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주민참여예산조례', 허무한 가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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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의회> 의원 20명 중 17명 발의, 상임위 대폭 수정..."유명무실"

 

행정안전부의 '표준조례안'보다 강화된 수준으로 발의된 대구 북구 '주민참여예산 조례'를 해당 상임위가 핵심조항을 수정, 삭제한 뒤 의결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구 북구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지난 9월 19일 열린 제187회 임시회 상임위에서 의원 17명이 공동 발의한 '주민참여예산 조례'를 수정한 뒤 의결했다. 앞서 북구의회는 지난 5월 열린 제185회 임시회 상임위에서 이종화 북구청장이 발의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안'을 부결시켰다. 핵심조항이 모두 임의조항으로 규정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제183회 북구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2011.02.16)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제183회 북구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2011.02.16)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그 뒤 지난 6월 7일 8개 구.군 가운데 처음으로 '지방자치연구모임'을 구성하고 3개월 가량 연구와 토론, 주민공청회를 거친 뒤 행안부의 '표준조례안'보다 강화된 수준의 '주민참여예산 조례'를 공동 발의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행자위가 집행부의 검토의견을 토대로 '주민참여예산 조례'를 수정, 의결하는 바람에 연구모임 활동기간 3개월을 포함해 대략 반년 가량 공을 들인 북구의회 의원들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행자위 소속 의원은 모두 7명으로 전원 한나라당 소속이며, 이 가운데 5명이 조례 발의에 참여했다.

핵심내용 '주민위원회' 인원 절반 축소, '참여예산추진단' 삭제

집행부의 검토의견에 따라 행자위가 수정한 조례안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당초 60명으로 계획된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구성 인원을 절반인 30명으로 줄이고, 예산관련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회원, 구의원, 관련 공무원으로 구성된 '주민참여예산추진단' 운영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의원들이 발의한 기존 조례안에는 ▶예산편성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위해 성별, 연령별, 계층별, 대표성을 고려해 60여명으로 구성된 '주민참여예산위원회'와 ▶예산편성과 관련된 사항을 심의, 조정하기 위해 구청장, 주민위원회 위원장, 공무원을 비롯한 11명으로 구성된 '참여예산조정위원회', ▶주민참여예산제의 원활한 운영과 교육을 위해 예산 관련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회원, 구의원, 공무원으로 구성된 '주민참여예산추진단'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례의 실행 방안에 있어 업무 전문성 부족과 의사소통 어려움, 법정업무 수행 차질을 비롯한 행정효율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구성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주민참여예산추진단'을 '참여예산조정위원회'와 통합해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집행부의 검토의견이다. 이 같은 집행부의 검토의견에 따라 행자위는 당초 조례안을 수정해 의결했다.

"집행부 의견대로 수정, 의결 뒤 시행 과정에서 보완할 것"

행정자치위원회 소속이자 연구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북구의회 이동욱(한나라당) 의원은 "원안 그대로 통과되도록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며 "의원들 대부분 구청장이 발의한 조례안을 부결시킨 뒤 조항을 강화해 다시 발의한 만큼 집행부의 의견대로 수정, 의결한 뒤 시행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고쳐나가자는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행정자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경애(한나라당) 의원은 "법을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일단 집행부의 의견대로 수정해 통과시킨 뒤 시행하면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 수정, 보완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20명 중 17명이 동의한 조례 행자위가 훼손...유명무실한 조례 될 것"

그러나 일부 북구의회 의원들은 핵심조항인 '주민참여예산위원회'와 '주민참여예산추진단' 내용이 수정되면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없는 유명무실한 조항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났다. 특히, 전체 의원 20명 가운데 17명이 동의해 공동 발의한 조례를 상임위에서 수정, 의결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북구의회 이동욱(한나라당) 의원, 이경애(한나라당) 의원, 유병철(무소속) 의원, 이영재(민주노동당) 의원 / 사진. 북구의회 홈페이지
(왼쪽부터) 북구의회 이동욱(한나라당) 의원, 이경애(한나라당) 의원, 유병철(무소속) 의원, 이영재(민주노동당) 의원 / 사진. 북구의회 홈페이지

연구모임의 간사를 맡고 있는 북구의회 유병철(무소속) 의원은 "주민위원회의 구성인원 수가 기존 60명의 절반인 30명으로 줄게 되면 현재 북구 관내 23개 동에서 각각 1명씩만 참여하게 되는 꼴"이라며 "그렇게 되면 주민들이 예산편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폭이 줄게 돼 당초 '주민참여예산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기존 공무원이 예산편성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민관이 서로 협력해 기획, 실행하고 피드백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수정, 보완해 나가는 것이 '주민참여예산제'의 주된 목적"이라며 "이를 위해 예산 관련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회원, 구의원, 관련 공무원으로 구성된 '주민참여예산추진단'을 없애게 되면 결국 유명무실한 조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북구의회 이영재(민주노동당) 의원도 "의원 20명 가운데 17명이 동의한 조례안을 행자위가 훼손시켰다"며 "핵심내용이 축소되거나 삭제돼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조례안이 돼 버렸다"고 비난했다.

"수정됐어도 타 지자체보다 한 발 앞서는 수준의 조례"

이에 대해 이경애 의원은 "주민들의 의견 수렴에 중요한 '주민위원회'의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 아쉬운 면이 있다"며 "그러나 '참여예산추진단'의 경우 역할을 '조정위원회'에서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집행부의 의견대로 조항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례가 수정됐다고 해도 대구지역 지자체 가운데 '주민위원회'와 '조정위원회'가 포함된 조례는 북구 밖에 없다"며 "다른 지자체보다 한 발 앞서는 수준의 조례"라고 말했다.

이동욱 의원도 "주민위원회의 경우 각 동마다 1명씩 채워진 뒤 나머지는 전문가들로 구성될 예정"이라며 "주민들과 전문가들로 그룹으로 조직이 구성되면 예산편성 과정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추진단의 경우 다른 구에서도 만들어지지 않은 조직"이라며 "그래도 일단 한시적으로 추진단을 운영한 다음 결정하자는 의견을 냈는데 결국 집행부의 의견대로 추진단의 역할을 조정위원회가 맡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행정자치위원회의 '주민참여예산 조례' 수정, 의결에 대해 북구의회 주민생활위원회 부위원장과 간사를 맡고 있는 이영재 의원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 눈에 띈다.  

"지난 3개월 동안 수십 차례의 토론과 만남. 토론 끝에 20명 의원 중에 17명의 의원이 발의한 주민참여예산조례안이 전원이 한나라당으로 구성된 상임위에서 넘 많은 부분이 훼손된 가운데 통과됐다. 열 받는다. 의회주의를 무참히 짓밟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분노가 필요하다. 분노가."

북구 '주민참여예산 조례'가 해당 상임위인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수정, 의결된 뒤 북구의회 이영재(민주노동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 / 자료. 이영재 의원 페이스북
북구 '주민참여예산 조례'가 해당 상임위인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수정, 의결된 뒤 북구의회 이영재(민주노동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 / 자료. 이영재 의원 페이스북

한편, 행자위에서 의결된 북구 '주민참여예산 조례'는 오는 22일 제187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통과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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