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구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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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칼럼] "대구는 명예와 불명예의 갈림길에 서 있다"


   2012년 새해가 밝았다. 60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의 해라고 하니 용의 기운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바란다. 또 새해는 임진년이라 420년 전의 임진왜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국방을 소홀히 한 나라의 백성은 비참하다. 관군은 오합지졸이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다. 신립 장군은 험준한 천혜의 요새인 새재를 버리고 평지의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쳤다가 대패하고 말았다. 나중에 문경 새재를 지나던 명나라 장수가 왜 이런 절호의 지형을 버리고 다른 데서 싸워 패했느냐며 한탄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신립이 보기에 관군이 워낙 군기가 서 있지 못해서 전투가 벌어지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병졸들이 도망 못가도록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쳤는데, 그게 오히려 전멸 당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무능하고 용렬한 임금 선조는 한밤중에 궁궐을 비우고 부랴부랴 도망가다가 백성들의 돌팔매질을 당했고, 압록강 근처까지 도망가서도 불안한지 기어코 중국으로 넘어가겠다고 우겼다. 신하들이 겨우 말려 주저앉혔기 망정이지 그때 임금이 중국으로 도망갔더라면 나라 꼴이 어찌 되었을까. 바다의 이순신과 육지의 의병이 없었더라면 나라는 거덜나고 말았을 것이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전혀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나라가 풍비박산 나고 백성이 아비규환을 지른 비극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장 현실을 보면 새해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선거다. 4월에 총선, 12월에 대선이 겹쳐 있으니 새해는 20년 만에 한번 돌아오는 중요한 정치의 해다. 지금 디도스와 돈봉투 사건으로 여지없이 본색을 드러낸 한나라당은 비대위를 열어 위기에 처한 당을 구출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야당은 당대표 선출에 80만명의 선거인단이 참가하는 사상초유의 실험을 하고 있다. 선거야 원래 중요하지만 올해 선거는 특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번 선거는 2007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싸잡아 ‘좌파 정권’, ‘잃어버린 10년’으로 매도하며 집권했던 한나라당을 계속 지지할 것이냐를 묻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 했던 한나라당이 5년 집권한 뒤 과연 나라가 좋아졌는지를 물어보면 ‘예’라고 답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참여정부를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공격하던 한나라당이야말로 진짜 무능할 뿐아니라 부패하기까지 한 집단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국민들은 차떼기 이후 천막 당사에서 은신하던 한나라당을 개과천선했으려니 믿고는 정권을 완전히 맡겨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 결과 국민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이번에 한나라당 비대위가 무슨 비상한 대책을 내놓더라도 다시는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 사람들은 생리적으로 부자, 강자 편이기 때문에 도무지 서민들과는 맞지 않는다. 새해에는 기필코 야당이 선거에 승리해서 복지국가의 초석을 놓아야 하고, 남북관계도 개선해야 한다. ‘경제 살린다’, ‘뉴타운 짓는다’, 그런 달콤한 수작에 다시는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업가 출신이므로 다른 건 몰라도 남북간 경제협력 같은 것은 사업가답게 잘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남북관계는 파탄이 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국밥 먹으면서 경제 살린다는 이명박 후보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경제 살릴 방안을 아예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복지에는 소극적일 것으로 예상됐는데, 그걸 넘어서 복지에 적대적이기까지 한 세력이라는 사실이 작년 가을 무상급식을 둘러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널리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는 이 중차대한 시기에 정권을 잡아 시대의 요구인 복지 확충은커녕 부자 감세를 해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렸으며, 멀쩡한 4대강에 시멘트를 붓는 대규모 자연파괴 사업에 22조원을 낭비하는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한나라당이 이런 반서민적, 반복지적, 친부자, 친재벌의 자세를 바꾸지 않는 한 이 집단에 정권을 맡겨서는 안 된다. 올해의 두 차례 선거에서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문제는 대구다. 작년 6월 지방선거에서 이미 전국적으로 변화의 태풍이 불었다. 국민은 오만, 무능한 한나라당을 가차없이 심판했다. 다만 한 지역만 이 태풍에도 요지부동,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건 다 알다시피 대구, 경북이다. 올해의 중요한 두 선거에서 대구, 경북이 또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전국적인 경멸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대구가 원래 이렇진 않았다. 지금은 보수의 아성이 돼버렸지만 일제 시대와 해방 직후에 대구는 ‘조선의 모스크바’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진보적이었고, 수많은 의인을 배출했다. 이승만 압제정권을 무너뜨린 단초가 됐던 2.28 운동은 대구의 자랑이다. 그렇다. 대구는 원래 야당 도시요, 진보의 도시다. 1956년 대선에 출마한 진보당 조봉암 후보는 이승만 정권의 엄청난 관권 선거, 부정 선거 때문에 패배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적적으로 이긴 지역이 몇 개 나왔는데, 그건 바로 대구와 그 인근 지역이었다. 선거에서 혼이 난 이승만 정권은 정적 조봉암 선생을 터무니없게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켰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던 조봉암 선생이 반세기나 지나 비로소 재심을 거쳐 무죄가 확정됐으니 대구의 자존심이 살아나는 순간이 아니고 무엇이랴.

  정치의식에서 다른 지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앞서갔던 대구가 이제 과거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대구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보수 한나라당의 본산으로 머물 것인가. 선비의 고장, 지사의 고장이었던 대구, 정의와 양심을 위해 앞장섰던 대구의 명예를 되찾을 절호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2012년, 대구는 명예와 불명예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정우 칼럼 1]
이정우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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