점점 우리의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듣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유재규(36) 회원은 "경상도 남자들이 말로 표현을 잘 못하는데, 원생들과 목욕을 하다 보면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눈과 마음으로 교감하고 정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목욕봉사를 마친 뒤 일심재활원 앞 마당에서 활짝 웃고있는 대건회 회원들. 왼쪽부터 서홍범(46) 회원, 유재준(39) 회장, 박종진(42) 회원, 김재민(40) 부회장, 유재규(36) 회원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목욕봉사를 마친 뒤 일심재활원 앞 마당에서 활짝 웃고있는 대건회 회원들. 왼쪽부터 서홍범(46) 회원, 유재준(39) 회장, 박종진(42) 회원, 김재민(40) 부회장, 유재규(36) 회원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대구 일심재활원 김귀옥 사회복지사는 "한두 명의 선생님들이 10여명의 아이들을 주말마다 목욕시키는 게 힘들다"며 "매달 한번 씩 방문해 원생들을 깨끗이 씻겨줘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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