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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불행한가'를 읽고
[김민남 칼럼] '거고정신', 왜 그들만 그런 자부심을 말할까?
2011년 06월 27일 (월) 00:01:35 평화뉴스 pnnews@pn.or.kr

국가의 비도덕과 힘겨운 싸움을 하며 오늘에 이른 거창고등학교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며 그 싸움이야기 보다 그렇게 싸울 수 있는 밑으로부터의 힘을 읽어보려고 했다. 이렇게 읽었다;
 
(공)교육의 전형적 사례이다. 거창학교는 전형적 교육기관일 뿐이다. 유별나지 않다. 유별나다고 스스로를 구별하는 짓을 하며 그 입으로 (공)교육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야만이다.

내부의 관료화와 싸운다. 그 결과 학교를 ‘학습형’ 사회(체득의 장)가 되게 하는 프로그램, 내면을 되새기는 한가함과 공동체 관계를 시험하는 집단놀이로 구성된 사회발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것을 두고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하다. 직업선택 십계명에 들어 있는 한가함은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신뢰와 기대(공동체 관계)는 말이 아니라 직접 사는 것이라고 웅변한다. 삶(세상)을 산다는 것은 내면을 살피고 관계를 조율한다는 것이다. 이 땅의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하기를 소망한다. 학교를 넘어 우리사회가 학습형으로 진전되기를 소망한다.
 
   
▲ 전성은 씀. 메디치미디어 펴냄. 2011.5
다만 거창학교의 그들은 그것이 끝내 이루어진다고 ‘고집한다’. 그것이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그 특별함으로 그들은 논의 공동체, 그들은 비로소 교직이 되었다. 그 교직이 아이들을 지도한다. 가르침은 배움을 자극하고 배움을 확대하여 자아의 길을 안내한다.

아이들과 교사는 자아의 발견이라는 이상을 향한 열정으로 한 식구가 되었다. 이상을 향한 열정이 관료화를 막는다.  가르쳐서 성적을 내고 행실을 고칠 수 있다는 교육론이 교육사에 기록될 리 없으며, 잠시 전체주의 국가의 우격다짐일 수는 있다.

어떻게 가능한가. 교육적 구상을 현실화하는 학교체제를 구축하면 된다. 교사가 학교라는 안전망에서 얻은 경망한 상투적 언어로 교육과 아이들을 규정하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빛나게 말하는 힘은 어디서 오나.
아이를 왕으로 섬긴다는 신념, 진실을 지키는 신념, 진실은 신념에 의존한다.
아이들에게 내면을 살피는 한가함을 주고 관계를 구성하는 집단놀이를 준다. 이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신앙 같은 강한 신념을 단련한다. 있어야 하는 것은 끝내 있고야 만다는 신념, 그것을 영접하기 위해 낫과 괭이를 든다는 신념, 이 실재론자적 자세로 영원과 역사를 잇는다.

학교 밖의 폭력(국가)과 학교안의 폭력(관료화)과의 싸움, 유쾌한 싸움을 한다. 빛나는 말을 얻었다. 빛나는 말이 사라져가는 시대, 그 반짝반짝 빛나는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있다. 그 복은 행운이 아니고 대가이다. 민주주의 제도를 뿌리내린 대가.

국가가 채택한 민주주의 교육제도의 규칙을 어김없이 준수한다. 규칙을 단지 따르지 않고 규칙을 실제로 ‘산다’. 규칙이 규범이 되고 품격이 된다. 민주주의 제도가 뿌리내린다. 제도를 구축하여 제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어떤 뒤쳐진 아이도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신뢰를 보내는 일상을 살 수 있는 능력과 태도(희망)를 쌓는다. 제도의 안락함, 아름다움을 체득한 사람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인적 자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모든 학교(교사)는 그렇게 하려고 애쓴다. 좌절하지만 그렇게 한다. 한편 그들은 국가의 비도덕 보다 내부의 관료화 덫에 걸려 좌초한다.

거창학교는 이 땅의 다른 학교(교사)들과 같이 있다. 아주 가까이 있다. 거창학교는 공교육의 소통context이다. 공교육을 살린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외고, 특목고, 자율고, 혁신학교, 핀란드를 대안으로 내놓는다. 불통 거리들을 내놓고 소통하자고 한다.

역사의 수난을 겪으며 국가(민족)도 학부모도 심지어 교사도 ‘인물’ 교육에 목을 맸다. 조급했다. 그 습벽이 대다수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안기는 잘못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어쩌면 알면서 당한 역사의 수난일지도 모른다. 이제 제 길을 걸으면 된다.

거창학교가 정신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정신은 어떤 것일까? 정신은 세계와 연관하는 방식이라고 하자. 어떤 방식일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상, 그 소망 때문에 편치 않는 마음. 배움이 사라진 척박한 마음에 대한 불안감. 그렇다면 그 정신은 더욱 유별나지 않다. 조금 잘 살려고 하면 모두 그렇게 된다. 그런데 왜 그들만 정신이라고 할까?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거고정신’을 말한다.  

‘이것이요’ 라고 단정하면 이미 그것은 정신이 아니다. ‘그게 뭐꼬’ 모이기만 하면 서로 묻는 것, 내심의 갈등을 자아내는 것, 이런 형태로 감지되는 정신이겠지. 좀 여유를 부린다 싶으면 한켠에서 미안한 마음이 생기고, 좀 어려워도 가난은 ‘내가 선택한거야' 라며 배짱부리고, 그런 것이 그들 간에 이심전심 되어 거고정신이라는 화려한 말을 만들었겠지. 그런 정도의 정신이라면 조금도 유별스럽지 않다. 그런데 왜 그들만 그런 자부심을 들어내 말하는지, 그것에 대해 생각하자. 3년의 학교 삶이 어떠했기에 그런지.

구별짓기, 그 야만이 고개를 들까봐 경계하는 전성은 선생은, 배움이 되는 거창학교의 가르침, 요컨대 ‘거창교육’은 전설이 되어 이야기로 전승되겠지만 ‘거창학교’는 언제가 문을 닫게 되리라고 미리 걱정한다. 교육을 위해 학교를 죽여야 한다는 말과 함께.
 
전성은 선생은 늘 묻는다. 교육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가르칠 수 없다. 가르치는 것에 한정하여 말한다면 교육의 한계는 명백하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과학적 지식에 한정될 지도 모른다. ‘잘’ 가르치면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능가하는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은가. 학습의 학습을 가능케 하는 교수가성립한다면 과학 말고 용서의 세계도 교육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교육학의 탐구 주제이다.


   





[김민남 칼럼 21]
김민남 / 교육학자.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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