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있던, '추모'조차 허락되지 않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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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순례단> 포항 / "유흥업주들의 폭력.위협...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2010년 9월 15일 오전 11시 포항시청 앞에 섰다. 대구여성회 인권센터와 부산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그리고 포항여성회의 활동가와 회원들 80여명이 포항시청앞의 너른 광장에 모였다. 맞추어입은 티셔츠와 펼침수건과 손수건에는 '2010 민들레순례단', '성착취 없는 세상, 희망! 상상! 행동!', '성착취구조해체를 위한 여성/인권 행동'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지나가는 차들은 때론 호의에서 때론 적의에 찬 눈빛을 보내고 사라진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행사인지 묻기에는 너무 일상이 바쁜 이들의 시간이기에 그 느낌에도 민감해진다.

군산 '성매매업소 화재참사'...

포항시청앞에서 '2010 민들레순례단 ; 성매매없는 세상을 향한 평화행동'이 있었다. 슬로건은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를 위한 여성/인권 행동"으로 이번 행사는 9월15일과 9월16일 양일간 전국에서 열리는 '민들례순례단'의 영남권행사이다.

민들레순례단은 2000년, 2002년  군산에서 있었던 성매매업소 화재로 돌아가신 여성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2006년 시작되어 올해가 5번째이다. 두 번에 걸쳐 일어난 군산성매매업소화재참사는 각각 5명과 13명의 여성이 성매매업소에 감금된 상황에서 화재가 발생해 죽은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성매매가 일상화된 '성산업'의 구조로 인해 여성들에 대한 인권착취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려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 시행되었고 이들 여성의 희생을 통해 제정된 이 법의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매년 민들레순례단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민들레순례단> 영남권 행사(2010.9.15 포항시청 앞)...대구여성회 인권센터 활동가들이 성산업 착취구조 안에서 괴로워하는 여성들을 표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사진. 대구여성회 인권센터
<민들레순례단> 영남권 행사(2010.9.15 포항시청 앞)...대구여성회 인권센터 활동가들이 성산업 착취구조 안에서 괴로워하는 여성들을 표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사진. 대구여성회 인권센터

포항, 3명의 죽음..."숨쉬는 것조차 힘들다"

'2010년 민들레순례단'이 포항에서 영남권행사를 하게된 이유는 2010년 7월 7일부터 10일까지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성 3명이 연달아 자살한 사건 때문이다. 유흥주점의 마담과 아가씨였던 이들의 죽음은 유흥주점에서의 먹이사슬이 어떻게 여성들의 삶을 유린하고 있는지를 다시한번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건은 단순히 사채업자의 횡포에 의한 것으로 정리되고 여성들의 '빚'만 부각되었다.

<경북일보> 2010년 7월 12일자 5면(사회)
<경북일보> 2010년 7월 12일자 5면(사회)

이 사건에 대해서는 시사저널 1083호에 기획기사로 자세한 내용이 실려있다. 그녀들이 남긴 마지막 글에는 "살고싶다"고, "숨쉬는 것조차 힘들다"고 쓰여 있었다. 무엇이 살고 싶은 그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우리는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다.

2000년과 2002년 군산화재참사로 '성산업'이 어떻게 여성들이 성매매를 통한 돈벌이의 도구로 사용되는지 세상에 알려진 이후로 '성매매방지법'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마련되었다. 포항의 그녀들이 죽은 이유도 이와 동일하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다. '법'은 단지 도구일 뿐이다. 법이 있어도 이 도구를 사용하는 우리가 변하지 않는 한 '법'은 제구실을 다할 수 없다. 이렇게 법을 무력화시키는 현장을 우리는 포항에서 다시 목격하게 되었다.

폭력.위협 '유흥업소' 업주들...막지 못한 경찰

포항지역 세 여성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2010 민들레순례단'의 영남권행사가 포항에서 열렸다.
행사는 1부 문화행사가 포항시청앞에서 오전11시부터 12시30분까지 있었고, 2부는 추모행진으로 자살한 세명의 여성이 일하던 유흥업소가 있는 포항시외버스터미널인근에서 오후 1시부터 진행되었다. 대낮의 유흥주점이 밀집된 지역안은 사람의 발길도 드물고 조용한 적막이 감돌았다.

하지만 두명의 여성이 일했던 유흥업소앞에서 추모의례를 진행하기 위해 행진을 멈추자 심한 욕설과 함께 굵은 소금을 뿌려대며 거칠게 순례단을 위협하기 시작하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집회신고를 한 평화로운 행사였고, 경찰도 함께 한 자리였지만 그들의 위협은 더욱 폭력적이 되었다.

포항 유흥업소 밀집지역 추모행진 중 추모순례단의 발 앞에 깔린 성매매알선 전단지... / 사진. 대구여성회 인권센터
포항 유흥업소 밀집지역 추모행진 중 추모순례단의 발 앞에 깔린 성매매알선 전단지... / 사진. 대구여성회 인권센터

순례단은 경찰에게 안전을 위해 이들을 제지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포항남부경찰서에서 나온 경찰들은 오히려 그들의 폭력적인 언행에 대해 소극적인 대처만을 일관했다. 순례단을 향해 맥주박스를 들고와 맥주병을 깨고 그 여성들이 있던 거리 안에 발조차 들일 수 없게 하였다. 경찰은 유흥주점 업주라는 이들이 벌이는 폭력적 언행을 막아내지 못했다. 업주들은 자신들이 내는 세금이 천만원이 넘는다고 과시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환한 대낮에 구호조차 없이 조용한 행진과 추모 묵념만을 하고자 했던 민들례순례단 70여명은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그저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선택, 그 순간의 아픔을...

경찰이 있지만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막나가는 행동으로 위협하는 이들을 보며 그곳에서 일하던 그 여성들이 살고싶다면서 왜 '죽음'밖에 선택할 수 없었는지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암에 걸렸어도, 피붙이처럼 기대고 살았던 이들이 죽었을 때도 쉬지않고 일해야했던 그녀들이 자살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했을 그 순간의 아픔을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있을까. 찰나지만 순례에 나선 70여명 모두의 가슴은 왜 우리가 지금 이 순례를 하고 있는가를 칼에 베히는 것처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15일 포항행사 후 대전에서 합류하여 16일 대전 유천동과 군산 개복동, 대명동에서 추모행사를 하였다.

대전 유천동 추모 행진(2010.9.16) / 사진. 대구여성회 인권센터
대전 유천동 추모 행진(2010.9.16) / 사진. 대구여성회 인권센터

대전 유천동도 2009년 대대적인 업소폐쇄를 당하기 전까지는 심각한 인권유린이 행해지던 곳이었다.
이 곳도 2008년 전국에서 모인 활동가가 인권유린을 규탄하기 위해 모였던 순간이 있었다. 당시 업주들은 손에 든 피켓을 잡아 땅바닥에 짓이기고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까지 동원해 행사를 방해하고 폭력적인 위협을 하였고 업소가 밀집된 지역은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전중부경찰서로 옮긴 활동가들을 따라서 그 앞까지 온 업주들의 위협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대전의 상황은 이제 완전히 변화되었다. 당시의 상황을 기회로 경찰은 이러한 업소들에 대한 강력한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업소들을 폐쇄하였고 이제 그 거리는 이러한 시간들을 흔적으로만 남기고 있다.

군산 개복동 추모행사(2010.9.16) / 사진. 대구여성회 인권센터
군산 개복동 추모행사(2010.9.16) / 사진. 대구여성회 인권센터

16일 군산 임피승화원에서 화재참사로 목숨을 잃었던 여성들 중 무연고자였던 두명의 언니들의 납골묘를 참배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다시 포항의 세분 언니들을 떠올렸다. 군산에서 유천동에서 자신들의 죽음과 삶을 통해 우리를 각성하게 해주고 사회를 변화시켰던 그녀들이 있기에, 그녀들을 기억하는 우리라는 연대의 힘, 공동체의 힘이 있기에 지금 이 현실도 변화할 수 밖에 없음을 나는 우리는 안다. 지금은 '추모'조차 할 수 없는 공간이지만, 결코 그녀들의 죽음이 그 공간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을 것임을.






[기고]
신박진영 / 대구여성회 인권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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