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어온 지 불과 9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 이주노동자 G(41)씨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시민사회단체가 경찰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와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16일 오전 대구 성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인의 유서에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시키기는커녕 정신이상자로 몰아세우고, 강제적으로 사업장을 이동시키려하는 회사의 음모에 대해 진실을 밝혀달라'고 적혀있었다"며 "G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과 진실을 철저히 규명할 것"을 요구했다.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 안복남 집행위원장은 "고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티켓까지 예약해 놓은 G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는 분명 억울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며 "유서를 공개해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서 "나는 결백하다. 미치지 않았다. 진실 밝혀 달라"
9개월여 동안 성서공단의 한 이불솜 제조업체에서 근무해온 G(41.네팔)씨는 지난 12일 저녁 9시쯤 달서구 이곡동에 위치한 동료의 집 화장실에서 문고리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발견 2~3시간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G씨가 입고 있던 셔츠 주머니 안에서 영어로 적힌 유서 1장과 네팔어로 된 유서 2장이 발견됐다. 민주노총 측이 입수한 영어 유서 1장에는 "나는 결백하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회사가 나에게 서명을 받았다. 사업장을 변경하기 위한 종이라고 해서 서명을 했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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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G씨는 두 자녀를 둔 가장으로 지난 2010년 9월 고용허가제로 입국했다. G씨는 한국에 오기 전 고향에서 교사로 근무했으며, 14일자 네팔 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8일 회사에 자필로 된 사직서를 제출하고 10일쯤 기숙사에서 나온 뒤 구직활동을 벌여왔다고 민주노총은 밝혔다.
"영어 유서만으로는 부족, 네팔어 유서 공개해야"
그러나 영어로 된 유서만으로는 G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원인이 명확치 않아 네팔어로 된 유서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한다는 게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특히, 숨진 G씨가 회사에서 부당대우와 사직을 강요받았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했다.
안복남 집행위원장은 "숨진 G씨가 지난 3월부터 '힘들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회사가 나를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말을 했다는 네팔 동료들의 진술을 받았다"며 "네팔어로 된 유서를 통해 정확한 사망 경위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측이 한글을 잘 모르는 G씨에게 사직서 견본을 보여준 뒤 그대로 따라 적게 한 것으로 보인다"며 "영문 유서에도 '사업장을 변경하기 위한 종이라고 해서 서명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만큼 부당해고에 대한 조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에 이어 대구 성서경찰서 최준영 수사과장을 만나 유가족에게 받은 위임장을 제출한 뒤 '네팔어 유서 2장 공개'와 '사측의 부당대우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경찰 "수사기록 미공개 원칙, 대사관 공문 또는 유족 오면 공개"
성서경찰서 최준영 수사과장은 "유서도 수사기록의 일부인 관계로 공개할 수 없다"며 "유가족이 직접 경찰서를 방문하거나 주한 네팔대사관이 위임장의 진위여부를 가린 뒤 공문을 통해 요청하면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네팔어로 된 유서에는 '아들과 딸을 잘 부탁한다. 오해받은 것 같다'는 내용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피해사례는 적혀있지 않았다"며 "사측의 범법행위에 대한 정황을 포착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고 밝혔다. 부당해고 의혹에 대해 최준영 수사과장은 "경찰은 변사사건에 대해서만 조사하게 돼 있다"며 "사측의 부당대우와 해고에 관한 내용은 고용노동청에서 조사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한편, 숨진 G씨의 시신은 현재 성서병원에 안치돼 있으며, 네팔에 있는 유가족들은 현재 한국 입국 절차를 밝고 있다.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와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유가족들이 입국한 뒤 빈소 설치를 비롯한 장례절차를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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