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3주년을 맞았지만 장애인 차별에 대한 지자체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시민들의 의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
장애인지역공동체와 대구DPI를 비롯한 대구지역 42개 단체로 구성된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는 11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에 56건의 장애인 차별 관련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이 제출한 진정서에는 문화예술체육 관련 차별이 2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 가운데 지난 10일 치러진 '2011대구국제마라톤대회'의 휠체어 장애인 참가거부에 따른 진정이 18건을 차지했다.
대구사람장애인자립자활센터 노금호 소장을 비롯한 휠체어 장애인 18명은 지난 2월 '2011 대구국제마라톤대회' 10Km 단축마라톤 참가신청을 했다. 당시 노 소장을 비롯한 장애인들은 대회를 주관한 대구시체육회에 두 차례 전화를 걸어 휠체어 사용에 관해 문의해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대회 10일 전 대구시체육회 담당자에게 마라톤 참가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고, 대회 3일 전 참가취소 협조 공문을 받았다. 휠체어와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를 비롯한 기구의 사용은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휠체어 장애인 참가 거부는 차별" vs "1만5천명 참가, 안전사고 우려"
이에 대해 노 소장은 "런던국제마라톤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에는 휠체어 장애인 부문을 따로 마련하고 있다"며 "단지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로 참가를 거부하는 것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특히, "시행 4년째를 맞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4조에는 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과 체육활동의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며 "장애인의 참여는 가능하나, 보장구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초래하는 간접 차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지역공동체 박명애 대표도 "국제규모의 마라톤대회를 보면 일반인들과 장애인들이 함께 달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며 "대구는 이번 대회를 통해 국제적인 차별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체육회 관계자는 "휠체어 부문이 없는 이번 대회에 1만5천명이 참가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섞이면 사고가 날 위험이 있어 신청취소 협조를 부탁했다"며 "단지 협조의 차원일 뿐, 무조건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휠체어 부문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다음 대회 때부터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자리 없어 안 된다"..."식당 손님 두 명 밖에 없는데, 씁쓸"
마라톤 대회가 끝난 뒤 장애인들은 식당에서 또 한 번 차별을 경험했다. 점심식사를 위해 인근 식당을 찾았으나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를 당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장애인들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진성서도 함께 제출했다. 장애인지역공동체 박명애 대표는 "실제 식당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이 단 두 사람 밖에 없었다"며 "결국 다른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했지만,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사회에 남아있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들이 낸 진정서에는 언어폭력과 괴롭힘, 지적장애를 이유로 한 화재보험 갱신 거부를 비롯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장애인학교 신설계획에 따른 주민반발에 대한 진정도 있었다.
최근 달서구 용산동 세방골 골프장 일대 부지에 특수학교 신설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지역주민들이 인근에 '이 땅에 장애인학교가 웬 말인가', '장애인학교 장애인도 원치 않는다'는 문구를 비롯한 장애인을 비하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설치했다. 이에 따라 장애아동 부모들이 심한 모멸감과 분노를 느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진정서 제출에 앞서 이들 단체는 국가인권위 대구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구시가 국제마라톤대회 휠체어 장애인 참가거부 사태를 비롯해 장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 의무조차 이행할 고민을 갖고 있지 않다"며 "장애인의 법적 권리를 온전히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3주년을 맞았지만 대구시와 공공기관의 장애인 인권과 감수성에 대한 고려가 아직 부족하다"며 "장애인 권리 보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진정서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3년 만에 장애인 차별 진정 500% 증가..."장애인차별 금지, 의식 높여야"
2010년도 국가인권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전인 2007년 256건에 불과하던 장애인차별 진정사건이 3년 뒤인 2010년에 1,558건으로 500%가량 증가해 관련 사례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특히, 2001년부터 2010년 10월까지 장애인차별 진정 3,507건 가운데 공공기관 차별은 1,861건, 민간부문 차별은 1,646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사람장애인자립자활센터 전근배 상임활동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차별에 대한 장애인들의 의식은 높아진 반면, 공공기관과 시민들의 의식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며 "공공기관과 시민 모두 장애인 차별 금지에 대한 의식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김범일 대구시장의 가면을 쓰고 '장애인 생존권 박탈'이라는 문구가 적힌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해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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