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고 있습니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힘든 선택으로 그 길에 들어선 순간 차마 되돌릴 수 없는 그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저도 한때 언니들과 비슷한 길을 걸었고 비슷한 상황 속에 죽음을 택한 적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사채고리와 업주들의 횡포 속에 더 이상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앞으로 더 살아가야 할 이유도 희망도 없는 삶. 그 악순환을 끊는 것이 죽음뿐이라는 사실이 원망스럽고 애통합니다." -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당사자네트워크 ‘뭉치’> 추모글 중
2011년 3월 24일 포항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성이 또다시 자살하였다. 이러한 죽음은 작년 2010년 7월 7일부터 10일까지 연달아 세 명의 여성이 목숨을 끊었던 그 순간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당시 <시사저널>은 1083호의 기사를 통해 이들의 죽음이 “업주와 종업원 사이의 터무니 없는 계약 때문”이고 “업소와 종업원의 계약은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는 것”이라며 이들이 고리사채를 쓰고 이를 갚지 못해 협박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은 포항 남구 시외버스터미널 뒤편 포항시 최대 유흥가 룸살롱 업소의 사채 없이 살아남기 힘든 영업구조에 있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찰과 검찰은 단순히 ‘사채’ 문제로 사건을 무마하고 말았고 유흥주점 관련 업주의 영업형태 등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후 2010년 10월에도, 2011년 1월에도 포항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이 죽음들은 단순히 신변비관에 의해 자살한 것으로 처리되어 그녀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어떠한 내용도 접할 수 없었다. 동일한 지역의 동일한 유형의 업종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그저 단순 자살사건으로 처리되어 그렇게 또 그 죽음들은 잊혀져 갔다.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을 멈추게 할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포항 유흥업소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 발족하다
3월 27일자 경북매일신문에 의하면 이번 자살살건의 경우 여성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겼고 경찰은 전담반을 꾸려 이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하였지만 바로 다음날 신문기사에는 이번 수사도 도마뱀 꼬리자르기와 같은 수사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기사가 실렸다. 이번에도 여성들의 연이은 죽음의 원인이된 유흥주점 업소들의 착취적인 영업형태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면 이 죽음의 온전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대구 경북권 뿐 아니라 전국의 62개 여성인권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모여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2011년 3월 30일 오전 11시 대책위원회의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어서 오후6시 포항시외버스터미널과 여성이 일하던 유흥업소 앞에서 추모제를 가졌다. 이 여성들의 죽음의 원인이 된 착취구조를 밝혀내고 이 구조자체를 없애야만 하기에 대책위원회의 명칭은 <포항 유흥업소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라고 명명하였고 포항여성회 윤경희 대표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미례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기자회견장에는 대책위원회 소속 단체의 대표와 활동가 20여명이 함께하여 발족선언문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당사자네트워크 ‘뭉치’>의 추모문이 낭독 되었고 ‘나는 살고싶다’는 제목의 퍼포먼스가 공연되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당사자네트워크 ‘뭉치’>는 전국11개 지역에서 탈성매매 이후 힘든 과정을 함께 나누고 지지하는 여성들이 모여 만든 자조모임으로 당사자운동을 위해 결성한 모임이다. 죽은 여성과 같은 유흥주점 티켓다방 집결지 등 성매매를 경험한 여성들의 가슴절절하고 애통한 마음들이 실린 추모문은 <여성인권티움> 손정아 대표가 대독하였다. 추모문을 읽어내려가는 내내 손정아 대표는 붉게 변한 눈시울과 떨리는 목소리로 슬픔을 가리지 못했다.
대책위원회는 발족선언문에서 여성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이제 우리에게 있다고 선언하며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경찰과 검찰에게 이번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진상을 밝힘과 동시에 관련자를 엄중히 처벌할 것을 촉구하고 나아가 포항지역 유흥업소에 대한 철저한 세무조사, 영업방식에 대한 조사 및 단속을 통해 성산업 착취고리를 밝혀내어 더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였다.
3월 30일 오후 6시에 열린 추모제는 1부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2부는 유흥업소 앞에서 진행되었다. 약 70여명이 참여한 추모제는 헌화와 추모시․추모문 낭독, 추모사 발언 등으로 이어졌다. 포항 민주노총 송무근 조직부장은 스스로를 성찰하며 이 죽음의 공범은 업주와 경찰 등 공권력이라고 발언하여 추모제를 함께한 대책위원회 소속 대표와 활동가들로부터 깊은 울림을 주었다. 추모제가 열린 현장 주변에는 유흥업소 관련자로 보이는 이들과 경찰, 포항시 공무원 등이 몰려 서로 다른 이유로 추모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포항 유흥업소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3월 31일 회의를 열어 ‘공동행동의 날’을 정해 포항시민들에게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고 긴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긴밀히 이용할 수 있도록 긴급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또 포항 유흥업소 일대 캠페인과 현장방문상담을 실시해 업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들에게 정보제공 등을 할 예정이다. 대책위원회는 어떻게 해도 이미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여성들의 억울함을 다 풀 수는 없으나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 지금도 죽은 여성들과 같은 고통 속에 놓여있을 또 다른 여성들을 위해 또 이 사회의 정의와 인권이 사살당하는 끔찍한 현실을 방관하여 또다시 죽음을 부른 것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함께 그 책임을 지기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대책위를 발족함과 동시에 더 이상의 여성들의 희생을 막아내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억울한 여성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지운 책임을 끝까지 지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자신․우리사회를 살길로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포항 유흥업소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 발족선언문 중 -
[기고] 신박진영 / 사)대구여성인권센터 대표
포항 유흥업소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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