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포퓰리즘'이 아닌 필생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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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강연 / "한국 '토건+복지기피' 기묘한 조합...북유럽 모델 따라야"

 

"한국에 포퓰리즘이 있다면 '토건 포퓰리즘'이 있을 뿐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이 같이 말하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복지국가로 가는 것이 우리가 사는 필생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우 교수는 "한국은 이웃나라 일본의 '토건국가' 모델과 미국의 '복지기피국가' 모델이 합쳐진 '토건+복지기피국가'의 기묘한 조합이 이뤄진 나라"라며 "복지국가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과 교수의 강연이 '토건국가냐, 복지국가냐'라는 주제로 대구대학교 대명동캠퍼스 대강당에서 시민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가량 진행됐다 (2011.11.03)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경제통상학과 교수의 강연이 '토건국가냐, 복지국가냐'라는 주제로 대구대학교 대명동캠퍼스 대강당에서 시민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가량 진행됐다 (2011.11.03)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11월 3일 저녁 이정우 교수의 강연이 대구대학교 대명동캠퍼스 대강당에서 열렸다. '토건국가냐, 복지국가냐'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은 <우리복지시민연합>을 비롯한 11개 단체가 주최한 '제3차 대안사회복지학교'의 네 번째 순서로, 시민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가량 진행됐다. 당초 이날 강연은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의 순서였으나, 국회의 '한미FTA' 비준안 처리 문제로 마지막 강좌로 계획됐던 이정우 교수의 강연이 앞당겨지게 됐다.

이정우 교수는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그리스와 스페인의 재정건전성 문제를 예로 들며 '복지 포퓰리즘 때문에 위기가 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지금 재정건전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그리스와 스페인을 비롯한 국가들은 유럽에서도 가장 복지에 게을리 한 나라"라고 설명했다. 이어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핀란드나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은 복지와 분배, 성장, 고용, 금융안정성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성적이 가장 좋다"며 "우리가 따라야 할 모델은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땅값, 물가 올려 고성장 이룬 박정희, 후대에 큰 부담"

이정우 교수
이정우 교수
이정우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성장 신화'의 허구와 일본 '토건국가 모델'의 실패, 미국의 '자유시장경제 모델'의 문제점을 설명하며 북유럽 '사민주의'식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도입한 '관치경제발전국가' 모델의 원조는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일본의 도조 히데끼였다"며 "이 세 나라 모두 고성장을 이뤘지만 기껏해야 20~30년 정도였을 뿐 '독재' 때문에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에서 일본군 소위로 근무할 당시 도조 히데끼와 기시 노부스께가 만주국에서 펼친 '통제경제' 실험이 굉장한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고 한참 뒤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고 한국에 도입해 고성장을 이뤘다"며 "그러나 이 같은 고성장은 '통제경제'에서 나타나는 특징일 뿐 결국 '독재' 때문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정우 교수는 또 "박정희 정권의 '관치경제발전국가' 모델의 문제는 역대 정권 중 땅값과 물가를 가장 많이 올린 것"이라며 "난개발을 통해 땅값과 물가를 올리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뤘지만 그 결과 후대에 큰 부담을 남겼다"고 비판했다. 이어 "수출주도형 국가인 한국의 경우 땅값과 물가가 오르면 그 만큼 먹고 살기 힘들 수밖에 없다"며 "비싼 땅값과 물가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간 우리를 괴롭힐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정권의 경우 실적은 덜 올렸지만 후대에 부담은 주지 않았다"며 "눈 감고 '성장률'만 보는 1차원적인 국민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정우 교수는 또 "박정희 정권 시절 일본의 '토건국가 모델'을 따라하고, 반세기 동안 미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두 나라 경제의 나쁜 점만 고스란히 가져왔다"며 "복지를 극도로 기피하는 두 나라의 경제를 본받으면서 재분배효과가 다른 선진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토건국가 모델인 일본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저성장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유시장경제 모델인 미국은 경제학자들이 경제를 망치면서 세계에 금융위기를 가져왔고, 전 세계인이 고통을 겪게 했다"며 "지금이라도 복지와 분배, 성장, 고용, 금융안정성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을 따라 복지국가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수출 많이 할 수록 세계시장에 노출...복지 강화해야"

이정우 교수는 ▶양극화 심화와 ▶수출주도형 국가, ▶높은 자영업자 비율, ▶저출산 고령화, ▶복지예산과 경제예산의 비율을 예로 들며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복지예산을 늘렸는데도 양극화가 줄어들지 않았다"며 "이미 양극화가 고착화됐기 때문에 여간 노력하지 않고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복지국가인 유럽은 수출중심인 반면, 복지기피국가인 미국과 일본은 내수중심"이라며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일수록 세계시장에 그만큼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사회안전망이 필요해 복지를 강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수출중심인 반면 미국과 일본처럼 복지를 기피하고 있다"며 "수출주도형 국가로 지속되길 원한다면 유럽처럼 복지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을 비롯한 11개 단체가 함께 주최한 '제3차 대안사회복지학교'의 네 번째 순서로 열린 이날 강연은 시민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가량 진행됐다 (2011.11.03)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우리복지시민연합>을 비롯한 11개 단체가 함께 주최한 '제3차 대안사회복지학교'의 네 번째 순서로 열린 이날 강연은 시민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가량 진행됐다 (2011.11.03)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 교수는 또 "복지를 기피한 결과 젊은 층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바람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게 됐다"며 "결국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부양하는데 온 정성을 다 쏟아야 하기 때문에 저성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자영업의 비율이 선진국 보다 2배나 높아 자영업자들이 먹고 살기가 그만큼 힘들어지게 됐다"며 "선진국처럼 복지정책을 강화해 복지서비스 분야 인력을 늘려 자영업의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정우 교수는 "OECD 국가의 복지예산과 경제예산 평균은 각각 55%와 10%인 반면 한국은 28%와 20%로 평균에 비해 복지예산의 비율이 낮고 경제예산 비율이 높다"며 "복지예산의 비율을 지금보다 두 배로 높이고 경제예산의 비율을 두 배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원래 복지예산과 경제예산 비율이 각각 20%와 28% 였던 것을 참여정부시절 처음으로 뒤집었다"며 "부자감세와 4대강 사업으로 '토건국가 모델'을 이어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복지예산 비율을 28%로 유지하고 있지만, 다음 정권에서는 복지예산 비율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FTA, 정책주권 미국에 넘어가는 국치"..."장밋빛 환상 버려야"

이정우 교수는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한미FTA' 비준안 처리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그는 "한미FTA 비준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투자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ISD(투자자 국가 제소) 조항"이라며 "이 제도가 시행되면 시장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통상생법'을 비롯한 웬만한 법과 정책들이 무력화되고 거액의 보상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처럼 ISD 조항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면 정부와 공무원들이 제소를 우려해 움츠러들면서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만들지 못하게 된다"며 "결국 정책주권이 미국에 넘어가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참여정부 때 한미FTA 협상을 시작한 것은 맞지만 그 때는 자동차를 비롯해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며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을 하면서 그마저도 다 돌려줬기 때문에 한미FTA 협정을 맺을 필요가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술국치만 국치가 아니라 한미FTA도 국치"라며 "정부는 마치 한미FTA 협정을 맺으면 대박날 것 같은 장밋빛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우 교수가 강연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1.11.03)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정우 교수가 강연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1.11.03)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정우 교수는 지난 2003년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대통령 정책특보를 지냈다. 그러나 한미FTA 체결에 반대 입장을 밝히고 2006년 특보직에서 물러난 뒤 '한미FTA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경제학자들의 서명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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