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돈 돈대문을 열어라. 남 남 남 얘기가 아니지. 2012년 되면은 문을 닫을게. 쫌!"
'질라라비 장애인야간학교' 김수미 교사의 선창에 맞춰 대구시청 앞에 모인 장애인들이 '대문놀이' 동요를 개사한 노래를 따라 부르며 대구백화점 앞 민주광장으로 향했다. '동대문'을 '돈대문'으로, '남대문'을 '남 얘기'로, '12시'를 '2012년'으로 개사했다. 이 짧은 노래 가사에는 장애인 생존권 보장과 차별 철폐를 위해 대구시가 관심을 갖고 정책과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또, 다가오는 2012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장애인 삶의 질 개선에 노력하지 않을 경우 '표심'으로 심판하겠다는 경고의 메세지도 함께 담겨있다.
1년에 단 하루뿐인 '장애인의 날' 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장애인들은 대구시청 앞에 모여 마이크를 잡았다. 2006년부터 매년 이곳에서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바꿔 부르며 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외쳤지만, 실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갈 길이 아직 멀기 때문이다.
대구지역 42개 단체로 구성된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는 4월 20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집회를 갖고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치부해 온 기존 '장애인의 날'을 거부한다"며 "6대 생존권 요구안을 적극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집회는 대구지역 장애인들과 장애인 가족, 시민사회단체 회원, 정당인을 비롯해 200여명이 참석해 2시간가량 진행됐다.
이들이 촉구한 '6대 생존권 요구안'에는 ▶장애인의 사회적 추가비용 보전 및 소득보장을 위한 조례 제정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주거권 보장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생활권 보장 ▶활동지원서비스 지원 확대 ▶발달장애인 권리보장과 지원체계 마련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비롯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지난 6.2지방선거 당시 김범일 대구시장이 약속한 ▶중증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조례 제정 ▶발달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확대와 위기상황관리체계 구축 ▶자립생활 체험홈을 비롯한 중증장애인 주거서비스 지원 공약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대구DPI 육성완 대표는 "동남권신공항이 백지화 됐을 때 마치 대구시 전체가 죽은 것처럼 울상을 짓던 김범일 대구시장이 정작 자신의 공약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대통령도 공약을 지켜야 하지만 대구시장도 공약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정책 뒤통수 치는 대구시...'2011육상대회' 전 까지 협상 끝내야"
대구사람장애인자립자활센터 노금호 소장은 "지난해 22일 동안 대구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여 김범일 대구시장에게 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위한 공약을 약속받았다"며 "그러나 반 년가량 이어진 대구시와의 협상을 통해 예산 편성을 약속받았지만, 결국 대구시가 일방적으로 전액 삭감했다"고 말했다.
장애인지역공동체 박명애 대표는 "장애인들이 대구시에 정책을 요구할 때 마다 앞에서는 다 받아줄 것처럼 이야기 해 놓고서는 뒤통수를 친다"며 "이번 '6대 생존권 요구안'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대회가 끝나면 입 닦고 없었던 일로 만들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협상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특히,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단기보호소 설치와 중증장애인 자립생활권 보장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단기보호시설은 상황판단력이 부족한 발달장애인들이 길을 잃거나 위급상황에 처했을 때 잠시 보호하고, 가족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시설이다.
"단기보호소, 꼭 필요한 시설...딱 2군데만 설치해줬으면"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홍혜주 회장은 "단기보호소 마련을 3년 전부터 수차례 요구했지만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며 "예산의 문제가 아닌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지역에 100여 곳이 넘는 지역아동센터 가운데 발달장애아동이 갈 수 있는 곳은 단 1군데도 없다"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곳만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정박상문 사무국장은 "대한민국 전체 장애인 가운데 발달장애인은 7%에 불과하지만, 시설입소 장애인의 63%를 차지하고 있다"며 "발달장애아동 뿐만 아니라 성인기에 접어든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강조했다.
중증장애인 자립생활권 보장에 대한 요구도 이어졌다.
노금호 소장은 "대구지역 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53%의 장애인들이 자립을 원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이들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이 없어 시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생존권 보장에 이의 제기할 사람 없다"
민주노총 박배일 대구본부장은 "노동력이 없는 장애인들에게 주거권과 이동권을 비롯한 생존권을 보장해 준다고 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며 "진정 대구시가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광역시 복지정책관실 재활복지계 관계자는 "김범일 대구시장이 취임한 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다"며 "공약을 임기 안에 실천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6대 생존권 요구안 수용을 위해 지난 19일 장애인단체들과 첫 실무협의를 갖고 서로의 입장을 확인했다"며 "향후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 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참석자들은 대구시청 앞을 시작으로 공평네거리를 거쳐 대구백화점 앞 민주광장까지 40여분간 행진을 갖고, 시민들에게 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위한 '6대 요구안'의 내용을 알린 뒤 집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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