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자녀 여권발급, 브로커 개입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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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선교센터 "브로커가 어떻게 위임 출국을" / 대사관 "브로커 개입될 수 없다"

 

지난 2000년 6월 베트남에서 한국에 들어온 홍(31.여.달서구)씨는 같은 고향 출신 남성과 2003년 결혼한 뒤 같은 해 아들을 낳았다. 맞벌이 때문에 양육에 어려움을 느낀 홍씨는 2004년 브로커를 통해 첫째 아들을 베트남 시댁에 보냈다. 홍씨는 지난해 9월 태어난 둘째 아들도 같은 방법으로 베트남에 보내려다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다.

지난 4월 12일부터 26일까지 4차례에 걸쳐 같은 베트남 출신 브로커 리(여.신원미상)씨에게 700여만원을 보냈지만, 리씨는 30일 "걱정하지 말라. 5월에 아기를 베트남으로 보낼 수 있다"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보낸 뒤 연락을 끊었다.

그 동안 모은 300만원과 친구들에게 빌린 400만원을 포함해 700만원을 한 순간에 잃게 된 홍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둘째 아들의 양육을 위해 지난 해 9월부터 일을 그만둔 데다 남편마저 6년가량 앓아온 무릎 관절염이 악화돼 지난 1월 일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남편을 대신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둘째 아들의 양육 때문에 당장 일을 할 수 없는 홍씨는 생계가 막막해졌다.

베트남 이주노동자 홍(31.여)씨가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에서 아기를 안고 있다 (2011.05.11)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베트남 이주노동자 홍(31.여)씨가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에서 아기를 안고 있다 (2011.05.11)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홍씨가 브로커를 통해 둘째 아들을 베트남으로 보내려 한 까닭은, 베트남 출신 미등록이주노동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만 베트남에 보내는 위임 출국을 주한베트남대사관이 2년 전부터 전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대사관이 위임 출국을 금지한 이유는, 베트남 여성과 한국 남성 사이에서 낳은 아기를 몰래 베트남으로 보내 문제가 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례가 있기 전까지는 위임 출국이 가능했다.

이 같은 베트남 대사관의 조치로 양육의 어려움 때문에 아기를 베트남으로 보내려는 부모들의 심정을 이용한 브로커들이 생겨났다. 홍씨는 수원에 살고 있는 고향 친구가 브로커 리씨에게 750만원을 주고 지난해 아기를 베트남에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리씨에게 연락한 뒤 돈을 지불했다.

브로커 통한 여권 발급, 실제 사례도...어떻게?

대구이주민선교센터는 이 사건과 관련해 11일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브로커 리씨가 그동안 어떻게 아기의 여권만 따로 만들어 위임 출국을 시켰는지 의문"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위임 출국을 금지하고 있는 베트남대사관이 그동안 어떤 경로로 아기의 여권만 따로 만들어줬는지 의문"이라며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브로커 간의 연계 의혹도 함께 제기했다.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 박순종 목사가 외국인근로자 여성들과 '자녀 여권발급' 문제와 관련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1.05.11)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 박순종 목사가 외국인근로자 여성들과 '자녀 여권발급' 문제와 관련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1.05.11)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실제 브로커를 통해 여권을 발급받았다는 한 베트남 여성의 사례도 있었다. 13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A(32.여.달성군)씨는 아기와 함께 베트남에 돌아가기 위해 지난 4월 3일부터 4차례 주한베트남대사관을 찾았지만, 서류 부족을 이유로 번번이 여권발급을 거부당했다. 그런데 같은 달 25일 친구에게 소개받은 브로커에게 100만원을 건네자 5일 뒤 여권이 발급됐다. 기존에 준비한 아기의 출생증명서와 유전자검사확인서 외에 추가된 서류는 없었으며, 단지 주한베트남대사관에 여권발급을 위한 수수료로 65만원만 지불했을 뿐이었다.

대구외국인근로자선교센터 박순종 목사는 "중국과 스리랑카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아기의 여권만 따로 만들어 출국을 시켜주고 있다"며 "유독 베트남만 아기 여권을 만들어주지 않고 있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피해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출생증명서와 유전자검사확인서를 못 믿겠다며 아기의 여권발급을 거부하던 대사관이 브로커에게 돈을 지불한 사람들에게는 여권을 만들어주고 있다"며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브로커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강하게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정상적인 통로를 만들어 더 이상 자국민들이 피해를 겪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사관 "브로커 개입 없다"

이에 대해 주한베트남대사관은 브로커 개입설을 전면 부인했다.
주한베트남대사관 하이 영사는 '브로커 개입설'에 대해 "서류 준비는 대행업자에게 맡길 수 있지만 여권 발급을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서류를 들고 와야 한다"며 "브로커가 개입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여권 발급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권 발급을 위해 대사관을 찾을 경우 상담내용을 기록하고 필요한 서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뒤 본인의 서명을 받고 있다"며 "대부분 처음 방문할 때부터 가족관계와 비자 종류를 비롯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설명하지 않아, 추가 서류 제출을 위해 다시 대사관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위임 출국'과 관련해서는 "예전에는 이주노동자 부모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위임 출국을 허용했지만, 베트남 여성과 한국인 남성 사이에 태어난 아기를 몰래 베트남으로 보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사례가 있었다"며 "2년 전부터 위임 출국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의 여권발급을 위해서는 출생신고가 중요하다"며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을 경우 병원의 출생증명서와 유전자확인증명서를 발급해 오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이주민선교센터는 홍씨의 사건을 9일 대구 중부경찰서 외사계에 신고했다. 이어 오는 13일 베트남 여성신문사 '푸누'에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브로커 간의 연계 의혹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고, 17일 주한베트남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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